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노조는 정의선 회장과 신산업 시대 격변 대응 논의하는데...
기아차 노조는 파업 협박, 이사회 사퇴 요구 등 '투쟁 악습' 못 버려
[미디어펜=김태우 기자]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지난 3일 쟁의행위(파업) 찬반투표에서 과반수이상이 찬성하며 파업을 결정했다. 2020년 임금 및 단체협상 요구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사측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현대차 노사가 일찌감치 무분규로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타결하고 정의선 회장과 노조 지도부가 만나 회사의 미래 발전에 대해 논의하는 등 상생 협력을 지향하고 있는 것과는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생산라인 /사진=기아차 제공


더욱이 파업 여부에 따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기아차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피해는 협력사들로 전가되며 근근히 버티고 있는 부품업체들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아차 노조는 지난 3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20분까지 전체 조합원 2만9261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참여인원(2만6222명 전체의 89.6%)의 73%인 2만1457명이 파업 찬성의 뜻을 밝혔다.

기아차 노조는 사측과 올해 9차례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본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지난달 26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쟁의조정 신청을 냈다. 중노위가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면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이 가능해진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 국내외에서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기아차의 행보에도 제동이 걸릴 상황이다.

기아차는 올해 10개월간 국내 시장에서 46만3020대를 판매하며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높은 9.6%(전년 동기 대비)의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말 출시된 K5를 비롯, 올해 출시된 쏘렌토, 카니발 등 신차가 잇달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결과다.

같은 기간 수출 및 해외 현지생산판매는 166만6831대로 전년 동기 대비 11.0% 감소했지만 비슷한 사업 구조의 현대차가 22.5%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크게 선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기아차는 지난 9월부터 해외 시장에서도 본격적으로 반등을 시작했다. 9월에는 7.7%, 10월에도 7.0%의 해외 시장 판매 증가율을 기록했다.

아직 해외 일부 공장의 가동률이 완전치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국내 공장의 수출 물량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파업에 돌입해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기아차에게는 국내외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10월 국내에서 1만2093대가 팔리며 미니밴 차급 최초로 전 차종 베스트셀링카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카니발의 경우 파업으로 공급이 중단되면 신차효과가 크게 반감될 우려가 있다.

노조는 당장 파업에 돌입하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일단 임단협 교섭을 재개하고 이번 찬반투표에서 높은 찬성률이 나온 것을 들어 사측을 압박한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노조의 요구 사항은 사측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다. 대표적인 게 ‘잔업 복원’이다. 기아차는 지난 2017년 8월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하자 매일 30분씩 하던 잔업을 그해 9월부터 중단했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서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게 돼 있는 잔업수당 부담이 늘었기 때문이다.

기아차 노조는 잔업 폐지로 근로자들의 임금 손실이 심해지고 있다며 사측에 잔업 복원을 요구해 왔다. 같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차 근로자들과 비교해 기아차 근로자들이 연간 200만원가량씩 임금 손실을 입고 있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현대차의 경우 통상임금 소송에서 사측이 승소하며 잔업수당 부담이 늘지 않아 기존과 같이 잔업과 특근을 실시해 오고 있다.

기아차는 잔업을 실시할 경우 현대차의 1.5배에 달하는 잔업수당을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된다. 이 경우 현대차 노조와의 형평성 문제에 직면하는 만큼 쉽게 수용하기 힘든 사안이다.

기아차 노조는 자동차 전동화에 따른 인력 수요 감소에 대해서도 사측에 당장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 생산수요가 줄고 전기차와 수소차가 확대되면 부품 수가 줄면서 조립에 투입되는 인력이 감소하는 상황을 감안해 전기차 및 수소차 모듈 부품 공장을 기아차 사내에 유치하라는 것이다.

전동화에 따른 인력 수요 감소는 모든 완성차 업계 근로자들의 우려 사항이지만, 노조가 임단협 과정에서 전동화 관련 부품 공장을 유치하라고 사측을 압박하는 경우는 기아차 노조가 유일하다.

현대차 노조도 전동화 관련 부품을 울산공장 내에서 생산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방안이나 시기에 대해서는 사측과 유연한 태도로 협의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이 만나 노사가 합심해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의견 일치를 보였다.

기아차 노조는 그밖에도 법적으로 보장되지도 않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것과, 기아차가 3분기 실적에 1조원 이상의 품질 비용을 반영해 실적을 훼손한 책임을 지고 이사회가 사퇴할 것을 요구하는 등 과도한 경영 개입으로 사측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 트렌드에 대응하려면 회사의 경영 마인드 뿐만 아니라 노조의 투쟁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면서 "파업으로 사측을 압박하는 방식으로는 고용을 보장하기는커녕 고용보장을 뒤흔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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