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예산 투입 실효성 의문...숫자놀음보다 내실 다져야

   
▲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진보교육감들의 후보시절 공약과 교육청 계획을 종합하면 혁신학교는 향후 2000개에 이를 듯하다. 이는 전국 초-중-고 학교 수의 19%다. 말 그대로 ‘혁신학교 전성시대’가 열릴 전망이다. 진보교육감의 ‘상징’인 혁신학교가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성공모델이라면 그들이 꿈꾸는 시대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로선 혁신학교의 성과를 평가하는 잣대도 미흡하고, 혁신학교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입장에 따라 심하게 엇갈린다. 이런 분위기에서 진보교육감들의 ‘일단 늘리고 보자’는 식의 계획은 무모한 ‘교육실험’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혁신학교에는 교육청 예산, 국민 세금이 지원된다. 학교당 적게는 4000만 원 많게는 1억5000만 원까지다. 혁신학교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11부터 올해까지 전국 6개 지역 교육청에서 1200억 원을 지원했다. 예산이 투입되면 그에 따른 효과-실효성 검토가 당연히 뒤따라야 하는데 혁신학교에는 예외다. ‘교육자치’라는 명분과 진보가 덧씌운 ‘혁신-창의’라는 그럴싸한 미명이 그에 대한 평가를 차단한다. 그래서 혁신학교는 외형적으론 성장했지만 내실화를 다졌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다.

서울시 혁신학교 이대로 괜찮을까?

조희연 교육감은 당선 후 인터뷰에서 혁신학교를 현재 67개에서 200개로 늘리고 학교당 지원예산도 1억 원까지 인상시키겠다고 했다. 계획대로 순차적으로 확대한다면 2015년도 서울시 혁신학교는 약 100개가 되고 이들에 대한 총 지원예산은 100억 원이 될 것이다.

그런데 혁신학교 확대를 외치기 전에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 기존 혁신학교 지원예산이 적절하게 집행됐는지, 혁신학교가 시도한 모델-프로그램이 일반학교에도 적용가능한지, 그 모델이 공교육 정상화를 이끌 발전적 방향인지, 또 그런 평가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예산을 지원하는 것인 적정한지 등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

   
▲ 진보교육감들이 혁신학교 확대만 고집하는 건 교육계를 이념지형 결투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혁신학교가 실패하면 진보가 무너진다는 등식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이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형혁신학교 학부모네트워크 축하총회'에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혁신학교 지원예산의 적절한 집행여부 부터 살펴보자. ‘혁신학교 예산 편성-집행 기준’ 지침에서는 예산을 주로 프로그램 개발-운영비, 교원역량 강화, 학부모참여-지역사회 협력, 시설비, 교구/교재 구입비, 인건비 등에 지출하도록 돼 있다.

각 학교는 비교적 폭넓은 재량권을 갖게 된다. 교사워크샵, 시설/기자재비, 업무추진비의 예산 비중을 제한하는 정도다. 문제는 교육청의 그런 느슨한 지침이 예산집행 감독에 있어서의 소극적 의지와 결합하니 혁신학교 예산이 원래 용도를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2013년도 서울시 67개 혁신학교의 예산 집행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인건비 예산 편중, 수익자 부담 원칙 위배, 혁신학교와 무관한 사업 또는 기자재/시설에 예산 집행, 교사동아리 과다 지출, 일반학교와의 형평성에 어긋난 예산 집행 등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혁신학교가 시도해 온 시범 모델이 일반학교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혁신학교 지원예산 만큼 일반학교에도 비슷하게 지원된다면 아마 가능할거다. 즉 프로그램과 예산이 함께 공급돼야 한다는 말이다. 원래 혁신학교는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예산을 써서 혁신학교의 성공 모델을 구축하고 이를 일반화시키는 사명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지금껏 대다수 혁신학교가 그 취지를 잘못 파악한 듯하다. 혁신학교 지원예산이 그들에겐 그냥 여윳돈처럼 인식됐다.

혁신학교로서의 사명을 제대로 전달 못하고 지도-감독을 소홀히 한 교육청의 책임도 크다. 각 교육청은 점검 주기는 서로 다르지만 해당 지역의 혁신학교를 평가하고 있다. 혁신학교가 제출한 자체보고서와 현장방문을 통해 학교의 운영실태를 파악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교육청 주도의 평가-점검 보다는 학교의 프로그램 활동을 보고받고 조언해 주는 수준인 듯하다.

교육청은 예산 지원기준 변경하고, 혁신학교는 사명감 되새겨야

혁신학교도 교육의 다양성, 수요자의 선택권 측면에서 존재 의미가 있다. 특목고, 자사고, 마이스터고, 혁신학교 등 각자 특성에 맞춰 운영되고, 교육수요자는 자신에게 적합한 교육프로그램-수업방식을 택하면 된다. 현재 이대로의 혁신학교를 우려하는 이유는 단지 진보교육감의 상징이기 때문이 아니다. 혁신학교를 죽이기 위한 비판이 아닌 혁신학교가 취지대로 제대로 운영되길 바라는 안타까움이다.

혁신학교에 대한 무작정 예산지원, 교육청의 감독 부실부터 막아야 한다. 예산지원 기준이 학교규모라는 외형적 요소보다, 혁신학교가 추진하려는 프로그램 내용과 그에 필요한 교구-재료나 시설, 외부강사 활용 유무를 바탕으로 설정돼야 한다. 교육청은 혁신학교가 제출한 프로그램 계획서와 예산을 심의해 지원여부와 적정 예산을 결정하고, 예산집행 후엔 과다 지출이나 지침 위반, 계획에서 벗어난 집행 등 예산집행의 적절성을 점검한다.

혁신학교가 장기 비전을 세우도록 독려해야 한다. 한번 시행하고 끝나거나 해당 학교에만 적용되는 모델은 지양돼야 한다. 적어도 주변 일반학교에 공유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하는게 혁신학교의 역할이다. 특혜-특권 누리는 학교가 아니라 시범학교로서의 사명감을 인식해야 한다.

현재 지정된 혁신학교 전국 585개까지도 필요없다. 자격과 조건을 갖춘 소수의 혁신학교만 있어도 된다. 그럼에도 진보교육감들이 혁신학교 확대만 고집하는 건 교육계를 이념지형 결투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혁신학교가 실패하면 진보가 무너진다는 등식에 갇혀있다. 혁신학교의 성공 여부는 진보교육감들이 혁신학교의 태생이유와 역할을 어떻게 재정립하느냐에 달려있다.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