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기치로 내건 기업들, '규제 샌드위치' 신세
이병태 교수 "규제 개혁 못하니 면피용으로 만든 정책…포기하는 게 낫다"
   
▲ 노형욱 국무조정실장이 올해 1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규제샌드박스 발전 방안 브리핑을 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문재인 정부가 신 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과감한 혁신은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6일 관가와 스타트업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2일 제8차 신기술‧서비스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총 7건에 대한 규제 샌드박스 지정 여부를 심의했다.

심의를 통과한 안건은 △홈케어 알고리즘 개발 및 내원 안내 서비스 △홈케어 건강관리서비스 △스마트 주류 주문 및 결제 서비스 △민간기관 고지서 모바일 전자고지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서비스 △관광택시 중개 플랫폼 서비스 △생체신호 기반 위험 감지 서비스 등이다.

과기정통부 제8차 심의위원회는 "지난해 지정된 ICT 규제 샌드박스 지정과제가 성공적인 시장 출시를 통해 국민들에게 편익을 제공하고, 제도 개선으로 이뤄지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본 위원회가 빠른 시장 출시를 지원하고 정부의 적극행정을 통해 제도 게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과연 정부는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일까.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문재인 정권이 규제혁신을 목적으로 하는 역점 사업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테스트하는 동안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켜주는 '실증특례'를 뜻한다. 정부 관계자는 "신기술과 서비스가 국민 생명과 안전, 건강상 위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선허용 후규제' 원칙에 따라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게 기회의 장을 열어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가 정책적으로 밀거나 공공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분야나 갈등 무풍지대에만 한정해 허가를 내준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금번 샌드박스에 포함된 '모바일 운전면허 확인서비스'가 올해 도입된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이 외에도 이번 대상에는 대부분 기존 사업자와의 갈등을 빚을 것으로 전망되는 경우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분석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국무총리실은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규제 샌드박스 시행 100일간의 성과와 향후 과제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당시 정부가 통과시켜준 사례는 서울 시내 수소전기차 충전소 4곳 설치·공항 내 AI 안면 인식 시스템·이동형 VR트럭 등 정책상 필요한 것들 뿐이었다.

정작 혁신을 기치로 한 스타트업들은 규제 샌드박스는 커녕 켜켜이 쌓인 '규제 샌드위치'에 끼인 모양새다.

모빌리티 스타트업 VCNC의 '타다'는 총선과 표심을 의식한 정부가 택시업계의 눈치를 보느라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통해 사실상 사장됐다. 타다 뿐만 아니라 차차·벅시·코나투스·타고솔루션즈 등 후발주자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국내 스타트업에서 유일하게 대성공을 거둔 다음카카오는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34개사 중 하나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는 곧 삼성·현대자동차·LG·SK 등 기존 대기업 집단과 동일한 규제를 받게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대기업에 대한 국민적 여론은 부정적인 편이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재벌' 딱지를 부여한 것과 같아 신수종 사업 진출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규제 샌드박스는 법에 의해 금지된 새로운 사업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시험사업을 해 보고, 문제가 없으면 규제를 해제하겠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는 곧 어떤 사업이 사회적 부작용을 만들지 않으면 허용해 준다는 '이성적 의사결정 구조'를 전제한다"면서도 "국내 신규 사업들은 안전성 등의 위험을 판단할 근거가 없어서 불허되지 않고 이해집단 반발에 가로막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글 지도엔 군사시설이 버젓이 뜨는데 네이버 지도는 북한이 보면 안 된다는 허황된 논리가 먹히는 나라"라며 "입으로는 4차산업혁명을 외치지만 실제는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살자는 나라"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정부가 입만 열면 자랑하는 경제 3대 정책 중에 하나라는 혁신성장은 어디있느냐"며 "규제 공화국이 스스로의 발을 묶어 자살의 길로 가는 바보 짓은 멈출 수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규제샌드 박스는 규제개혁을 못하니까 면피용으로 만든 것"이라며 "이해집단 반발과 정부의 무능이 결합해 신 사업은 꿈도 못 꾸게 될 것이기 때문에 샌드박스는 안 하니만 못한 제도"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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