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도 차별적 선택 경제불평등 조장, 평등주의 정책 성공못해

   
▲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자유주의 시장경제제체는 지속될 수 있는가? 시장경제체제가 사회민주주의와 평등민주주의로 변질되는 것은 아닌가?  완변한 평등경제를 추구했던 사회주의는 왜 멸망했는가? 사회민주주의와 수정자본주의는 경제평등정책을 추구했다. 그런데 왜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하고 있는가?

박정희정권은 권위주의 정권, 독재정권으로 폄훼되고 있지만 전후 개발도상국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과 부의 분배, 동반성장을 이룩했다. 그런데 이후 30년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체제속에서 경제민주화를 내걸었다. 결과는 왜 북한과 같은 저성장에서 헤매고 있다. 왜 그런가?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겸 KDI 정책대학원 초빙교수가 제시한 문제점들이다. 평등정책이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정책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 요인은 무엇인가? 해법은 무엇인가?  좌회장은 경제평등주의정책이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줄기차게 경고해왔다. 선지자가 광야에서 석청과 메뚜기만 먹고 외친 것처럼.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정치를 철저하게 경제화시켰기에 가능했다.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경제주체들을 우대하고, 보상과 인센티브를 줬기 때문이다. 획일적으로 1/n로 나눠주는 것을 거부했다. 반면 사회주의국가와 사회민주주의 국가, 경제민주화를 내건 수정자본주의 국가들이 한결같이 획일적인 평등정책을 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이것은 경제를 정치에 예속시킨 탓이다. 

해법은 무엇인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것을 경제정책에도 적용하는 것이다. 시장은 불평등의 원천이며 이를 통해 모두에게 성장과 발전의 유인을 제공하한다. 성장과 발전은 모두가 발전하지만 결코 같아질 수 없는, 항상 불평등을 수반하는 상향이동과정임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좌회장은 성과에 미흡한 보상체계를 갖는 사회는  경제적 정체, 즉 저성장, 양극화를 못 벗어난다고 경고했다. 

좌회장은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제안했다. 주목할 만하다. 정치적 평등의 이념이 경제적 평등주의로 발전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 때 표나 인기만을 의식하며 평등정책을 양산하는 의회의 정책결정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좌회장은 "정치의 제도 및 정책결정 권한을 정치영역에 한정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끝없이 경제평등주의, 혹은 유사 사회주의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등이라는 환상은 잡힐 듯 해보이지만 영원히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정책연구소(이사장 박범진)는 9월 5일 프레스센터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유홍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자유민주주의의 명암과 과제>라는 제목으로,주섭일 전 중앙일보 파리 특파원이 <왜 한국 사회민주당을 시급히 창당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할 예정이다. 토론자로는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김상조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김종은 국민대 정치학과 교수,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참여할 예정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축사를 할 예정이다.

좌승희 미디어펜회장의 토론문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자유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질문
1. 언필칭 자유민주주의가 사민주의, 혹은 평등민주주의로 빠지지 않고 자유시장 민주주의로 지속된 경우가 얼마나 있는가? 일인일표 민주주의가 평등민주주의로 빠지지 않은 경우가 몇이나 있는가?
2. 자유민주주의-->평등민주주의, 포퓰리즘 민주주의로의 이행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인가?
3. 경제발전에 앞선 소위 선민주주의가 경제발전을 이룬 예가 존재하는가?
4. 전후 신생독립국치고 사회민주주의를, 그리고 선진국은 수정자본주의라는 이름하에 사회민주주의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지 않는 나라가 있었던가?
5. 자유민주주의에 미래가 있는 것인가? 사민주의 함정을 피할 길이 있는 것인가?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질문
1. 사회주의는 왜 멸망했는가? 그 멸망의 원인을 안고 있는 사회민주주의가 단지 무력혁명을 버렸다고 해서 성공 가능한 것인가?
2. 왜 서구 사민주의국가들은 모두가 경제적 침체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가? 왜 사민주의체제속의 후진국들은 하나같이 도약을 못 이루고 있는가?
3. 그래서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화가 가능한 것인가?
4. 오늘날 경제양극화가 자본주의체제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민주의, 혹은 수정자본주의체제 때문인가? 전후 사민주의, 수정자본주의는 그동안 모두가 경제적 평등을 추구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불평등은 더 악화되고 있지 않은가?

