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정 교수 “법의 남용, 수 많은 갈등과 논쟁 불러 일으켜 사회적 비용만 늘어나"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기업이 불법행위를 통해 영리적 이익을 얻은 경우 이익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손해배상액이나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 국회는 일반 경영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단가 인하'나 '발주 취소' 그리고 '반품' 등 일반 거래에까지 이 법을 확대 적용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경제민주화가 화두가 된 이후 예견된 수순이지만, 기업을 공격하면 인기가 올라가리라는 기대를 가진 정치인들은 실적 쌓기 식으로 앞다퉈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계약의 자유’를 침해하고 기업활동을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이에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은 관련 전문가들을 모시고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현 실태를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세미나를 공동개최했다. 아래 글은 패널로 참석한 김선정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영미법에서 만들어지고 미국에서 유지되어 온 것으로 법조일원주의. 위헌법률심사제도, 배심제도, 선례구속의 원칙과 더불어 미국법의 특징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도입이 논의되었고 특히 1990년대 사법개혁논의에서 중요한 주제의 하나로 부각된 이후 이론적 공방이 계속되어 왔다. 그런 와중에 공정거래법에 도입되었고, 발표문에 나타나있듯이 동시다발적으로 입법론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은 실질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나 보상과는 전혀 다른 정책적 고려(entirely different public policy consideration)에서 검토되는데 특히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책적 목표가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본 토론자는 이의 전면적 도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발언하고 있는 김선정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첫째, 이 주제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언급하고, 그중 반대론자들이 도입을 반대하는 논거로 제시하는 것이지만, 실손해배상이라는 배상법체계와 맞지 않는다.1) 징벌적 손해배상은 정신적 손해배상도 아니다. 본 토론자가 이해하기로 이는 손해배상이 아니라 징벌금액의 지급이다. 그리고 그 금액의 지급은 징벌의 대가를 사인에게 지급하는 독특한 구조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문제는 국회의 결의에 앞서 엄밀한 이론적 검토가 행하여져야 하고 전문가와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동시에 기업의 창의적 활동 등 다른 헌법적 가치의 훼손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논의되어야 한다. 노무현정부 시절 사법제도개혁추진단이 입법시안까지 만들었지만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본다.

둘째, 글로벌기준에서 보편적제도인가 하는 점이다. 흔히 영미를 들지만 큰 차이가 있다. 영미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이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은 단순한 고의정도를 넘어서는 사악한 행위에 대한 징계라는 의미에서 베상청구권자가 복수하는(vindictive) 의미(Black's law dictionary, 6th ed, p.390)에 이어져 있다. 때로는 "배심원들의 분노"가 더해져 있지만 연방대법원은 디수의 위헌소송을 통하여 무분별한 배상금을 제어해갔다.

   
▲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전경.

징벌적 손해배상은 명예훼손, 제조물책임, 반독점, 저작권침해, 환경책임, 공민권행사 등의 부분에 집중되어 왔다. 그 인정요건으로 “악의적 불법행위”란 “고의적 불법행위로서 극단적이고 예외적인 행위”, 즉 고의보다 더 악성이 강한 불법행위라고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가해자 측의 악의(malice), 사기적 또는 사악한 동기(fraudulent or evil motive), 의식적(conscious)이고 계획적(deliberate)인 타인의 권리 내지 이익의 무시라고 할 만한 객관적 상황이 존재할 때 이를 악의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또한 “중대한 과실(gross negligence)”의 경우에도 그 개념상 논란이 많으며, 판례상으로도 의도적 무시(conscious disregard)나 그로 인한 행위결과에 대한 분별없는 무관심(reckless indifference)을 나타내는 행위, 행위결과를 의식적으로 무시하였다고 추측할 정도의 악의적인 행위나 전적인 부주의가 있었다고 인정될 때에만 징벌적 배상책임을 논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5개주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자체를 금지하였고, 40개주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하여 한 가지 이상의 제한을 가하였다. 징벌적 손해배상의 최고한도가 설정되는가 하면2) 소송절차 중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산정절차를 따로 분리하여 규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의 성립요건에 대한 입증책임을 다른 일반적 민사소송절차보다 더 엄격하게 하고,3) 원고에게 지급될 징벌적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주가 환수하고,4)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산정함에 있어서 피고회사의 재정능력에 대한 증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5) 징벌적 손해배상이 면제되는 경우를 명시하는 것6) 등이 주요한 개혁노력이다.

