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과잉·양심 빈곤 좌파 이기려면 ‘용기’ 필요해”
“‘사상’은 가치관·국가 운영 원리…간과해선 안 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우리나라 좌파들은 사상과잉에다 양심 빈곤이야. 양심이 없어.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지. 그런데 우파는 사상 빈곤에다가 용기도 없어. 사상이 빈곤하고 용기가 없는 사람이 사상 과잉에 양심 없는 좌파와 싸워 이길 수 있겠나?”
 
   
▲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미래한국재단 사무실에서 미디어펜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지난 달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미래한국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허화평 이사장의 통찰력은 날카로웠다. 대중들에게 ‘5공 실세’로 알려져 있는 허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엘리트로 전두환 정부 시절 국가 운영의 중심에 있었다. 

미국 헤리티지재단의 수석 연구원을 역임하며 ‘사상’에 대해 본격적인 공부를 한 그는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이야기하는 문재인 정부에 “언어도단”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허 이사장은 “‘좌우 이념의 날개로 밸런스를 맞춰야 된다’는 말은 남한 좌파들의 전형적인 위장 전술”이라며 “이것과 함께 걸핏하면 ‘색깔 공세냐’고 하며 사상에 대해 백지 상태인 국민들을 농락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 날 지구상에서 사상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되는 사람들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임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남한 사회의 ‘불행’이라고 진단했다. 

또 전두환 정부 시절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내며 좌파 세력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했던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우파 정권이 강력하다고 여기다 보니 좌파들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다”며 “공산주의가 나쁘다는 것을 6‧25전쟁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좌파를 무시했다고 해야 할까, 그러는 동안 좌파들은 지하에서 계속 칼을 갈고 있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그러니 이 사람들(좌파 세력)이 여기까지 오도록 한 건 우파, 우파 정당, 우파 지식인들”이라며 “여러 가지 좌파 정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건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생각이라기 보단 좌파들이 오랫동안 꿈꾸고, 추구하고, 연구해온 노선”이라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권력을 잡았으니 확실히 바꾸려고 저러는 것”이라며 “그 사람들하고 싸우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허 이사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미래한국재단 사무실에서 미디어펜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이념은 날개가 아니라고 했다.

“‘좌우 이념의 날개로 밸런스를 맞춰야 된다’는 말은 남한 좌파들의 전형적인 위장 전술이야. 이것과 함께 걸핏하면 ‘색깔 공세냐’는 말도 하는데, 냉전 시대가 끝났기 때문에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는 논리지… 이 두 가지로 사상에 대해 백지 상태인 국민들을 농락해왔어. 그러나 색깔이 없다는 것을 투명인간을 의미해. 투명인간만 색깔이 없잖아. 생각해봐. 어느 나라건 헌법이 있어. 헌법은 사상 문서야. 제대로 된 헌법이라면 위대한 사상을 바탕으로 작성돼 있다고. 따라서 국민들이 사상에 대해 알든 모르든 관계없이 헌법에 포함된 사상의 지배를 받고 사는 거지. 그런데 이념의 시대가 끝났네, 색깔론이네,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야.”

-어떻게 반격해야 좋을까?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야. 국토 분단국가라고도 할 수 있고, 민족 분단국가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지. 그러나 가장 정확한 건 사상적 분단국가라는 거야. 그리고 남한 사회에서 일어난 갈등 대부분은 좌우 사상이 격돌한 문제야. 이런 사회에 살면서 “사상이 뭐야?”, “이념시대는 끝났어”라고 말 하는 것만큼 무식한 게 없어. 그럼 분단이 안 되면 사상이 필요 없나? 천만에. 전쟁이 있든 없든, 분단 됐든 아니든, 사상을 떠나서 살 수 없어. 헌법 체제 하에서는 헌법의 지배를 받으니까. 각국마다 다르지만 각국마다 헌법에 체제, 사상이 못 박혀 있어. 그래서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해. 특히 오늘 날 지구상에서 사상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들이야.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상이 뭔데?”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

