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자금의 벤처투자 확대 유도...총수 관련 회사에는 투자 금지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정부가 그 동안 철칙이던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완전자회사 형태로 보유할 수 있게 허용했다.

다만 '재벌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펀드를 조성해도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가진 회사에는 투자할 수 없고, 외부자금도 40%까지만 조달이 가능토록 했다.

이에 대해 대기업의 벤처투자 확대를 유도해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와, 금산분리 원칙이 무너졌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사진=미디어펜]


◇ '산업자본' 대기업 일반지주사도 금융계열사 CVC 보유 허용

정부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 겸 경제장관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일반지주회사의 CVC 제한적 보유' 방안을 발표했다.

CVC는 회사법인이 대주주인 벤처캐피탈로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창투사), 신기술사업금융업자(신기사) 등이 CVC로 분류된다.

그동안에는 금융과 산업간 상호 소유나 지배를 금지하는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지주회사는 금융회사인 CVC를 보유할 수 없었고, 대기업들은 일반지주회사 체제 밖에 있는 계열사나 해외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CVC를 설립해왔다.

이번에 정부는 대기업이 벤처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는 내용으로 공정거래법을 연내 개정하기로 했다.

일반지주회사도 창투사나 신기사 형태로 CVC를 설립할 수 있게 됐는데, 다만 일반지주회사가 지분을 100% 보유한 완전자회사 형태로만 CVC를 설립해야 하고, 지분을 일부만 가진 자회사나 손자회사 등의 형태로는 만들 수 없다.

정진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은 "지주회사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가 100% 완전자회사"라며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지주사 외 계열사의 출자나 손자회사로는 안된다"고 말했다.

CVC의 차입 규모는 벤처지주회사 수준인 자기자본의 200%로 제한, 기존 창투사(1000%)나 신기사(900%)보다 축소했다.

또 일반지주사가 보유하는 CVC의 업무 범위와 외부자금 조달 비율, 투자처 등을 제한, 금산분리 원칙 훼손이나 재벌의 사금고화에 대한 우려를 막을 방침이다.

우선 창투사든 신기사든, 투자 업무만 할 수 있고 여신 등 다른 금융업무는 해선 안 된다.

투자대상도 총수 일가가 지분을 가진 회사, 계열회사, 공시대상기업집단이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회사에는 할 수 없으며, 해외 투자는 CVC 총자산의 20%까지만 가능하다.

또 외부자금은 펀드 조성액의 최대 40%까지만 조달할 수 있고, 총수일가 및 계열회사 중 금융회사는 CVC가 조성하는 펀드에 출자할 수 없다.

CVC가 투자한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집단 편입요건을 충족하면, 벤처지주회사와 같이 10년간 편입을 유예해주는 유인책도 내놨는데, 중견기업 이상이 지분율 30% 이상을 소유한 최대주주이거나 지배적 영향력이 있는 경우 즉시 편입해야 하고, 중소·벤처도 10년 이후엔 마찬가지다.

아울러 일반지주사가 보유한 CVC는 출자자 현황과 투자내역, 자금대차관계, 특수관계인 거래관계 등을 공정위에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하며, 공정위와 중소벤처기업부(창투사),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신기사)로부터 조사·감독도 받아야 한다.

◇ 시중 유동성 벤처투자에 유입 기대…금산분리 훼손 논란은 여전

정부는 일반지주회사의 CVC 보유 허용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응한 경제활성화 대책으로 풍부해진 시중의 유동성이 벤처투자로 흘러 들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주요 선진국은 대기업의 CVC 소유를 허용하고 있으며, 실제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이 설립한 구글벤처스 등 CVC는 글로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대기업 자금의 벤처투자 확대, 회수시장 활성화를 통한 벤처투자 선순환 생태계 구축, 우리 경제의 혁신성·역동성 강화를 위해, 오랜 논의를 거쳐 이런 방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은 경제활성화의 전기 마련을 위해 대기업 투자를 이끌어내야 하는 홍 부총리, 중소·벤처기업 육성이 목표인 박영선 중기벤처부 장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무 부처인 공정위는 최대한 보완책을 마련, 이런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을 연내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조성욱 공정위원장은 지난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대기업의 CVC 제한적 보유를 허용하되, 안전장치가 같이 가야 한다"면서 "대기업 자본이 벤처로 흘러가도록 한다는 취지에 동의하지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기업집단 내 일반지주사가 있는 28개 집단 중 롯데, CJ, 코오롱, IMM인베스트먼트 등 4곳은 지주체제 밖 계열사로 국내 CVC를 보유하고 있고, SK와 LG 등은 해외법인 형태 보유중인데, 법이 개정되면 지주체제 밖 계열사가 보유한 CVC를 지주사 자회사로 두는 것도 가능해진다.

지주체제 밖 계열사가 보유한 CVC는 재무적 투자에 치중하고, 반면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둔 CVC는 전략적 투자에 주력할 수 있다는 게 학계와 업계의 전망이다.

정진욱 국장은 "지주회사 쪽에 문의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68개사로부터 회신을 받았는데, 18개사 정도가 CVC 설립 의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며 "대기업도 7개사 정도가 CVC에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대기업 일반지주사의 CVC 보유에 대해, 금산분리 원칙 훼손 논란과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우려도 여전, 국회 입법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정 국장은 "대주주 사금고화 우려는 투자용도로만 자금운용이 제한돼 있고 투자자들도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므로, 견제가 가능할 것"이라며 "전혀 예측하지 못한 금산분리 완화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어느 정도 탄력적 대응도 할 수 있다"며, 시행령 등 조정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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