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혁신, 지역주의 정치구조 폐해 개혁에 초점맞춰야

   
▲ 정용화 연세대 동서문화연구소 객원교수
이번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후보가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것은 한국정치사에 큰 의미를 부여할만한 것으로 이의원에게는 축하를, 지역민들에게는 찬사를 보낸다.

이의원의 당선을 두고 ‘선거혁명’ 또는 ‘지역주의 붕괴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있는 한편 ‘정부여당실세의 예산폭탄론에 기댄 이후보의 개인기’로 ‘지역주의 타파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필자 역시 지역주의정치 혁파를 주창하며 한나라당 후보로 2008년 광주서구갑 출마(11.4%), 2010년 광주광역시장 출마(14.2%), 무소속으로 2012년 광주서구갑에 출마(20%득표)했던 사람으로서 깊은 소회가 없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지역주의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지역주의는 실재한다. 생각이 행동을 낳기 때문에 생각만 바꾸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생각이 고정관념으로 굳혀져있을 때는 본인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

호남에서 여당, 영남에서 야당이 당선되는게 나라의 정치발전과 지역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상대당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으로 표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다.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2번을 찍어왔던 손이 1번으로 1센티미터 옮기는데 떨리더라는 고백을 광주에서 여러번 들어보았다.

지역주의정치구조의 폐해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정 지역을 석권하는 정당은 공천이 곧 당선이기 때문에 정당지도자들은 공천권을 무기로 후보자들에게 전횡을 휘두르고, ‘전략공천’이네 뭐내 하여 지역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정당독재’를 서슴치 않는다.

이런 구조는 다음 공천을 바라는 국회의원들에게 지도부가 정한 ‘당론’과 다른 의견을 내기 어렵게 해 정당민주주의도 질식하게 만든다. 총선 때마다 절반에 가까운 ‘물갈이’를 해도 정치행태가 별로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지역주의 정치구조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도 답답하다. 오랫동안 당선인을 내지 못한 정당은 그 지역을 포기하고 당선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당력을 집중한다. 당선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좋은 후보자가 나서기 어렵고 그래서 지역민들은 표를 줄래야 주기 어렵다고 한다. 모처럼 ‘좋은’후보가 나섰어도 정당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단기간에 불식하기는 어렵다. 시간이 갈수록 지역간의 편견이 깊어지고 망국적인 국민분열만 부추기고 있다.

   
▲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순천·곡성지역 이정현 당선인이 31일 오후 전남 곡성군 곡성읍 선거사무소에서 당선인사를 하고 있다./뉴시스

지역 일당독재는 시민들의 생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지역에서 기업을 하려면 지배정당에 밉보여서는 안되고, 일반 시민도 반대당을 지지하면 주위의 눈총을 받거나 왕따당하는 경우도 있다. 지역주의 정치구조는 민주주의를 질식시키고 시민의 자유를 암암리에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공산당 일당체제 하에서처럼.

언제까지 지역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인가? 언제까지 지역민 탓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유권자가 변하기만을 요구할 것인가?

문제의 원인과 그 폐해를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것은 기득권 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것은 최소한의 안정된 권력기반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권을 추구하는 몇 사람의 권력자들을 위해, 그리고 쉽게 당선되려는 국회의원들과 지역 기득권자들에 의해 다수의 지역민들이 인질로, 나아가 국민전체가 볼모로 잡혀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2년 후 이정현후보같은 사람이 재생산되기 어렵다.

여야가 정치혁신을 주창하고 있다. 정치발전의 장애물이 공천제도의 왜곡에 있고, 그 뿌리에는 지역주의 정치구조가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이를 애써 외면하는 것은 또 다른 기득권을 추구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해결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불편한 법과 제도를 고치라고 뽑아준 정치인들이 이를 외면한다면 그것이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정용화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