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쟁의 수혜자는 소비자…자유 갈구하듯 경제자유도 허용해야

경쟁이여 안녕-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슬픔이여 안녕’(1954)은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의 데뷔작이자 출세작이다. ‘슬픔이여 안녕’은 세계 젊은이들로부터 열광적인 사랑과 인기를 얻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소르본 대학 시험에서 낙방한 후 이 소설을 단 6주 만에 썼다고 한다. 경쟁의 쓴맛을 본 뒤에 쓴 작품이다. 그 때 그녀의 나이가 불과 19세였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모험적이고 발칙하고 저돌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속도광이었던 까닭에 자주 교통사고를 당했고, 폭음과 도박,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하였다. 마약 복용 혐의를 받고 법정에서 “나는 나를 파멸시킬 권리가 있다.”고 하여 사회에 파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점에서만 본다면 그녀는 완벽한 자유주의자이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은 슬픔을 벗어나는 안녕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말에서도 안녕은 만날 때와 헤어질 때 동시에 사용된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안녕은 슬픔을 이별하는 안녕이 아니라 슬픔과 맞이하는 안녕이다. 슬픔을 환영하고 받아들이고, 맞서라는 의미의 안녕으로 사강은 ‘Bonjour’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질곡 많은 인생에 어찌 슬픔을 피하면 살 수 있겠는가. 피할 수 없다면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야 한다. 슬픔이 그렇듯이 ‘경쟁’도 그럴 수밖에 없다.

경쟁은 둘 이상의 개체들이 부족한 자원을 동시에 획득하려고 애쓸 때 발생한다. 인간 세상에서 경쟁의 목표는 부와 소득, 사회적 지위, 명성과 같은 것들이다. 경쟁의 목표가 되는 것은 대부분 개체들의 생존과 생식에 필요하다. 생식과 먹이가 바로 경쟁의 대상이다. 경쟁은 생명을 가진 존재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 자유경제원에서 열린 <시장경제에 대한 그릇된 통념깨기 연속토론회-제 1차 “경쟁, 악(惡)인가”>에서 발언하고 있는 신중섭 강원대 교수.

그러나 경쟁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동물의 세계를 보면 살아남아 먹이를 구하고 짝을 찾아 종족을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실감한다. 인간의 세계도 예외는 아니다. 문명세계에서 경쟁은 많이 순화되었다고 하지만 경쟁은 강한 사람들도 힘들게 한다.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경쟁의 연속이다. 강자나 권력자라고 해서 경쟁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경쟁을 자본주의 현상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본주의 이전에, 인간이 이 땅에 삶을 시작하면서부터 경쟁은 존재했다.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실존 상황이다. 그렇다면 경쟁을 피하거나 거부하지 말고 경쟁을 이해하고 맞아들여 함께 사는 수밖에 없다. 슬픔을 피할 수 없어 ‘슬픔이여 안녕’이라고 했듯이 피할 수 없는 경쟁에 대해 ‘경쟁이여 안녕’이라고 해야 한다.
 

이 책은 <경쟁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준비되었다. ‘경쟁’과 ‘아름다움’은 서로 관계가 없다거나, ‘경쟁’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우리의 통념에 도전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다. 무엇이 ‘아름답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나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자 칸트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우리의 주관적 판단이 우리의 주관적인 느낌에 기초한 것이라 할지라도 아름다운 것은 ‘보편적으로 기분 좋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경쟁이 또 ‘보편적으로 기분 좋게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이유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혜택 대부분이 시장 경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태평양이나 대서양을 가로질러 아름다운 풍광이나 문화유산을 보고, 친구를 만나 정다운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경쟁을 통해 안전한 비행기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더욱 더 낮은 가격으로 더 편리한 재화와 용역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장의 경쟁 덕분이다. 경쟁은 ‘발견의 과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도록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자극하고, 그것을 소비자들이 싼 값으로 누릴 수 있도록 시장에 압력을 가한다.

<경쟁은 아름답다>라는 주장은 ‘만일 경쟁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을 통해 더욱더 설득력을 얻는다. 만일 경쟁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경쟁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것들이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지적 명성을 위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술자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일 경쟁이 없었다면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여 자신의 부를 확장하려고 하는 기업가나 기업가 정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경쟁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보통 선거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당초 선거권은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제공되었다. 재산이 있는 사람만이 자유롭고 자유로운 사람만이 투표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정치인들의 경쟁에 의해 무너졌다.

정치인들은 상대 정당보다 더 많은 지지를 얻어 집권하기 위해 보통 선거권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정착시켰다. 정치적 경쟁을 통해 보통 선거권이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시민의 권리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정치에 경쟁이 없다면 더 좋은 제도도, 더 좋은 정책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경쟁은 근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전에도 존재하였다. 경쟁은 모든 생명체의 본질이다. 식물이나 동물도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경쟁한다. 실은 생명의 탄생자체가 경쟁이다. 암컷은 더 좋은 후손을 남기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서 이긴 수컷을 선택한다. 새끼들은 부모의 사랑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경쟁은 생명현상을 넘어 모든 인간 사회의 본질이다. 인류의 역사는 경쟁의 역사다. 더 좋은 땅을 차지하여 더 좋은 삶의 터전을 가꾸기 위해 인류는 끊임없이 경쟁하며 전쟁도 불사하였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더 많은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경쟁하였다.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많은 정쟁도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경쟁이었다. 인간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적으로 제한된 자리를 쟁탈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였다. 정쟁에서 패한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하기도 하였다.

정치적인 경쟁은 이념이나 체제와 관계없이 모든 정치 집단에 존재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끊임없는 피의 숙청이 지속되는 이유는 바로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위한 경쟁 때문이다. 정치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권력의 주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 나왔다. 권력을 향한 경쟁을 피 흘림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바로 자유주의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경쟁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바로 자유주의 정치 철학이다.

정치에서의 경쟁과 달리 시장이 경쟁과 손을 잡자 경쟁은 생산적 경쟁으로 탈바꿈하였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제로섬이 아니다. 내가 경쟁에서 이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물론 경쟁 상대자는 일시적으로 패배자가 될 수 있지만, 경쟁은 그에게도 새로운 길을 열어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 시장 경쟁의 수혜자는 소비자들이다. 생산자는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시장 경쟁은 수많은 아름다움을 생산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경쟁의 본질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경쟁의 긍정적인 면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에 주목하여 경쟁을 폄하하고 비판한다. 그리고 현대인이 체험하는 다양한 불행을 모두 경쟁 탓으로 돌린다.

현대인의 불행의 원인이 된 경쟁은 다름 아닌 시장경제에서 나왔다고 단정하여 시장경제를 비판한다. 물론 경쟁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끊임없는 경쟁은 가장 강인한 사람들도 지치게 한다. 사람들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두려워하고 배척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또는 강요한다고 여겨지는, 치열한 경쟁이라는 사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은 인간이 자신의 잠재적 능력을 계발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한다. 경쟁이 없다면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경쟁이 없다면 의미 있은 많은 노력들이 애당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영역에서의 경쟁은 경쟁 당사자들에게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에게도 보람을 부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준다. 경쟁은 아름다운 것이다.

(이 글은 15일 자유경제원(원장 현진권)에서 열린 <시장경제에 대한 그릇된 통념깨기 연속토론회-제 1차 “경쟁, 악(惡)인가”>에서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발표한 토론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