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전자 등을 겨냥한 경제보복을 예고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이 또다시 애꿎은 기업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당한 롯데의 악몽이 어른거린다.
중국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던 기간 중인 지난달 29일 심야 베이징의 삼성과 현대자동차 광고판 120여 개를 예고 없이 철거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간의 한·중 정상회담이 있었다. 대북제재와 사드로 인한 앙금의 여운이다.
G20을 계기로 만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은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 상태를 견지했다. 그동안 미·중 사이에 낀 화웨이 문제로 우리 기업들은 가시방석이었다. 화웨이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일본 정부가 보복의 칼을 빼들었다.
한국의 기업들은 지금 딱 전호후랑(前虎後狼)의 위기에 처했다. 온힘을 다해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고 있는데 뒷문으로 승냥이가 들어온다. 헤어날 길이 없다. 앞에는 호랑이, 뒤에서는 승냥이가 노리니 한마디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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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총리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일본정부가 1일 경제산업성 홈페이지를 통해 반도체 소재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을 4일부터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NHK는 이번 조치에 대해 "한·일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된 상황'이라며 "징용을 둘러싼 문제가 배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이 같은 조치로 TV, 스마트폰의 유기EL(전자형광) 디스플레이 패널 부품으로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 제조과정에서 필요한 리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불화 수소) 3개 품목의 수출 규제가 시행된다. 일본의 규제가 실제 상황이 되면 한국이 입을 경제 타격은 화웨이의 10배가 될 것이라고 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정보통신기술(ICT) 수출은 이미 8개월 연속 감소하며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대조치에서 벗어나 계약별로 수출 허가를 받는 쪽으로 전환하게 되면 허가신청과 심사에 최장 90일까지 소요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이번 규제는 한국 산업 분야의 ‘정곡’을 골라 타격을 주려는 일본의 의도가 엿보인다.
일본이나 중국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사드 배치를 빌미로 한국 기업을 향해 보복을 노골화하고 있다. 경제대국답지도 못하고 자유무역에도 역행하는 옹졸하고 치졸스러운 행태다.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사드의 학습 효과가 아니더라도 일본의 이런 대응은 충분히 예상됐었다. 문제는 정부의 대처다.
사드보복으로 롯데는 천문학적 피해를 봤지만 정부는 결과론적으로 "나 몰라라" 방관했다. 화웨이 문제가 불거지자 청와대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대처해야 할 사항"이라고 했다. 사드 문제도, 화웨이 문제도,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보복문제도 기업이 일으킨 문제가 아니다.
사드는 국가 안보적 차원의 문제다. 화웨이 사태는 미중 강대국의 패권싸움에서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 들이려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문제 역시 정부가 나서서는 풀어야 할 과제다. 외교력의 부재가 부른 예고된 참사다.
일본의 치졸함과 중국의 용렬함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또한 국가가 나서서 풀어야 할 숙제다. 외교란 주권 국가간의 분쟁처리 기술의 하나로 설득·타협·강제 등의 수단으로 협상에 의한 분쟁의 해결을 목표로 한다. 상대를 골라서 자기 입맛에 맞는 국가와 사람만을 상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방한 일정중 지난달 30일 한국 대기업 회장들을 초청해 극찬하고 투자를 독려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적폐로 몰리며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던 이들이다. 다른 나라도 아닌 자기나라 안방에서 외국 정상에게 칭찬을 받고 있는 기업인들의 모습이 왜 그렇게 생경해 보였을까? 낯설면서도 경제참사로 치닫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컸다.
지금 대한민국 기업들은 비즈니스의 문제가 아닌 정치·외교 문제로 두둘겨 맞고 있다. 안에선 적폐로, 밖에선 대한민국의 어정쩡한 정치·외교 문제로 얻어 터지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 반기업정서를 불식시키고 다각적인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경제가 무너지면 안보도 무너진다.
[미디어펜=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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