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즈너, 자본주의 시장과정과 정당성 명쾌한 논리로 설명

커즈너, 이윤동기가 불 붙이는 기민한 기업가 정신의 세계-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 발표문

1. 서론

   
▲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이스라엘 커즈너(Israel M. Kirzner)교수는 2차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학파의 부흥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미제스(Mises)와 하이에크 (Hayek)의 이론을 나름대로 종합하여 이미 고전이 된 저작 '경쟁과 기업가정신'(Competition and Entrepreneurship, 1973 Chicago University Press)을 통해 '기업가정신'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하여 오스트리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 경제학자이다.
 

그는 균형분석 속에서 미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사라진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을 기민성(alertness)으로 정의하여 우리 앞에 불러 내세웠다. 그는 슘페터(Schumpeter)의 혁신을 통한 '창조적 파괴자'(creative destructor), 나이트(Knight)의 '불확실성을 짊어진 자'(uncertainty bearer)라는 정식화 이후 경제학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던 기업가를 우리의 관심 속으로 끌어들여 기업가정신에 대한 이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학자가 되었다.
 

커즈너는 “경제학의 발전은 주관주의의 보다 철저한 적용 과정이었다.”는 하이에크(Hayek)의 말을 그의 저술 여러 곳에서 자주 인용하고 있다. 사실 그의 시장과정이론의 핵심인 기업가정신 이론도 오스트리아학파가 전개한 주관주의의 보다 체계적 적용의 한 과정으로 볼 수 있다.

   
▲ 14일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에서 열린 '경제살리기는 기업가 정신으로부터' 토론회.
2. 오스트리아학파의 주관주의

멩거는 '부적'과 같은 것을 지니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을 잘못된 인식의 예로 들고 부적을 진정한 재화가 아니라고 보았다. 이러한 멩거의 입장은 커즈너의 비판을 받았다. 부적이 자신을 보호한다는 인식이 비록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런 믿음 자체로부터 출발하면, 부적은 일정한 심리적 안정에 기여하는 서비스를 창출하고 있다. 그래서 재화이다. 밀가루로 만든 가짜 약을 진짜 약이라 여기고 먹으면 실제로 효과가 발생한다고 하지 않는가! 플라시보 효과.
 

주류 경제학의 미시 교과서를 살펴보면, 개별 경제주체들은 그들의 선호체계를 무차별곡선지도를 통해 남겨놓고 나면 사라져도 되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멩거는 다른 두 학자들과는 달리 인간의 선호를 중시하였을 뿐 아니라 이와 함께 지식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이러한 전통은 오스트리아학파에 계승되고 있다.
 

오스트리안들은 비 자체가 우산을 발생시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비에 대한 생각'이 우산을 발생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오스트리아학파는 외부적 현상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의 마음(human mind)이라는 필터를 통해서라는 점에 대해 다른 어떤 학파보다도 진지하게 다루었다. 그래서 오류가능성, 지식과 인지의 문제, 기업가정신과 같은 주제들이 보다 심도 있게 다루어질 수 있었다.
 

커즈너의 기업가정신이론도 [이윤기회]→[이윤기회의 활용]이라는 식으로 이윤기회의 존재 자체가 자동적으로 그 기회의 활용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이윤기회에 대한 사람의 인지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이윤기회]→[이윤기회의 인지]→[이윤기회의 활용]으로 파악하였다는 점에서 주관주의를 지식의 문제와 연관 짓고 있다.
 

이러한 인지의 중요성은 균형 분석이 아니라 과정 분석에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개별 경제주체들이 더 이상 그들의 행위를 변경시킬 유인이 사라진 균형상태가 도달되어 이윤기회가 모두 소진되고 그 균형상태가 소위 외생변수가 변화하지 않는 한 계속 유지될 수 있다면, 그리고 경제학이 그러한 가상적 상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하는 한, 불균형 상태에서 이윤기회를 탐색해내고 이를 실현시키는 '기민성'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왜소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오스트리안들이 공연히 까다롭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필터를 통해 어떻게 외부적 사건을 이해되는가”라는 과정을 도입하고 불균형 상태에 대해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분석을 복잡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점은 사회주의 계산논쟁에서 드러났다.

 

3. 기민성(alertness): 기업가정신의 핵심

커즈너의 기업가정신 이론은 미제스의 인간행위에 내재된 투기적 요소와 하이에크의 지식분업론을 통합한 것이다. 커즈너는 대학생 시절, 나치독일의 추적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 뉴욕대학교에 와 있던 스승 미제스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 만남으로 인해 그가 처음 가려했던 일터인 월가는 뉴욕대학교로 바뀌고 말았다.
 

(1) 미제스

미제스는 의도를 가진 인간행위(purposeful human action)를 불안정감(felt uneasiness)을 해소하려는 끊임없는 시도로 보았다.(Human Action, 1966) 미제스는 인간행위의 개념 속에 미래의 불확실성(uncertainty)과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이라는 겉으로 보기에 상반되는 두 가지가 내포되어 있다고 보았다.
 

