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안의 부패와의 유혹 이겨내야, 오만 독선 위선 편견 나태 용렬함 경계해야

KBS 이사장으로 선임된 것을 대단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어려운 시기에 제가 이런 막중한 책무를 잘 감당해 낼 능력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 큰 걱정이 앞서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며 여러분들께서도 같은 염려를 하고 계신 줄 압니다. 저는 여러 이사님들과 임직원 여러분들의 뜻과 능력을 최대치로 결집하고 최선의 방향으로 조율해 내는 것이 이사장의 임무라고 생각이며 나라를 위해 크게 봉사 할 수 있는 제 인생 마지막의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겸허하게 받아드리겠습니다.

흔히들 언론은 제4의 권력이라는 말을 합니다. 언론매체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이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관련 일에 종사하는 우리들은 모두 요즘 표현으로 “갑”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회 내에서 특별한 힘을 갖고 있느니 만큼 사회가 잘 되고 못되고 하는 데에 대한 책임도 그 만큼 크다는 이야기입니다.

언론의 기능을 이야기 할 때 제가 선호하는 비유는 “권력” 보다는 “혈액순환 기능”입니다. 사회를 인간의 몸에 비유할 때 입법부가 심장이요 행정부가 몸통과 손발, 사법부가 머리에 해당한다면 언론은 혈관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피의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몸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으며 만약에 피가 오염된다면 그 몸은 병 들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는 사회가 병들었다는 개탄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곤 합니다. 그것은 비단 정부와 국민, 여야 사이의 소통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 여러 부문 간, 계층 간, 세대 간 민활한 소통이 이루어 지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의 처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타협과 사회통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불필요한 갈등과 반목이 증폭된다는 말입니다.

   
▲ 이인호 KBS 신임이사장은 정치적 외풍을 이겨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유혹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호 이사장(맨오른쪽)이 지난해 역사교육과 관련한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저를 비롯한 KBS 종사자 모두의 최우선 목표는 KBS가 진정으로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는 명실상부한 국민의 방송, 국민의 눈과 귀와 목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국민의 갈구를 반영하는 것만으로 우리의 소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정한 보도와 공공성이 높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통합, 문화창조, 경제발전, 남북한 평화통일, 복지국가 이상의 달성, 모든 일에서 방송이 선도적 기능을 발휘해야 합니다.

정치적 외풍을 막아내는 동시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유혹도 이겨내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은 물론 우리 정치가 갈등과 반목이 아니라 상생의 정치가 되고,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창의적 발안으로 여야가 경쟁하며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는 국회가 되게 하는데 대한민국 대표방송인 KBS가 앞장을 서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으며 환경파괴가 사회적 갈등, 국가 간 경쟁과 갈등 못지않은 지구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는 시대에 KBS는 국제사회의 중요한 움직임에 대해서도 국민이 민첩하게 대처 할 수 있도록 돕고 방송을 통해 온 세계에 드러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어떻게 우리의 국민적 이익과 연계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미 독재타도와 민주화, 그리고 경제발전을 목마르게 외쳐야 했던 시대를 벗어났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독재가 아니라 정부,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무기력과 무책임이 국민들의 실망과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물질만능주의 의식구조가 삶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삶의 질과 결, 그리고 품위를 높이는 일에 방송이 관심을 다시 환기시켜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를 선도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들 모두가 가장 경계해고 극복해야 할 대상은 이제 다른 누구, 다른 어떤 나라, 또는 집단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 자신 개개인 속에 숨어 있는 부패의 유혹이 아닌가 합니다. 오만과 독선, 위선과 편견, 나태와 용열함은 우리들처럼 지식인, 문화인, 언론인임을 자처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인간적 약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임 이사장으로서 마지막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KBS는 사장을 중심으로 임직원 모두가 신나게 자기 소신과 능력을 한껏 펼 수 있는 직장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공공성이 높은 프로그램과 공정방송이 방송인들의 사명임은 다 알고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연구와 고민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다소의 갈등과 어려움이 있더라고 먼 훗날에 돌아다 볼 때도 그 때 나는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을 했노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회상 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밝은 희망의 등대 역할을 하는 것이 국민의 방송인 KBS의 사명이며 그 사명을 달성하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 대표방송에서 일하는 특전을 누리고 있는 우리들 모두의 기회이며 소명이라 생각합니다. KBS가 대한민국뿐이 아니라 온 세계가 주목하는 방송이 되는데 여러분 한분 한분이 아낌없이 힘을 발휘해 주시기를 기대하며 취임인사를 마칩니다.

(이 글은 이인호 KBS 이사장이 최근 발표한 취임사 전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