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조세·규제 통한 평등사회 건설이 경제적 불평등 되레 심화

   
▲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오늘날 인류의 경제적 화두는 경제적 불평등 문제이다. 전후 지난 50-60년 동안 인류는 경제평등을 실현하기위해 사회주의 실험은 물론 수정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 실험을 해왔다. 조세정책과 복지정책 등을 통한 소득재분배정책과 각종의 규제제도를 통해 경제적 약자를 지원 우대함으로써 경제적 강자로부터 약자에게로 부를 재분배하여 경제적으로 보다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노력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 인류는 성장의 장기정체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라는 정반대의 결과에 봉착하게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해법은 무엇인가?

경제적 불평등의 기원

오늘날 전 세계가 부딪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은 두 가지 기원을 갖는다.
우선은 자연적 불평등이다. 인간의 신상필벌의 선택본능에서 나오는 경제적 기회와 결과의 불평등이다. 이는 자연적 불평등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누구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개인 각자의 선택본능에 의해, “우수한 결과에 상을 내리고 열등한 결과에 벌을 내리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차별적 선택’”이 경제적 불평등의 기원이다.

시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거래 행위는 우수한 성과에 보다 많은 기회와 보상을 허용하는 행위이다. 이에 따른 기회와 결과의 차이, 차등 혹은 불평등은 바로 인류의 성장과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다. 기회는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자에게, 결과 또한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성과를 내는 자에게 더 많이 주어지는 법이다. 이런 불평등의 기원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원천이다. 신상필벌의 선택본능은 강해지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자연선택에 의한 인간 진화의 산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인위적으로 조장되는 불평등이다. 민주주의 사회가 등장하기 이전 전제군주 하에서와 같이 정치사회적 신분상의 차별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를 인위적 불평등라 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 강요되는 정치,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해 경제적 자유가 제약되어 발생하는 경제적 불평등이다. 바로 이로 인한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이 바로 자유주의 사상과 민주주의 체제의 등장을 가져온 것이다. 이를 통해 확보한 것이, 혹은 확보할 수 있는 것이 “법 앞의 평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인위적 불평등을 완벽하게 제거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민주국가에서 마저도 각종의 공익이라는 이유나 정의나 공정이라는 이름하에 경제활동에 대한 공명정대한 진입의 자유에 역행하는 법제도를 만들어냄으로써 형식적으로는 법 앞의 평등을 내걸지만 결국은 기회와 결과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추구해야할 그리고 실현가능한 평등의 이상은 바로 이런 불평등의 원천을 해소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 평등주의 포퓰리즘 이념에 빠진 한국의 민주정치가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막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상필벌, 인센티브 유도가 아니라 경제민주화, 상생이라는 명목으로 국가가 경제성장의 유인과 동기를 차단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평등이념: 경제평등 민주주의

인류의 정치, 경제, 사회 개혁의 역사는 바로 정치사회적 평등과 더불어 경제적 불평등을 개선하고자 노력해온 역사였다. 17-18세기 근대 서구 계몽주의 사상은 전제군주 왕정하의 정치, 사회적 불평등을 타파하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체제의 등장을 재촉하였다. 영국의 명예혁명(1688-89)을 비롯하여, 미국의 독립(1776)과 민주제도의 정착, 불란서 혁명(1789)으로 이어지는 자유, 민주혁명이 정치적, 사회적 평등을 획득하는데 기여하였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는 장치로 등장하였다. 자유 민주주의는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양대 이념의 바퀴위에서 굴러가게 되었다.

그러나 물론 정치사회적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은 불완전하고 민주주의마저도 완벽하지 못해, 모든 사람의 “법 앞의 평등”을 온전하게 보장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여전히 인위적 경제 불평등의 요인이 남아있을 수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각종의 노력을 추구해온 것이 인류의 정치, 경제개혁의 역사이다.