만약 미래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미리 주어져 있거나 알려져 있으면, 미래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의미이고 인간행위의 의미도 사라진다. 미제스는 시간의 경과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이루어지는 인간행위는 투기적 요소(speculative elements)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만약 사람이 미래를 안다면, 그 사람은 선택하거나 행동하려 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의지가 빠진 채 그저 자극에 반응하는 자동인형처럼 될 것이다. (중략) 그래서 인간행위의 개념 속에는 이미 미래의 불확실성이 내포되어 있다.“(위의 책 105)
 

그러나 인간 행동이 의미가 있으려면 현재의 행위와 미래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인과관계는 미래에 대한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이 확보되어야 가능해진다. 그래서 미제스는 인간 행위가 의미가 있으려면, 불확실하면서도 최소한의 예측가능성이 있는 미래가 전제된다고 보았다.
 

미제스는 인간행위에 내포된 미래의 불확실성에 의해 야기되는 투기적 요소를 기업가정신의 근간으로 보았다. 미래와 연관되어 있는 그 어떤 종류의 선택을 하든지 (주식 구입, 직업 선택, 혹은 그 어떤 것이든) 우리 모두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커즈너는 미제스의 인간행위에 내재된 불안정감을 제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기민성'(alertness)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고 있다. 변화나 혹은 알지 못하던 기회에 대한 이러한 기민성이 언제 가장 잘 발휘되고 또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해 커즈너는 하이에크의 '지식의 분산(혹은 지식의 분업)' 및 가격의 역할로부터 그 해답의 실마리를 얻고 있다.

(2) 하이에크

하이에크는 중앙계획당국이 개별 경제주체들에게 흩어져 있는 특정한 시점과 지역에서의 구체적 지식들(knowledge of particular time and place)을 통합할 수 없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개별 경제주체들의 이러한 지식의 일부는 암묵적이어서 전달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일 뿐 아니라 일부는 서로 모순되는 것일 수 있으며 또 내용과 경제적 유의미성이 변하는 것이어서 중앙에 전달되었을 때에는 이미 그 경제적 의미가 사라진 후일 수 있기 때문이다.

   
▲ 14일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에서 열린 '경제살리기는 기업가 정신으로부터' 토론회.
그는 시장에서의 경쟁이란 어떤 제품을 소비자들이 좋아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장 저렴한지와 같은 경쟁을 하기 전에는 미리 알 수 없는 사실들을 발견해 가는 실험적 성격을 지닌 과정으로 보았다.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한 발견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분산된 지식을 한 사람의 개인 혹은 조직으로 통합시킬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커즈너는 기민성(alertness)으로 대변되는 기업가정신은 기업가들이 불균형가격이 암시하는 이윤기회를 활용하여 이윤을 획득할 수 있고 또 반대로 이에 둔감해질 경우 손실을 입게 될 때 가장 왕성해질 것이며 이러한 불균형 가격을 이용한 이윤 기회의 활용을 통해 개별 경제주체들 사이에 흩어져 있는 지식들이 활용되고 그 간격이 메워져 간다고 보았다.
 

예컨대, 하이에크는 주석 광산이 발견되면, 주석의 채취량이 늘 것이라는 예측으로 인해 주석의 가격이 낮아지고 주석이 원료인 상품과 그 대체재들의 가격들이 다시 영향을 받아 변하게 되고 사람들이 이 새로운 가격에 맞추어 그들의 선택을 재조정함으로써 새로운 주석광산이 발견되었다는 몇 사람의 지식은 경제전체로 퍼져나가 이 새로운 사실에 맞게 경제전체의 자원이용의 방식이 다시 적응해 갈 것으로 보았다.

무수한 사람들이 주석광산의 발견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도 없이 새로운 사실에 맞게 경제활동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하이에크가 말한 지식의 분업과 가격의 변화를 통한 지식의 활용은 커즈너가 바라보기엔 이러한 가격 변화를 보고 이윤 기회에 민감한 기업가들이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 가능해지게 되는 것이다.
 

커즈너는 불균형가격이란 이윤기회가 소진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시장에서의 이윤 인센티브는 이러한 이윤기회에 대한 기민성에 불을 붙인다고 보았다. 커즈너는 어떤 상품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성격의 이러한 가격중재(arbitrage)를 통해 발휘되는 기업가정신은 상당한 시간의 경과를 동반하는 상품의 생산과 이의 판매에 있어서도 비록 불확실성이 개재된다고는 하지만 그 성격은 마찬가지로 파악하였다.

즉, 상품의 생산도 결국 노동, 원자재, 자본재 등을 사서 그 비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상품을 미래에 팔 수 있다는 예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투기적인 가격중재(speculative arbitrage of buy-low and sell-high)로 파악하였던 것이다.