발표자와 모든 참석자들에 대한 질문
1. 전후 세계경제에서 후진국의 경제적 성공, 혹은 도약은 왜 정치적 권위주의 하에서만 가능했는가?
2. 더 나아가 왜 민주주의 혹은 사민주의하의 후진국 경제들은 여전히 빈곤을 못 벗어나고 있는가?
3. 왜 선진 사민주의국가들은 지난 50여 년간 하나같이 발전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양극화는 심화되어왔는가? 오늘날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3. 권위주의 혹은 독제라는 박정희는 유사 이래 최고의 경제기적 (세계 최고의 성장과 가장 양호한 동반성장의 기적)을 이뤘는데, 지난 30년 자유민주주의 한다고 하며 경제민주화내건 사민주의 행보를 해온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고작 북한수준의 성장과 양극화)은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4. 전후 재분배정책강화가 당분간은 경제적 평등을 이루는 듯했는데 왜 결국 불평등이 더 심화되고 있는가?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S시리즈와 LG전자 G시리즈제품을 선호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 제품은 구매를 기피한다. 고객들은 시장에서 차별적 선택과 지원을 통해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다. 반면 정치적으론 표와 인기를 의식해 평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집요하게 실현불가능한 경제평등주의를 집착하고 있다. 경제평등정책은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고, 저성장을 고착화시키고 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S5.

실사구시(實事求是) 세계관이 필요하다.
1. 평등한 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인가? 그 예가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가?
2. 균형발전은 형용의 모순이 아닌가?
3. 그럼 경제적 불평등은 누가 만들어내는가?
4. 그 지긋지긋하게도(??) 안 없어지는 경제력집중은 누가 만들어 내는가? 경제력 집중 없이 발전한 나라가 있는가?
5. 사민정치철학자와 평등주의경제학자, 그리고 물론 자유민주주의 학자들과 대한민국 정치인들을 포함하여, “경제적 평등”을 하느님으로 받드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야 말로, 말로는 평등한 세상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우리는 시장에서 열심히 불평등을 조장하면서 돌아서서는 평등을 입버릇처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입으로는 평등을 외치면서 뒤로는 불평등을 조장하는 표리부동한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사민주의의 성공을 막는 자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 아닌가요.

6. 세상의 이치는 무엇인가?

차별과 불평등의 경제학, 實事求是 경제학이 필요한 시대이다.
1. 시장은 성과에 따른 보상의 차별화장치이다. 하늘은 항상 스스로 돕는 자만 돕는다. 시장 또한 그렇다. 소비자, 은행, 투자자, 기업, 개인 모두가 하는 일은 경제적 차별, 차이, 차등을 만드는 일에 동참한다. 시장은 불평등의 원천이며 이를 통해 모두에게 성장과 발전의 유인을 제공한다.
2. 경제성장과 발전은 모두 발전하지만 결코 같아질 수 없는, 항상 불평등을 수반하는 상향이동과정이다. 이를 거부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3. 성과에 미흡한 보상체계를 갖는 사회는 반드시 경제적 정체, 즉 저성장, 양극화를 못 벗어난다.
4. 그럼 시장에 맡기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자유방임 시장만의 힘으로 도약을 이룬 나라를 찾아보기도 어렵다. 시장도 하나님이 아니다. 자유도 하나님이 아니다. 자유시장 만으로는 경제발전을 일으키는데 실패한다.

   
LG전자 스마트폰 G3.

5. 시장의 실패는 경제발전 현상이 앞선 성공의 무임승차과정이기 때문이다. 흥하는 이웃이 있어야 나도 성공을 무임승차하여 발전할 수 있다. 흥하는 이웃은 오히려 무임승차, 즉 착취의 대상인 셈이다. 흥하는 이웃이 있어 내가 망한다고 한 칼 마르크스는 세상의 이치를 거꾸로 본 것이다. 그런데 시장은 양의 거래비용 때문에 무임승차를 막는데 실패한다. 현실 시장은 성과와 보상을 일치시키는데 실패한다. 성공사례는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가 다 번영하지 못하는 것이다.
 

6. 기업이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는 장치로 등장했다. 특히 자본주의 주식회사제도가 경제발전의 견인차역할을 한다. 그러나 성공기업도 후발자들에게 성공노하우를 무임승차 당한다. 성공기업들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7. 국가(정치와 정부)의 경제적 역할은 시장의 차별화기능을 강화하여 시장실패를 교정하는데 있다. 무임승차당하는 성공 개인과 기업들을 보상하는 시장제도를 만들어냄으로써 성과와 보상을 일치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성장과 발전의 동기와 유인을 강화시키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8. 따라서 역으로 평등주의를 강화하는 정치나 정부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사민주의나 평등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 또한 보장할 수 없다.
 

