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규빈 기자] 대한항공이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선대 회장의 발목을 잡은 '3분의 2룰' 정관 개정에 성공했다. 따라서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도 파란불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27일 대한항공은 오전 9시 서울 강서구 공항동 대한항공빌딩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해 이사 선임 방식을 특별 결의에서 보통 결의로 바꾸는 정관 변경안을 가결시켰다. 대표이사가 겸직하는 이사회 의장직을 이사회에서 선출토록 하는 정관 변경안도 함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대한항공의 지분 11.09%를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은 전날 이사 선임 방식 변경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주총 현장에서는 대한항공 이사회의 원안대로 정관 변경안이 승인됐다.

대다수 상장 기업은 이사 선임·해임안을 일반결의사항으로 분류해 주총 참석 주주 과반의 동의만 얻으면 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대한항공은 그동안 정관에서 이사 선임과 해임을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특별결의사항으로 규정해왔다. 이 정관 규칙은 지난해 3월 고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시 조 전 회장은 주총에 상정된 사내이사 선임 의안 표결에서 찬성 64.09%, 반대 35.91%로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었으나 사내이사 자격을 상실했다. 지분 2.6%가 부족해 주주들의 손에 밀려난 사상 첫 대기업 총수로 기록됐다.

대한항공은 작년과 같은 일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올해 주총에서 미리 정관을 변경해 내년 3월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조원태 회장의 연임을 사수하고자 했다. 주총에서는 올해 임기가 끝나는 우기홍 사장과 이수근 부사장이 사내이사 연임에 성공했다.

아울러 대한항공은 정갑영 전 연세대학교 총장·조명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박현주 SC제일은행 고문 등 3명을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박 고문은 감사위원회 위원으로도 선임됐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 이사회는 사내이사 3명·사외이사 6명 등 총 9명으로 구성됐다.

이사보수한도를 전년과 같은 50억원으로 동결하는 안도 원안대로 통과했다.

▲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사진=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은 서면 인사말에서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항공수요 감소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글로벌 경기 둔화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최상의 안전운항 체계를 상시 유지하고 고객 중심의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델타항공과의 JV를 통해 미주·아시아 네트워크를 계속 확대하며 유럽·동남아 등 중장거리 신규 노선을 적극 개발하겠다"며 "내부적으로는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실용과 소통에 기반한 의사결정 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부연했다.

조 회장은 또한 B787-9 등 차세대 신형 항공기 도입을 통한 기내서비스 업그레이드·보유 항공기 가동 시간 확대·수익성 중심의 노선 구조 개편을 통한 원가경쟁력 강화 등도 약속했다.

한편 이날 주총은 오전 9시에 시작해 모든 안건이 만장일치로 원안대로 통과돼 30분 만에 마무리됐다는 전언이다.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이 불발된 작년 주총에는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며 주주 200여명과 취재진 300여명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반면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주주 100여명만 참석해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주주간 좌석 배치에 간격을 뒀다"며 취재진의 주총장 출입을 제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