그런데 2차 대전이후 민주주의 정치가 보편화되면서 일인일표정치에 의해 형식적으로는 정치적 평등을 이루었으나 경제적 평등 없이 실질적 정치평등이 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경제적 평등이 정치적 평등의 중요한 전제라는 “실질적 평등”이념이 등장하면서 민주주의 정치는 더 이상 경제적 불평등문제를 소홀이 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인류의 절반가량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불평등 모순론에 따라 자연적 불평등마저도 해소해야한다는 사회주의 실험을 지난 반세기 이상 했지만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그러나 이런 실패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제 세계 거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정치적 평등을 넘어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경제평등을 주요가치로 내걸고 있는 사회민주주주의, 수정자본주의 등을 일컬어 경제평등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추세의 배경은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일인일표 민주주의 방식이 그 요인이다. 민주주의가 원래의 목적인 정치적으로 평등한 권리를 행사하여 지도자를 뽑는 장치를 넘어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장치로 작동하면서 경제적 평등을 원하는,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다수의 요구를 따르는 포퓰리즘이 일반화되었다. 이런 포퓰리즘은 이제 국가의 힘에 의해 인위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둘째로, 포퓰리즘은 좀 더 정교한 경제평등주의로 둔갑한다. 소위 실체적 평등이라는 개념은 일인일표의 형식적 평등의 달성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과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사실상은 정치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자들이 표심을 왜곡하는 정치마케팅에 기여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결과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체적 정치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경제적 평등을 추구해야한다는 “경제민주화” 이념이 등장하게 된다. 물론 이의 실천을 위해 소득불평등의 현장인 기업의 경영을 민주화해야한다는 “경영민주화”이념도 등장하였다. 이런 관점에서도 국가가 인위적으로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모순론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체제는 자본가계급의 착취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의 원천이라 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을 청산하기 위해 공산혁명과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주창하였다. 그래서 절대적 경제평등을 추구한다는 사회주의 체제가 등장하였다. 오늘날 북한을 제외한 사회주의 체제가 형식적으로는 다 몰락하였지만 두 가지 면에서 경제평등사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나는 자본주의 불평등기원론과 모순론이 여전히 인류 사상사에 보편적 정치, 사회사상으로 군림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전후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간의 냉전 대립 속에서 소위 수정 자본주의의 출현을 가져왔다. 이런 배경 하에서 이제 서구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은 물론 전후 독립한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이 모두 소위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 노동자폭력혁명을 포기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사회주의 경제평등이념을 실천하겠다는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체제, 즉 사회민주주의가 보편화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사회주의 체제는 몰락하였지만 사회주의 이념은 민주주의 속에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면서 자본주의 모순론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문제의 원인: 인위적 불평등과 자연적 불평등에 대한 혼란

그러나 전후 50-60 년간 경제적 평등을 지향해온 노력의 결과는 서두에 언급한 바와 같이 사회주의의 실패와 마찬가지로 크게 기대이하이다. 왜 이런 실망스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었을까? 필자는 인위적 불평등과 자연적 불평등에 대한 혼란 속에 무리하게 자연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의 최대의 장점인 성장과 발전의 유인메커니즘의 작동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리한 경제적 평등의 추구가,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설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선 민주주의의 평등의 이념이 인위적 불평등요인을 제거하는 선을 넘어 인간생존과 삶의 동력의 원천인 자연적 불평등을 제거하는데 나섰기 때문이다. 신상필벌의 자연 진화의 원리를 무력화시키는 과도한 평등의 추구는 성장과 발전의 유인을 차단하여 모두의 경제적 노력을 하향 평준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을 정체시켜 일자리공급에 실패함으로써 중산층의 몰락을 초래하게 되는데, 이 모든 결과가 바로, 장기성장정체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연적 불평등을 자본가들이나 혹은 체제에 의한 인위적 불평등으로 보는 칼 마르크스적 자본주의 모순관은 인간사회의 자연적 불평등 요인을 전혀 용인하지 못한다. 결국 사회주의가 몰락한 것이 자연적 불평등요인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의 성장발전의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인 것임을 이해한다면 오늘날 세계경제문제도 결국은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불평등모순론에 집착한 사민주의체제의 불가피한 결과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장기성장정체와 경제양극화라는 세계경제문제의 원인은 바로 불평등의 기원을 혼돈하여, 무리하게 자연적 불평등까지 제거하려 시도함으로써 자연적 불평등이 갖는 긍정적, 성장 유인효과를 차단함으로써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평등이라는 좋은 뜻에도 불구하고 신상필벌에 역행하여 좋은 성과보다 나쁜 성과를 대접하는 사회는 결코 번영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재확인하게 된 셈이라 할 수 있다.

불안한 인류의 경제적 미래

이런 관점에서 보면 앞으로 70억 인류의 성장유인 회복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해법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어려워 보인다. 원인이 명백하니 해답은 쉬울 수 있으나 그 답이 정치이념과 체제를 바꾸는 일이니 실천이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회가 신상필벌의 인센티브구조를 살려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국가도 사회도 신상필벌의 경제 인센티브구조를 국가의 경제사회제도와 정책에 구현함으로써 모든 국민들이 성장과 발전의 길로 나서도록 유인하여야 한다.
 
지금과 같은 과도한 누진세제도를 완화하고 매사에 열심히 노력하는 국민들을 격려하여야 국민의 성장 동기를 살려내어 장기성장정체를 벗어날 수 있고, 스스로 도와 음지에서 양지로 탈출하는 국민을 더 우대하는 인센티브가 차별화된 복지정책을 도입하여 복지대상 국민들을 자립성장의 길로 유인해야 복지정책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해야 모든 국민들을 성장과 발전의 길로 나서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해법은 명료해 보이나 오늘날의 포퓰리즘 민주정치나 사민주의 정치체제가 이런 해법을 쉽게 수용할 수 있을지, 오늘날의 정치체제 속에서 이런 해법을 이끌어나갈 정치지도자들이 나올 수 있을지가 또 다른 난제라고 생각한다. 70억 일류의 경제적 미래가 불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