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가 '사건' 변질...정치꾼들 개입 정치문제로 비화

   
▲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자식 잃은 부모한테 남은 인생 같은 건 없어.” 영화 ‘방황하는 칼날’에 나오는 대사다. 십분 동의했고 유효 기간 같은 것도 없을 줄 알았다. 아니었다. 세월호 단원고 유가족들을 보면서 그 말에도 시효와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처음에는 분명 ‘사고’였다. 이게 슬슬 변질되더니 어느 샌가 ‘사건’이 되었다.

사안이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다. 정치꾼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좋은 호재라도 유가족들과의 화학 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정치 이슈로 만들기 어렵다. 드디어 장기 단식자가 나왔고 세월호는 정치 문제로 완전히 형질 변환 되었다. 누가 가장 큰 피해자일까. 일차적으로 유가족들이고 이차적으로 국민들이다. 눈치 보느라 경제 활동은 위축되었고 이를 구제할 민생법안은 동면에 들어갔다.

유가족들이 안쓰러운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잔인했던 4월, 그들은 팽목항에서 울었고 국민들은 TV앞에서 울었다. 아무리 울어도 부족했고 아무리 울어도 미안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조금 덜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피로감과는 달랐다. 도를 넘었다는 느낌, 지나치다는 느낌, 저건 아니다 싶은 느낌. 최근의 대리기사 폭행은 그 임계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유가족들의 진술이 거짓으로 밝혀진다면 더 더욱 완벽하고 급격하게 돌아서고 꺾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기는 했지만 이미 일어난 것을 전제로 말씀드리자면 세월호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신임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외쳤을 때 그 말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대 별로 쪼개지고 지역별로 갈라지고 신념 체계에 따라 대립하던 여러 축들이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까.

그러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월드컵 같이 일시적인 감정의 발흥이 아닌 각자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세월호는 그런 것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거대하고 총제적인 문제제기였다. 그러나 결과는 아시는 바대로다. 관계 당국이 조금만 더 성실했더라면 정부가 조금만 더 세련되었더라면 정치권이 당리당략보다 공익을 염두에 두었더라면 우리는 꽤 많은 것들을 세월호에서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 세월호 사고가 난 잔인했던 4월 국민 모두가 TV앞에서 울었고 너나 없이 미안해 했다. 하지만 점차 정치문제로 비화 되면서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 최근 유가족 대표들의 대리기사 폭행은 그 임계점이 되는 사건으로 국민들의 미안함이 분노로 바뀌고 있다.
그것은 물속에서 죽어간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준 선물이었다. 불행히도 대한민국은 그것을 받을 자세나 수준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서로 더 미워하고 더 갈라지고 더 대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대한민국은 거의 두 개의 나라다. 아마 더 반목하며 더 증오하며 남은 세월을 보내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이 어이없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슨 말을 할까. 광화문에서 매일같이 펼쳐지는 가관에 얼마나 기가 찰까.

문화 평론가인 조우석은 어느 글에선가 제레미 다이아몬드 등 문명사가들의 저작을 정리하여 이렇게 요약했다. “하나의 문명이 침몰할 때 붕괴 이전에 두 가지 파멸의 징후가 나타난다. 우선 오랜 정체 상태가 시작된다.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지배 엘리트층이 그 징후를 읽어내지 못하거나 무시해버리는데 이게 오래될 경우 급기야 두 번째 징후가 드러난다.

이른바 문화적 역류현상이다. 사회의 내부 구성원들이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지식과 정보를 받아들여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노력 대신에 검증 안 된 소문, 믿음 따위를 맹신하는 ‘지식의 교착 상태’인데 이는 붕괴의 직접적 계기가 되는 구체적 재난이 닥칠 날이 머지않았음을 의미한다.” 길지만 인용한 것은 이만큼 2014년 한국사회를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명쾌한 언설이 없기 때문이다.

불안하고 두렵다. 구체적인 재난은 언제 어떻게 닥칠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몰락할 것인가. 물론 그 재난을 마지막 기회로 활용하여 일어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는 꼴로 봐서는 그다지 베팅하고 싶지 않은 경우의 수이기는 하지만. 2014년 세월호는 가라앉았고 대한민국은 가라앉는 중이다. 우리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뻗어줄 사람도 없다. 문득 올려다 본 가을 하늘이 흐리고 어둡다.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