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손혜정 기자]북한 김여정이 지난 4일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강력 비난하는 담화를 내자 여권·친여 성향 인사들이 일제히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헌법기관으로 당선된 탈북민 출신 태영호·지성호 미래통합당 의원을 겨냥해 혐오발언까지 쏟아내자 이들 탈북민 의원과 통합당 측은 “최고존엄 비방금지법도 만들 판”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살포 비난 발언 이후 연일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입법 가속화를 촉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백해무익한 대북전단 살포가 더이상 사회적 소모가 안 되게 대북전단 금지법을 마무리하겠다”며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처리를 당론으로 추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민주당 의원도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민단체에 대해 연일 공세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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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사진=연합뉴스 |
이뿐만 아니라 김 의원은 동료 의원인 태영호˙지성호 의원을 겨냥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해서 성실히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적응이 안 된 사람을 일부러 골라서 국회의원을 시키느냐”며 다소 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윤건영 민주당 의원도 탈북민에 대해 "그 나라가 싫어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며, 대북전단이 북한의 입장에선 이들에 의해 "자극하는 문제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김갑수 시사평론가도 지난 8일 KBS 1TV '사사건건에 출연해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활동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활동을 돕는 지성호 의원을 향해 "분수를 아세요! 분수를 아시라고! 우리가 받아주고 의원까지 시켰으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지성호 의원, 분수를 아시라고"라고 돌연 사납게 비난했다.
이에 지 의원은 곧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 정권의 냉혹한 인권 현실보다 견디기 힘든 것은 김갑수 평론가의 말처럼 탈북민을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탈북민이 가지는 천부적 생래적 권리인 인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같이 여권 및 친여 인사들이 탈북민들을 향해 다소 혐오성·공격성 발언을 가감없이 쏟아내는 것은 김여정의 담화 직후이기 때문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여정은 담화에서 탈북민들을 겨냥, "배신자들",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들", "똥개"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에 통합당은 여권을 향해 '김여정 하명법'에 굴종하는 '저자세'라고 비판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내고 "김여정이 ‘법이 있으라’ 명하니 정부여당은 4시간여만에 ‘정부 법안’ 의지를 상남하는 성실함으로 화답했다”며 “압박이 통하니 북한은 쾌재를 불렀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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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측은 회의를 통해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추진을 당론으로 결정는 데 의견을 모았다./사진=더불어민주당 |
배현진 통합당 원내대변인도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국민들이 진정 분노하는 것은 김여정이 '대북전단 금지법을 만들라'는 엄포에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아 '법을 만들겠다'며 순응하는 우리 정부와, 탈북민과 대북전단 문제의 처벌만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이라며 "만약 최고존엄을 사수하겠다는 북한이 하명(下命)하면 '북 최고존엄 비방방지법'도 제정할 것이냐"고 꼬집었다.
통합당 소속으로 서울 송파병에 출마했다 낙선한 김근식 경남대 교수도 민주당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추진과 관련, "참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며 "도대체 대한민국의 집권여당인지 북한의 '자매정당'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라고 비판했다. 앞서 그는 지난 7일 페이스북을 통해서도 북한이 청와대를 향해 연일 막말을 쏟아붓는 것에 대해 "미리 계산해서 철저히 준비한 전략적 행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조태용 통합당 의원은 윤건영 의원을 겨냥해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민을 북한 정권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취지에서 "윤 의원이 헌법 공부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여권 인사들이 북한의 메시지와 같은 맥락에서 '자매정당'처럼 보이는 언행을 드러내는 것은 대북전단 살포 활동 관련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회에선 지난 9일 정부여당 측에서 철마다 심심치않게 거론하는 '종전 선언' 논란이 또 한 차례 일었던 바 있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의원 전체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종전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한반도 종전 선언 촉구결의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는 6.15 남북공동선언일이 다가오자 '종전 선언' 이슈를 재점화하는 행보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권에서 주장하는 '종전 선언' 문제는 북한 대외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우민끼)’가 주장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김 의원은 문자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 되는 해다. 이제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넘어 공식적으로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우민끼도 “종전 선언 채택이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첫 공정이고 북미 사이의 신뢰조성을 위한 필수적 요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 정권 들어 대북유화정책이 강화된 측면이 있는 데다 지난해 국방부가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을 삭제하기까지 했지만 한국과 북한은 법률적으로 분명한 적국이라는 것이 군 전문가의 일관된 입장이다. 아울러 ‘종전 선언’은 필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론으로 귀결되는 데다 북한의 핵보유국화에 '시간을 벌어주는' 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경희 통합당 의원은 재차 불거지는 종전 선언 논란에 “한번 선언하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의미, 한미동맹의 핵심이 와해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의 5개 육해공 기지도 우리나라에 대한 지원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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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 출신 지성호(왼쪽)·태영호 통합당 의원./사진=(좌)지성호 의원 페이스북 (우)미래통합당 |
태영호 의원은 지난 10일 성명서를 통해 "굴종적 대북유화정책을 포기하고 현실적이고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라"며 "비현실적인 대북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북한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이를 토대로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만시지탄이지만 이것만이 그동안의 안보 무능과 실책을 만회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정부여당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 추진과 탈북민단체에 대한 고발 조치 등은 현 정부 임기 종료 전 '남북평화'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조급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미디어펜'에 이같이 분석하며 "하락하는 경제 상황에 대한 돌파구를 위해 '북한'을 붙잡는 것"이라며 "상당히 유감인 것은 엄연히 우리 국민인 탈북민을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미디어펜'에 "대북전단 살포가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명분을 대지만 그렇다면 전 국민의 궁극적인 위협이 되고 있는 북핵·미사일 발사 실험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여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정부가 굉장히 초조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손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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