-문재인 대통령도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좌파들이 늘 그렇게 이야기 해. 이념의 시대가 갔는데 왜 색깔 공세냐고. 이념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이념의 시대가 갔다고 얘기하고 있어. 그리고 이런 논리에 대해 우파들이 반격을 못해. 가르친 바도 없고 배운 바가 없으니. 또 졸업하고 나와서 사상 공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환경이 못돼.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막연하고. 우리 정치 현실에서 사상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 그러다 보니 사상하고 우리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해. 여기에다 의식 있는 우파들이 좌파의 논리를 비판하고 나오면 “색깔론이다”, “이념시대 끝났다” 이런 헛소리를 한다고. 그들이 투쟁하는 방식이야 그건. 가장 이념적인 사람들이지 우리나라 좌파들은. 그런데 가장 이념하고 관계없다고 한다고.”

-우익정당인 자유한국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제대로 못하고 있지. 우리나라 좌파들은 사상과잉에다 양심 빈곤이야. 양심이 없어.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지. 그런데 우파는 사상 빈곤에 용기 빈곤이야. 이익만 추구하는 거지. 국회의원을 한번 더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대선캠프에 몰려가고. 그러니… 사상이 빈곤하고 용기 없는 사람이 사상 과잉에다가 양심 없는 좌파와 싸워 이길 수 있나? 그래서 이렇게 된 거야. 그런데 보라고. 남한 사회는 우익 사회야. 자유주의 체제니까 당연히 우익이 주인이지. 지금은 거꾸로 됐어. 좌익들이 주인이 됐고 자유한국당은 밀려서 비실비실 대고 있어.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을 내칠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지만, 지금까지의 남한 우파정당의 행태를 보면 신뢰할 수도 없고 희망을 갖기엔 너무나 빈약해. 남한의 불행이야.”

-보수‧진보라는 말도 잘못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사상을 이야기할 때 보수와 진보라는 용어는 쓰면 안 돼. 보수 진보는 정책의 노선을 의미하는 거지. 좌파 정당 안에도 진보 보수가 있고 중도가 있어. 우파 정당 안에도 진보가 있고 보수가 있고 중도가 있을 수 있고. 예를 들어 우파적 가치를 놓고 정책을 판단할 때 난 조금 더 진보적 입장 취해야겠다, 이런 거지. 그런데 보수‧진보라고 해버리면 좌우 구분이 안 돼. 좌우 혼재돼 있는 상태에선 더욱더 안 되고. 미국은 좌익이 없으니까 보수‧진보 얘기할 수 있지만 우리는 불가능해. 다 섞여 있어서. 반드시 Left, Right라고 얘기해야 된다고. 남한에는 분명이 Left 정당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좌파들은 자신을 좌파라고 안 해 절대로.”

-진보라는 용어가 주는 프리미엄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진보는 새로운 것, 정의를 추구하고 좋은 걸 다 하는 걸로 보이니까.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솔깃하지. 반면 보수는 골치 아프다고. 보수 하면 이승만 독재, 박정희 유신, 전두환 권위주의‧부정부패, 나쁜 건 다해먹은 놈들, 고리타분한 놈들, 이런 이미지야. 그러니 보수라고 하면 별로 마음이 안 가.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 보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어. 서양 사람들은 이걸 ‘Timeless Value’라고 하는데.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가치, 그것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보수야. 자유주의자이지만 보수지, 예를 들어 자유주의가 생긴 결정적 원인은 재산권 때문이야. 따라서 자유시장 체제를 지키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재산권을 절대로 양보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그건 변함이 없지. 때문에 용어를 아주 조심스럽게 써야 돼. 함부로 가져다 붙이면 안 되는 거야. 물론 몰라서 그러는 거지. 그러니 이건 개인의 잘못이 아니고 국가의 잘못이야.”

