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공무원 17만명 증원 공약…인구 감소 역행 규제·세금 공화국으로
   
▲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예전 동사무소가 주민센터로 이름이 바뀐 지 오래다. 이름만 바뀐 게 아니다. 내가 아는 주민센터는 거의 대부분이 새 건물이다. 근래 들어 우중충한 곳은 본 적이 없다. 반듯반듯하고 햇볕도 잘 들어온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깨끗하고 쾌적하다. 

민원창구에 앉아 있는 직원들은 젊고 똑똑하다. 남자건 여자건 빠릿빠릿, 훤한 인물에 옷차림도 끼끗하다. 거기다가 친절하기까지 하다.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노인들은 물론 표정과 말투가 까탈스러운 민원인들에게도 친절하고 재빠르게 응대한다.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대단하다더니 실력은 기본이고 인물과 인성도 웬만한 수준은 넘어야 하는 모양이다. 

공무원이 예전보다 훨씬 친절해진 것에 감동한 나머지, 우리나라도 마침내 선진국이 되려나보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무원은 공복(公僕)이라고 하지 않나. 시민을 위한 국가의 심부름꾼이 공복인데, 오랫동안 시민 위에서 군림해온 공무원들이 진정한 심부름꾼으로 변하고 있으니 나라가 발전한 것이 분명하다고 믿게 된 것이다.

내 이런 생각을 한 친구가 뒤집었다. 그는 일선 민원창구의 공무원이 친절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고 목청을 높였다. 다음은 그의 말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에서 신임 공무원들과 점심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면허증을 바꾸려고 경찰서 민원실을 찾았다. 어르신 주차장, 여성용 주차장이 장애인 주차장 옆에 그려진 널찍한 마당을 지나 민원실을 열자 6명의 남녀 경찰관이 창구 건너편 한가운데서 수다를 떨다가 나를 보고는 서로 경쟁하듯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라고 말을 건넨다. 

친절한 것은 맞다. "면허증 갱신하라고 통지가 와서요"라는 내 대답에 3명이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한마디씩 거든다. "사진은 갖고 오셨나요?", "저쪽에 3번 서류 작성해서 오세요" "수수료는 7500원입니다"라고 또 친절을 베푼다. 

사진과 신용카드를 창구 위에 올려놓자 머리 짧은 공익요원이 컴퓨터 앞에 앉아 내 민원을 처리한다. 금방 일이 끝나 차에 시동을 걸었다가 모자를 두고 온 게 생각나서 다시 들어갔더니 공익요원만 자리에 앉아있고 다른 이들은 아까처럼 다시 한가운데에 모여서 웃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눈이 왔으니 스키장 갈 맛이 나겠네", "그동안은 눈도 없고 날도 덜 추워 스키장이 장사가 되려나 걱정되더니" 같은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아, 저들은 민원인이 없으니 자기네끼리 수다를 떠는구나. 민원인이 들어오면 반가워서 그렇게 친절했구나. 민원인이 많으면 일에 치여 짜증이 날 테고, 그러면 친절하고 싶어도 친절해질 수가 없을 테지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 친구 말은 공무원들은 원래 친절해야 하지만, 요즘은 일이 없어서 친절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일이 없는 것은 민원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민원인 대비 공무원 숫자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적지 않은 월급 꼬박 나오지, 복리후생은 웬만한 기업 수준은 되지, 평생 근무 보장되지, 일도 없지…, 그러니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친구는 컴퓨터 놓인 책상이 9개 있는 민원실에 직원은 6명밖에 없다면 3명은 휴가를 갔을까, 외출 했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집에 와서 여러 날 전 제목에 눈길만 주고 말았던 기사를 검색해 다시 읽어보았다. "민원인 2시간 새 0명, 그 면사무소에 공무원 18명"이라는 큰 제목 아래에는 "광역 뺀 지자체 74%, 2년 새 인구 32만 줄었는데 공무원 더 늘어", "공공도서관도 이용객 2명에 안내직원 3명, 전국 곳곳 공무원 포화", "서울·부산·대구도 2년간 인구 줄었는데 공무원은 3~5% 늘어"라는 작은 제목이 박혀 있었다. 

천천히 읽은 기사 안에는 "행정안전부 및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8년간(2008~2015년) 공무원 수는 96만명에서 102만명으로 늘었는데 같은 기간 정부 규제 건수는 1만1000여건에서 1만4000여건으로 3000여건이나 늘었다", "규제가 많아질수록 공무원 권한이 커지는 속성 때문에 공무원이 늘면 새로운 규제와 간섭이 생긴다. 비대해진 공무원 조직은 규제 완화 정책 실행을 어렵게 한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 

지방의 한 도시 인건비를 분석, "공무원 1인당 인건비는 6000만원에서 8000만원"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공무원을 17만명이나 늘린다는 게 이 정권의 공약이었으니, 앞으로 우리는 더 친절한 공무원 공화국에서 살게 되겠구나! /정숭호 칼럼니스트·전 한국신문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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