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도은선생시집 등은 보물 지정 예고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지난 2007년 백제 왕실 사찰인 왕흥사지(王興寺址)의 금당 앞 목탑 터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넣는 네모난 구멍)에서 찾은 현존 국내 최고(最古)의 사리공예품이 국보로 승격된다.

문화재청은 577년이라는 제작 시기가 뚜렷하고 백제 왕실 공예품으로서 역사적·예술적 가치와 희소성이 있는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사진)을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왕흥사는 부여 낙화암에서 금강 건너편에 있는 사찰 터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996년부터 조사를 진행해 건물 배치를 확인하고 다양한 유물을 출토했다.

왕흥사 유물 중 '백미'가 문화재가 사리기로, 사리기는 참된 수행을 한 부처나 승려 몸속에 생긴다는 구슬 모양 유골인 사리를 보관한 용기다.

왕흥사지 사리기는 안에서부터 금제 사리병, 은제 사리호, 청동제 사리합 세 겹으로 구성됐고, 사리합 겉면에는 '정유년이월(丁酉年二月)/십오일백제(十五日百濟)/왕창위망왕(王昌爲亡王)/자위찰본사(子爲刹本舍)/리이매장시(利李枚葬時)/신화위삼(神化爲三)'이라는 명문이 있다.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우는데, 2매였던 사리가 장례 지낼 때 신의 조화로 3매가 됐다"는 뜻으로, 이를 통해 사리기가 위덕왕(재위 554∼598)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고자 발원한 왕실 공예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왕흥사지 사리기는 제작 시점이 명확하고, 사리공예품 중 연대가 가장 빠르며, 형태와 기법 측면에서도 완성도가 매우 높다는 평가다.

특히 단순하고 단아한 모습, 보주형(寶珠形) 꼭지, 주위를 장식한 연꽃 문양은 525년에 조성한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탁잔'과 639년에 만든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조형적으로 연결하는 의미가 있다.
   
한편 조선 후기 제작된 불화인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와 '김천 직지사 괘불도', 고려 후기에 목은 이색·포은 정몽주와 함께 삼은(三隱)으로 불린 도은 이숭인(1347∼1392)의 문집인 '도은선생시집 권1∼2'는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18세기 경북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화가들이 천상·지상·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보살들을 그린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가로 279㎝, 세로 238㎝ 크기 화면에 천장보살, 지지보살, 지장보살을 정연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했다.

삼장보살도는 16세기 이전 작품이 대부분 해외에 있고, 17∼18세기 그림인 '안동 석탑사 삼장보살도'와 '대구 파계사 삼장보살도'도 소재가 불분명한 상황이어서 대둔사 작품은 희소성이 있다.

1803년에 승려화가 13명이 함께 만든 12m 높이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19세기 괘불 중 시기가 가장 이르고 규모도 가장 크다.

머리에 보관을 쓴 본존이 양손으로 연꽃을 들고 정면을 바라보는 도상으로, 시방제불(十方諸佛·네 방향과 네 모퉁이, 위아래의 모든 부처) 10위와 보살상 5위를 배치했으며, 가늘고 날씬한 형상, 굵고 대담한 선의 묘사, 어두운 적색과 녹색 대비, 입체적 음영법이 특징으로 조형성과 표현법 면에서 19세기 불화를 대표한다는 평이다.

도은선생문집은 조선 태종이 1406년 이숭인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문집 간행을 명해 제작됐으며, 편집은 변계량, 서문 작성은 권근이 맡았고, 1403년 제작한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했다.

전체 분량은 5권이며, 보물로 지정 예고된 책은 권1∼2로, 앞부분이 사라져 권근이 쓴 서문 말미 4행만 남았고 주석 없이 원문만 있으나, 조선초기 문집 현존본이 극히 적고 계미자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 자료다.

문화재청은 이들 문화재 4건에 대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보와 보물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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