   
▲ 허화평 미래한국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미래한국재단 사무실에서 미디어펜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박규빈 기자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건가?

“육사 다닐 때 전쟁역사를 제일 좋아했어. 전쟁이라고 하면 총 쏘는 것만 생각하는데 그것만 있는 게 아니야. 국가 대 국가 문제이기 때문에 전면에서 대치하는 건 군대지만 정치‧경제‧사회 모든 것이 총동원돼서 전쟁을 치르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전쟁 역사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게 많아. 한 국가가 왜 망하는지, 한 체제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배워야 된다는 게 내 안에 잠재돼 있었던 거지. 그리고 이 나라에서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 그러다 군 생활을 시작했고, 군에 있을 때 5‧16 혁명이 났고, 10‧26을 겪으면서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끝나고… 청와대에 들어가게 됐지. 그러면서 국가라는 것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 후에 미국에서 5년 정도 있었는데 그때부터 사상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어.

-미국 헤리티지 재단에서 수석연구원으로 근무하셨다.

“사상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일이 그 전엔 없었어. 자유주의는 좋고, 공산주의는 나쁜 것이라는 기본만 있었지. 다 그랬을 거야. 그러다가 미국에 갔는데 ,미국 사회는 사상을 빼곤 신문도 책도 읽을 수 없어. 그렇지만 사상이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아. 가치와 원칙이라고 하지. Value, Principle.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이념이나 사상이라는 말은 쓰지 않지만, 정치‧사회 전부 기본 가치와 원칙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는 사회야. 그리고 미국에서 학교 공부를 다 마친 아이들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한 것처럼 그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다 갖추게 돼 있어. 

-사상이란 무엇인가.

“미국에 정치인이나 학자들은 American Democracy라는 말을 잘 안 써. 그럼 뭐라고 하냐. The Rule of Law, 법의 지배라고 표현해.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곧 법치주의이기 때문이야.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법치주의는 구체적이라고. 법 위에 누구도 올라설 수 없어. 대통령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지. 진정한 법치 국가야. 그리고 이게 사상적 표현이야. 그런데 정작 사상적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남한 지식인들이 ‘사상이 뭐야’라고 하고 있으니. 안 망하는 게 다행이야. 물론 나라가 망하길 바라면 안 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보면 그렇다고. 사상이라는 것은 가치관을 뜻해. 개인의 경우 가치관은 삶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국가에 있어서 가치관은 국가 운영의 원리지. 사상이, 가치가 정말 중요해. 그걸 알아야 돼.”

-5공 때 이런 교육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관제 교육은 우리가 원하지 않았어.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이나 민족정신을 함양하는 여러 가지들, 소위 윤리 교육 같은 걸 강조하지 않았어.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우파 정권이 강력하다고 여기다 보니 좌파들을 위협으로 느끼지 않았지. 국가보안법이라는 게 있었고. 공산주의가 나쁘다는 것을 6.25 전쟁을 통해 배웠기 때문에 소위 좌파를 무시했다고 해야 할까. 그러는 동안 좌파들은 지하에서 칼을 갈고 있었던 거지. 그러니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도록 한 건 우파, 우파 정당, 우파 지식인이야. 그러다 그들이 정권을 잡게 됐고. 여러 가지 좌파 정책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건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생각이라기 보단 좌파들이 오랫동안 꿈꾸고, 추구하고, 연구해온 노선이라고 봐야지. 권력을 잡았으니 확실히 바꾸려고 저러는 거야. 그 사람들하고 싸우려면 보통 공부해선 안 돼. 열심히 해야 돼.”

-2편에서 계속

■ 허화평 이사장

1937년 포항시에서 출생
1957년 포항고등학교 졸업
1961년 육군사관학교 졸업
보안사령부 사령관 비서실장
청와대 정무 제1수석비서관
1983년 미국 헤리티지재단 수석연구원
1988년 귀국
제14대~15대 국회의원
현) 미래한국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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