9. 사민주의나 평등민주주의의가 성장과 발전의 동기를 죽이지 않는 보상체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인가? 성과에 역행하는 역보상체계가 바로 이들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10. 우리 모두는 차별적 선택과 지원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조장하면서 (우리 호주머니안의 핸드폰이 중소기업제품인 분들이 있는가요?) 정치적 발언과 행동은 인기나 표를 의식해서 평등을 소리 높여 외치고 법과 제도와 정책을 통해 경제평등을 추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까요? 시장은 전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반격한다. 시장으로 부터의 성장과 발전의 유인과 동기부여가 사라지면서, 성장기업은 사리지고 중소기업천국이 되고, 저성장, 불균형과 불평등 심화, 고실업, 국가와 가계, 개인부채 증가, 복지대상인구의 지속증가라는 시장, 즉 우리들 자신의 반란에 부딪힌다.

11. 오늘날의 세계경제의 양극화현상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 시장에서 만들어내는 불평등을 없앤다고 시장의 보상차별화기능을 무력화시킨 결과 경제의 하향평준화가 진행된 결과이다. 경제 불평등의 심화는 바로 지난 반세기이상 불평등을 없앤다고 시장의 차별화에 역행하는 경제평등을 추구해온 사회민주주의, 평등민주주의, 수정자본주의, 복지국가정책의 결과이다.
12. 기업이든 개인이든 성장의 유인이 꺾이면 결과는 모두의 경제적 정체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자조하여 성장하려는 유인을 버리고 국가를 쳐다보고 살면 사회는 영락없이 몰락한다. 지금의 세계가 이미 그러한 길로 깊이 들어서지 않았는가? 한국도 이미 지난 20~30여년을 그리 살아온 것이 아닌가?

13. 실패하는 서구 사민주의와 후진국 사민주의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경제정책을 차별화원리로 전환해야한다. 소위 empowerment policy을 포함하는 약자지원 사회정책도 모두 인센티브를 차별화한 성장과 발전의 유인과 동기부여정책으로 전환해야한다. 실사구시적으로 시장의 기능, 즉 세상의 이치를 면밀히 살펴, 스스로 돕는 자에게 더 유인을 제공하는 정책으로 모든 국민들을 일으켜 세워야 음지의 사람을 양지로 이끌고 성장과 발전의 유인과 동기를 살려 지금의 난국을 벗어날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민주주의의 미래
1. 시장과 민주주의의 작동원리는 원천적으로 같이 가기 어렵다. 시장은 불평등을 기반으로 하는데 민주주의는 사회민주주의가 됐건 평등민주주의 (표퓰리즘)가 됐건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로 변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정치적 평등의 이념이 경제적 평등주의로 발전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고안해 낼 수는 없을 것인가? 의회의 정책결정권을 제한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미국 민주주의의 초심이 참고할 만 하다.)

3. 정치의 제도 및 정책결정 권한을 정치영역에 한정하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인류는 끝없이 경제평등주의, 혹은 유사 사회주의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이다. 평등이라는 환상은 잡힐 듯 해보이지만 영원히 잡히지 않는다. 바로 우리 모두가 그 불평등의 원인제공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이율배반적인 존재이기 때문인 것이다.

학계, 학문적 사대주의와 훈고학에서 벗어나야 미래가 있다.
마지막으로 자유시장도 하느님이 아니고 민주주의도 하느님이 아니며, 또한 경제적 평등도 하느님이 아니다. 모두다 절름발이다. 도그마에서 벗어나야한다.  인류의 번영은 각 개인과 기업이 자조정신으로 성장과 발전의 길로 나서도록 유인과 동기를 지속 강화해야만 가능해진다. 흥하는 이웃이 있어 내가 흥한다는 실사구시적 이념을 바로 세워야 오늘날의 경제사회 혼란을 치유할 수 있다. 자유시장원리도, 민주주의 원리도 평등의 원리도 이러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실사구시적으로 인류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학계도 학문적 사대주의와 훈고학에서 탈피해야 한국의 미래가 있을 것이다. 인류역사에 최초, 최고의 성장과 발전을 이룬 역사를 백안시하면 해법은 없다. 선진국이라는 나라들 중에 제대로 본받을 나라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