   
▲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이 사회자로 발언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긍정론과 부정론을 불러일으킨 1964년의 루커스 대 버나드 사건( Bookes v. Barnard, House of Lords[1964]2 W.L.R. 269;108S.J.93; [1964]1 All E.R.367; [1964]1 Lloyd's Rep. 28.) 이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아주 제한적으로 인정하는 추세라고 한다. 7)

벌금의 과다에 대한 우려는 대헌장에도 나타나있다. 영국의 경우, 1991년의 머피 대 부레튼우드 판결(Murphy v. Brentwood D. C. House of Lords[1991] A.C. 398; [1990]3 W.L.R. 414; [1990] 2 All E.R.908; [1990]2 Lloyed's Rep. 467. Weir)을 계기로 징벌적 손해배상은 커먼로법의 세계를 완전히 떠났다고 평가된다. 8)

영국에서 쇠퇴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오히려 미국에 계수되어 훨씬 활발하게 이용되었다. 입법의 초기에 이 제도의 정당성에 대한 Sedgwick와 Greenleaf간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대부분의 주는 판례에 의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한다. 그러나 일리노이, 매사추세츠, 네브래스카, 워싱턴의 4개 주에서는 판례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9)

미국의 경우에는 1980년대 이후부터 징벌적 배상제도가 갖는 문제점들이 지적되면서 나름대로의 개선노력이 법원과 입법가들에 의하여 진행되었다. 연방대법원은 연방수정헌법 제8조의 “과도한 벌금의 금지조항”에 위반하는지 여부와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에 위반하는지 여부를 따져왔다.

모든 나라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의지하는 것은 아니며 미국의 경우도 주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징벌적 배상제도의 부작용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도입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입법태도는 무책임하다.

   
▲ 자유경제원과 미디어펜이 공동주최한 <징벌적 손해배상,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청중 전경.

셋째, 법의 남용문제이다. 처방단위가 강한 약은 즉효를 나타내는데 좋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입법이 거듭되다보면 건강이 회복되기보다 내성만 키울 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한 기업은 도산하지 않는 한, 또 시장에서의 지배력이 전무하지 않는 한 제품가격인상, 임금삭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배상액을 전가시켜 갈 것이다. 돈은 갑이 받고 내기는 기업을 통하여 을이 내는 것이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금은 피해자로서는 횡재(smart money)이다. 만일 미국의 다수주에서 승인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부보한 보험을 국내에서 판매하게 되면 배상액의 전가는 훨씬 자연스럽게 제품판매가격에 이전된다. 그러나 미국에서 두 차례 몰아쳤던 제조물책임의 위기(product liability crisis)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넷째,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으로 노리고자 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실손해배상을 하고나더라도 이윤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업의 불법행위를 억지하자는 것이라면(Restatement of Torts, 2d), 이런 정책목표는 다른 대안에 의하여서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소송제도의 개정 등도 있을 수 있고 소송을 부추기는 3배배상제도도 극히 제한된 부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대치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세계적으로 보편적 제도인지 의문이다. 미국에서도 이 제도의 부작용과 폐해를 개선하려는 다양한 노력이 전개됨에도 우리나라 입법론자들은 그 효과만 보려고 하고 있다. 단순한 생각으로 도입하면 수많은 논쟁과 갈등을 유발할 것이다. 일단 규제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보자는 성급한 입법은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대가로 치르게 된다. 가장 두려운 것은 모든 부분의 피해자가 자신의 이해가 얽힌 부분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할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분야라고 주장하는 일이다. 개별법, 민법, 단행법으로 이 제도가 자리잡아가는 상황이 우려된다. [미디어펜=김규태 연구원]

