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 코로나19의 판데믹화로 인해 전세계 항공사들이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각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들에 대한 각종 지원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도 과감한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의 글로벌 유행으로 인해 수 주 내 전세계 항공사 대부분이 파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지난 16일자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세계 최대 항공 컨설팅 전문기업 CAPA(Center for Asia Pacific Aviation)를 인용해 "각국 정부발 여행 제한조치로 인해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어 5월까지 거의 모든 항공사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CAPA는 "잇따른 비행편 취소로 인해 수요가 전례없이 매우 낮고 각 항공사별 현금 보유량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며 "정상화가 가능한 시점을 가늠할 수 없다"고도 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도 2주 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선 긴급 대책들이 필요하다"며 "각국 정부가 항공사에 대한 신용 지원을 늘리고, 인프라 비용과 세금을 깎아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같은 평가가 나오자 각국 정부는 자국 항공 산업 살리기에 발 벗고 나섰다.
미국 항공운송업계는 연방 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들은 단기적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여객 운송사에 250억달러, 항공화물업계 40억달러, 중장기적으론 300억달러 규모의 각종 대출 지원 등 한화 약 64조원 정도의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다.
덧붙여 항공권·화물·연료 등에 부과되는 여러 세금과 연방 소비세에 대해 감면 또는 일시적 면제해달라고도 했다. 아울러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항공사 회사채를 인수하거나 채무지급보증을 서달라고도 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항공업계 요청을 100% 수용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화답했고,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역시 "항공사들이 유동성 위기에 처한 만큼 정부가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영국 버진애틀랜틱항공은 자국 정부에 75억파운드(한화 약 11조113억원) 지원을 요구했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부 장관은 항공업계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이탈리아는 자국 내 최대 항공사 알리탈리아를 250억유로(한화 약 33조4190억원)를 들여 국유화한다고까지 선언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대규모로 창궐해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마당에 인수할 사업자를 계속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고, 항공사 파산밖에 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같이 세계 각국 정부들이 자국 항공사에 대해 긴급 수혈을 하는 이유는 항공운송산업이 국가 경제에서 물류를 담당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인식에 바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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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항공사 로고./사진=각 사 |
국내 항공사들 역시 지원을 받고 있긴 하나 아쉽게도 타국 수준의 지원을 받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국내 항공사들은 상당수의 노선을 감축하거나 국내·국제선 전체에 대한 운항을 완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대한항공은 올해 들어 객실 승무원·외국인 조종사를 대상으로 무급휴직을,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10일 넘게 무급 휴직을 시행하고 있다. 재무 사정이 더 좋지 않은 이스타항공은 "비행기를 띄울 수록 손해를 본다"며 오는 24일부터 내달 25일까지 한 달 간 국내선 전 구간 운항을 끊었다. 이 회사는 지난 13일 일본 노선을 끝으로 국제선 운항도 종료한 상태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지난달 18일 △공항 내 주기료 79억원 전액 면제 △착륙료 10~20% 감면 △운수권·슬롯 회수 전면 유예 등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항공업계는 "인천공항 여객량이 92%나 급감해 여객기 10대 중 9대가 공항에 발이 묶인 상태인데 이는 생색내기이며 동족방뇨에 불과하다"고 푸념하고 있다.
정부는 국내 LCC 업계의 유동성 위기 극복을 위해 3000억원 대출 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무담보·무심사 대출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심사 중이라고만 되풀이 하고 있다. 그나마도 조건이 맞지 않아 400억원으로 줄었고 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 3개사에 대한 지급 보증을 요구해 업계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또 FSC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지원책은 그 어느 것도 언급을 하고 있지 않아 문재인 정권의 반기업적 기질이 중차대한 경제 위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경영대학 경영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뒤늦게 확산된 미국과 유럽에선 국가 수장까지 나서는 판"이라며 "항공업계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담보 능력이 없는 LCC 업계에 지급 보증을 하라고 윽박지르고 착륙료 감면 같은 한가한 소릴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허 교수는 "CAPA는 5월 경 전세계 항공사 90%가 도산한다고 전망했는데 하늘길이 막히면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며 "임금 체불·유가 지급 지연 등의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국내 항공사 디폴트는 좀 더 이르게 찾아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이나 일본은 수조, 수십조원에 이르는 현금을 운영지원조로 수혈하고 있다"며 "현 상황에서 항공사들이 회사채를 발행해 숨통을 트려면 정부의 지불 보증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추가경정예산을 다른 곳이 아닌 항공업계 지원에 써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경제 충격이 커지면 어디를 살리고 죽일지와 같은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똑같이 파산이나 대량 해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게 되는데 큰 곳부터 살려야 여파가 적을 것"이라며 "재원이 한정돼 있는 만큼 정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2개 FSC를 중심으로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박근혜 정부 시절 한진해운을 파산시켜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들이 훨씬 비싼 물류비를 지출하고 있다"며 "항공업 살리기는 '대기업 VS. 소기업'과 같은 정치화 할 게 아니라 국가기간산업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디어펜=박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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