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홀 실수와 불운 떨처버리고 백지상태서 다음샷 집중해야

방민준의 골프탐험(17)-골퍼가 배워야 할 도마뱀의 지혜 

국내 최고의 골프칼럼니스트인 방민준 전 한국일보 논설실장의 맛깔스럽고 동양적 선(禪)철학이 담긴 칼럼을 독자들에게 배달합니다. 칼럼에 개재된  수묵화나 수채화는 필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어서 칼럼의 운치를 더해줍니다. 주1회 선보이는 <방민준의 골프탐험>을 통해 골프의 진수와 바람직한 마음가짐, 선의 경지를 터득하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유조선이나 전함 등 대형 선박들은 선체의 어느 한 부분이 암초에 부딪히거나 포탄에 맞더라도 침몰하지 않도록 선체 내부를 격실로 만든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부서지지 않는 격벽으로 칸막이를 만들어 선체의 어느 한 부위가 손상을 입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영향을 그 부분으로 국한시키기 위한 것이다.

골프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의 격실이다. 게임마다, 홀마다, 샷마다 견고한 마음의 격실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라운드 하는 내내 집착과 욕심 자학 분노 미련 아쉬움 등으로 가득 찬 무거운 등짐을 져야 한다.

참담하기 짝이 없었던 지난 홀의 기억을 끊지 못하고 다음 홀에 서면 어김없이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 그 홀을 망친다. 지난 라운드의 좋은 스코어와 지난 홀의 환상적인 샷 역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좋은 기억은 그때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욕심을 낳고, 그 욕심은 기어코 몸과 마음을 긴장시켜 다음 플레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골프처럼 전염성이 강한 것도 드물다. 지난 홀의 치명적인 실수가 다음 홀로 전염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모든 실수와 불운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떨쳐버리고 다음 홀에서는 백지상태로 돌아가야 한다. 홀마다, 샷마다 한 결 같이 백지상태로 임할 수만 있다면 그는 골프의 도를 깨달은 사람이다.

잭 니클로스는 강인한 정신력의 대명사로 불린다. 마스터스대회 파3 홀에서 거푸 공을 연못에 빠뜨려 여덟 타를 치고도 다음 홀에서 버디를 잡아내던 그를 두고 TV 해설을 하던 왕년의 스타 켄 벤츄리가 단언합니다. 잭은 아까 파3에서 8타를 친 기억을 까맣게 지워버렸다는 걸. 그는 충분히 그럴 의지가 있는 골퍼입니다.”고 말했다.

   
▲ 게임마다, 홀마다, 샷마다 견고한 마음의 벽을 세워야 한다. 실수나 행운의 샷을 날린 후엔 잊어야 한다. 다음홀에까지 이 기억을 갖고 가다가는 악몽이 될 수 있다.  마음의 격실을 만들어두지 않으면 라운드 내내 집착과 욕심 자학 분노 미련 아쉬움 등으로 가득 찬 무거운 등짐을 져야 한다. /삽화 방민준

잭은 적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했을 때 미련 없이 꼬리를 잘라 버리고 달아나 생명을 보전하는 도마뱀의 지혜를 터득했던 것이다.

어디 골프에서만 격실이 필요하랴.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인생살이에서도 격실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제의 실수와 실패에 연연해 고통의 나날을 이어가는 것이나, 닥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해 스트레스에 쌓이는 일, 놓쳐버린 기회를 두고두고 아쉬워하는 일, 좋았던 과거를 반추하며 오늘을 허송세월 하는 일 등은 바로 마음의 격실을 두지 않아 초래되는 불행이자 고통이다.

기업의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경영자에게도 격실 개념은 필요하다. 한 사업의 실패가 다른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선 성공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어느 부서의 잘못된 근무관행이 회사 전체로 확산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일종의 격실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야말로 CEO가 할 일이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에 안주하다 어느 한 계열사의 경영 실패로 그룹 전체가 대책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이 생기는 것도 이런 격실 개념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회사의 궂은일을 집안으로까지 끌어들여 가정을 흔드는 일도 마음의 격실을 두지 않아 초래되는 불행이요 고통이다. 인생살이에서도 공간과 시간의 격실을 마련할 줄 알아야만 매순간 즐겁고 창조적이며 개척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다.

한 샷 한 샷이 모여 한 홀의 성적이 만들어지고 한 홀 한 홀의 성적이 모여 한 라운드의 스코어가 결정되지만 모든 샷은 항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어야 하고 모든 홀, 모든 샷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할 수 없음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방민준 골프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