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후안무치 만행 분통 터지지만 국가의 법적 대응 실익 없어

양아치가 있어야 착한 사람이 더 돋보인다 : 산케이 보도 법정화를 보면서

   
▲ 황근 선문대교수
검찰이 세월호 참사 사건과 관련해서 박근혜 대통령 당일 행적에 대해 악의적으로 추측보도했던 산케이(産經)신문 가또 다쓰야(加藤達也) 한국지사장을 본격 수사하면서 국내외 파장이 커지고 있다.

생각보다 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정부와 검찰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산께이 신문 그리고 일본 정부까지 나서 언론탄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자칫 언론문제를 넘어 국가간 갈등으로까지 확전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현 정부 출범이후 일본의 국수주의적 우경화로 가뜩이나 경색된 한·일관계가 더욱 경색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산케이신문의 보도는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삼류 황색언론 그 이상그 이하도 아니다. 아니 출처 불명의 증권가 찌라시를 인용해 ‘세월호 사건 당일 박 대통령이 한 남성과 있었으며 현 정권이 레임덕에 들어섰다’라는 보도는 발행부수 200만부를 가진 신문사의 보도라고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그야말로 그 자체가 찌라시인 셈이다. 산케이신문이 일본의 극우성향을 대변하는 신문으로 공정성이나 객관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혀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물론 극단적인 우익 국수주의에 매몰되어가고 있는 일본 정부의 반응도 어쩌면 충분히 예측될 수 있었다.
 

여기서 이런 감정적 분위기나 정치적 파장 등을 떠나 대한민국이라는 한 나라의 대언론 관계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비록 삼류 찌라시 보도라고는 하지만 이처럼 법적 판단에 맞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그리고 노골적으로 비방 기사를 내보낸 사이비기자에 대한 법적 대응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자칫 대한민국 정부의 대 언론관 그것도 국외언론에 대한 잘못된 언론관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 7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길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사무소 앞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 관련 기사로 고발당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서울지국장의 사과와 정정보도를 요구하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 국가권력이 언론과 직접 갈등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있었던 정부와 언론사간 법적 논쟁에서 정부가 압도적으로 이긴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정부나 정치권력은 국민들의 알권리의 최우선 대상이라고 인식되고 있고, 권력과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는 공익차원에서 유보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기 자유주의 언론관 창시자 중에 한명으로 밀튼의 ‘사상의 공개시장(the open marketplace of idea)’ 원칙을 강조했던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도 대통령임기 말년에 ’언론 때문에 못살겠다. 어떻게 할 수 없나?’라고 토로했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유민주주의 정치권력들은 이를 인내하고 용인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지켜왔던 것이다. 베트남전쟁을 종료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가 ‘나라밖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 그리고 이들을 부추긴 언론’이라고 회고한 바도 있다. 일천하기는 하지만 우리 정부 역시 언론사에 대한 인내의 미덕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일부 언론사에 대해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내고, 법적, 정치적 압박을 가했던 노무현정부의 아픈 기억도 있다. 정권말기 기자들의 정부부처 출입을 봉쇄했던 ‘기자실 대못박기’ 사건은 우리 언론사에 치욕적인 오명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사이비 혹은 편파적인 삼류 언론은 누가 응징하는 것일까? 그것은 독자 즉, 국민인 것이다. 자유주의 언론관에 의하면, 진리는 사상의 시장에서 수용자들이 판단하는 것이지 언론사나 정치권력의 몫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산께이 신문의 찌라시 같은 보도는 어쩌면 국민들이 진실을 판단하고 진실의 가치를 더욱 인정하게 만드는 상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표현의 자유는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만 보호한다는 계몽주의적 규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떤 것이든 다양한 의견이 대립하는 경쟁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수많은 음란물과 비방댓글 등으로 도배되고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행위가 분명하고 실질적인 사회적 폐해가 드러나지 않는 한 처벌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산케이 신문의 보도는 물론이고, 이를 부추기고 있는 일본정부의 후안무치한 태도는 분노를 넘어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만행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도덕한 행위나 표현들에 대한 판단 역시 우리 아니 전 세계인이 하는 것이 옳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을 법적 쟁점화하는 것은 결국 실익도 없겠지만, 그들의 야비한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판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런데 자국의 이익에 눈이 멀어 이런 보도행위를 버젓이 벌이고도 한마디 사과 조차하지 않고 있으면 맘이 편한지 심히 의문이기는 하다. /황근 선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