1) 베트남참전군인들이 미국법인인 제초제유해물질제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이른바 고엽제소송에서 2006.1.26. 서울고법은 “위자료의 보완적 기능은 재산적 손해의 발생이 인정되는 데도 손해액의 확정이 불가능하여 그 손해전보를 받을 수 없게 됨으로써 피해회복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 이를 참작하여 위자료액을 증액함으로써 손해전보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보완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함부로 그 보완적 기능을 확정하여 그 재산상 손해액의 확정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편의한 방법으로 위자료 명목 아래 사실상 손해의 전보를 꾀하는 것과 같은 일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또 외국판결의 집행과 관련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공서위반이라고 본 대법원 1997. 9. 9. 선고 96다47517 판결.
2) 콜로라도주에서는 실손해에 대한 전보 성격의 손해배상에다 약간의 증액가능성을 인정하는가 하면 코네티컷주에서는 소송비용을 한도로 하면서 제조물책임소송에서만 전보적 손해의 2배까지 인정한다. 플로리다주에서는 실손해배상액의 3배 또는 50만 달러 중 많은 것으로 한다. 몬태나주에서는 1000만 달러 또는 피고의 순재산의 3% 중 적은 것을 한도로 한다.

3) 대다수 주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입증의 정도를 통상의 민사소송에서 채택한 입증원칙인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에서 ‘명확하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clear and convincing)’의 원칙으로 변경하였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민사적 제재와 형사적 제재의 두 기능을 다하기 때문에 입증의 정도를 형사처벌을 위한 입증수준으로 높인 것이다. 다만 clear and convincing proof 원칙은 여전히 민사소송의 원칙으로 형사소송에서 요구되는 ‘합리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proof beyond a reasonable doubt)'의 수준보다는 낮다.

4) 2004년 캘리포니아주는 원고가 받은 징벌적 손해배상금의 75%를 주재무성에 반납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5) 징벌적 손해배상은 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명령받은 기업이 다시는 타인의 안전에 대한 침해행위를 하지 아니하겠다고 결심하도록 그가 소유하고 있는 부(corporate wealth)를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지배하여 왔다. 그러나. 만일 징벌적 손해배상이 형사제재적 성격도 지니는 것이라면 같은 범죄에 대하여는 같은 벌이 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6) 일부 주에서는 미국의 식품의약청(FDA)의 승인을 받은 약품은 제조자 또는 판매자에 대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면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처는 의약품이나 의료장비 제조자가 보험비용을 줄이고 그 금액을 신약이나 새로운 의료장비 개발에 투입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조치이다.

7) 부적절한 파업협박에 의하여 실직한 런던공항의 숙련기술자가 자신이 회원이었던 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Tony Weir, A Casebook on Tort, 10th. ed., Sweet & Maxwell, 2004, pp.605-606.

8) Basil Markesinis / Michael Coester / Guido Alpa / Augustus Ullstein, Compensation for Personal Injury in English, German and Italian Law,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p.45.

9) 다만 루이지애나주와 매사추세츠주 판례는 제정법에 명시적인 징벌적 손해배상규정이 있는 경우까지 이 제도를 배척하지는 않는다. 재발억제 보다는 오히려 원고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 즉 위자료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하는 주도 있다. 앨라배마. 버지니아 등 일부 주에서는 배상액의 상한을 설정하는가 하면 플로리다 주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보상적 손해배상액의 3배라고 인정하고 있고, 알래스카 주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과하는 경우에는 단순한 ‘증거의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보다 고도의 ‘명확하고 확신을 가지기에 족한 증거(clear and convincing proof)’를 요건으로 삼고 있다. 몬태나 주는 보상적 손해배상부분과 징벌적 손해배상부분을 구분하여 판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