커즈너는 또한 그의 초기의 기업가이론을 보다 세분하여 기업가들의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가지는 서로 다른 함축성을 구별하였다.(“Knowledge Problems and Their Solutions: Some Relevant Distinction," 1990, Cultureal Dynmaics 3: pp. 32-48) 기업가들이 지나친 낙관주의(over-optimism)에 근거한 계획을 세울 때는 손실을 입게 됨으로써 그 사실이 사후적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들이 지나친 비관주의(over-pessimism)에 근거하여 이윤기회가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기회를 활용하려고 시도하지 않게 되면, 사후적으로도 너무 비관적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알기 어렵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구별은 통계학에서 틀린 가설을 옳은 것으로 판단할 오류와 올바른 가설을 잘못된 것으로 기각할 오류로 분류하는 것과 일정한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커즈너는 이 두 번째 종류의 오류의 경우 이윤-손실이라는 동기가 부여되고, 그리고 불균형 가격에서 '돈 냄새를 맡는' 기민성이 앙양될 때에만 바로 잡힐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우리가 불확실성 아래에서는 기업가들이 손실 가능성도 이윤 획득가능성과 함께 고려할 것이라는 점에 유념하게 되면, 두 번째 유형의 오류는 쉽게 제거되기 어렵고 따라서 기업가정신의 발휘를 위축시키는 정책들은 특별히 이 유형의 오류를 제거하기 어렵도록 만들 것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호가 바뀌고 이에 따라 상품의 공급과 가격체계도 변화된다고 하면, 그 말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자칫 이 말이 소비자 선호의 변화를 먼저 읽어내어 이를 이윤으로 실현해 내려는 기민한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지 않더라도 이러한 변화가 저절로 문제의 상품 및 관련된 대체재의 가격 및 공급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된다면 이는 틀린 말이 된다.

왜냐하면 가격의 변화는 비록 소비자의 선호의 변화로부터 촉발되었다 할지라도 이를 읽어내어 실제로 가격의 변화나 더 나아가 새로운 상품의 개발 등으로 현실화시키는 기업가들의 활동을 통해 비로소 그 경제적 의미가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멩거의 자본재의 가치의 근원에 대한 이론을 원용하여 슘페터가 소비자들이 소비재에 대한 수요를 통해 '실질적으로는'(ipso facto) 자본재의 가치를 평가하고 있으므로 자본재 시장이 없이도 시장이 잘 작동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한 것은 잘못이다.

멩거는 생산된 생산수단인 자본재의 가치는 이 자본재가 기여하여 생산되는 최종 소비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가치평가로부터 발생하게 된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다시 말해 멩거는 케익의 가격을 보고 그 일부가 (케익을 굽는) 오븐의 사용료라고 인식하지 말고 오히려 오븐을 보고 '반쯤 굽힌 케익'(half-baked cake)을 보라고 우리에게 가르쳤다.
 

그러나 이런 멩거의 이론은 자본재가 가치를 가지게 되는 근원을 따지는 것이지 자본재 시장이 없어도 경제적인 생산방법의 선택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특정한 자본재가 특정한 최종소비재 한 종류만 생산하는 데에만 쓰일 수 있다면 모르지만, 빵을 굽는 데 특화된 오븐일지라도 빵만이 아니라 피자를 굽는 데에도 쓰일 수 있으며, 특정 목적에 특화된 정도가 오븐보다 약한 대개의 자본재들은 그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최종 소비재의 범위가 넓어진다.

그런 만큼 일정 시점이 지난 미래에서의 소비자들의 수요를 예측하여 지금 다양한 자본재들과 여타 생산요소들을 고용하여 최종 소비재를 생산하는 기업가들이 자본재에 대한 (불균형) 시장가격이 없는 상황에서도 시장가격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투자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추론이다.

앞서 커즈너가 지적했듯이 비관적 예측에 따른 오류는 제거되기 어려우며 이런 유형의 오류의 제거는 이윤동기에 의해 생산수단들의 불균형 가격이 이윤 모티브에 의해 이윤기회를 획득하려는 기민성을 일깨울 때 그나마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4. 결론

한 마디로 커즈너는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이론을 종합하여 주관주의의 전통을 기업가정신에 접목시켜 오스트리아학파의 시장과정이론을 체계화시킨 20세기 시장과정 이론의 대가이다. 아마도 커즈너는 주류경제학을 전공한 현대의 경제학도들이 오스트리아학파의 이론을 음미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출발지일 것이다.

그를 통해 그의 스승인 미제스와 하이에크, 그리고 논쟁을 벌였던 라흐만 등의 이론을 만날 수 있고 그의 후학들인 리조나 뵈케 등을 만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마음이라는 필터를 통한 인식의 중요성을 개별 경제주체들의 선호 못지않게 중시하는 오스트리아학파의 주관주의에 입각하여 자본주의 시장과정과 그 정당성에 대해 명쾌하게 그리고 집요할 정도로 일관된 논리로 설명하는 학자는 아마도 커즈너가 유일할 것이다. 그 명쾌성에 있어서는 오히려 미제스나 하이에크를 능가하고 있는 그는 분명 후세 경제학설사를 연구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학설사 책에서 합당한 위치를 할당받을 것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장,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

 

(이 글은 14일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에서 열린 <경제살리기는 기업가 정신으로부터> 토론회에서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소장이 발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