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화가 ‘툴르즈 로트레크’를 알게된건 고등학교 미술시간이었다. 선생님은 30분 넘도록 그의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영화 ‘물랑루즈’에 등장한 난쟁이 아저씨를 기억하냐며 프랑스에 가게 되면 꼭 물랑루즈에서 그의 숨결을 느껴보라고 말했다.

로트레크는 귀족으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채 직업화가로 평생을 살았다. 평생이라고 해봐야 36세, 물랑루즈에서 무희를 주로 그리다 술로 인해 죽었다. 매일 화려함을 봤지만 그 속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늘 밝으면서도 우울하다.

그의 그림을 직접 본건 2012년 미국 뉴욕에서였다. 특히 한 무희의 발가벗은 뒷모습을 그린 ‘거울 앞에 선 누드(Nude standing before Mirror)’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했다. 우울해서였다. 그리고 연극 무대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대중에게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키스’, 침대에서 키스하는 여인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작품이었다.

   
▲ 연극 '멜로드라마' 공연장면 / 사진=이다엔터테인먼트

연극 ‘멜로드라마’는 툴르즈 로트레크의 ‘키스’와 많이 닮아있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그림은 롭스의 ‘성 안토니오스의 유혹’이지만 이는 작품의 스토리라인을 단편적으로만 설명할 뿐이다. 파국으로 향하는 불륜을 그린, 어쩌면 뻔한 이야기의 시작 치고는 참 친절한 설정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섯 남녀는 유혹으로 뭉쳐있다. 사랑과 약속, 그 모두를 충족시켜야 하는 결혼, 둘 중에 하나가 무너졌을 때의 고통이 순차적으로 그려진다.

이들의 관계는 간단하다. 성공한 큐레이터 여자와 회사에서 외면받는 남자 부부. 이들을 취재하는 드라마작가는 부인을 운명이라 생각하고, 경계성 지능장애를 가진 그의 누나는 남편과 교감한다. 작가의 애인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동시에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려 한다.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법한 통속극이다. 드라마처럼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예상한대로 흐른다. 분위기가 가라앉을 즈음에는 장유정 연출의 독특한 유머코드가 빛을 발한다. 전체적으로는 텅 비었지만 높낮이와 작은 막을 이용해 장면을 전환하는 무대장치도 수준높다.

이들은 줄곧 ‘불륜도 사랑’임을 역설한다. 날카롭거나 나쁘지 않다. 대신 슬프다. 흐름은 후반까지도 예측 가능하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은 충격적이다. 좋은 의미와 나쁜의미를 동반해 충격적이다.

   
▲ 연극 '멜로드라마' 공연장면 / 사진=이다엔터테인먼트

작품은 줄곧 ‘사랑이 의무가 될 수 있냐’고 묻는다. "담배 끊는다고 끊어지디? 평생 참는 거지. 결혼했다고 사랑이란 감정이 끊어지냐고"라는 대사는 뜨끔하다. 젊은 날, 결혼도 안하고 애인도 없는 이들이 술에 취해 안주가 떨어지면 하던 이야기다. 그런데 막상 이 질문에 흔쾌히 답할 사람도 없다.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내 감정이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는 세상 아닌가. 그래서 이 질문은 끊임없이 돌고 돈다.

툴루즈 로트레크의 ‘키스’ 역시 이와 같은 범주에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춤을 추고 몸을 팔던 여자는 왜 남자와 키스로 교감하면서 눈물을 흘릴까. 로트렉 자신은 이 장면을 보고 그리며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안타까웠을까, 아니면 부러웠을까, 그조차도 아니면 무료했을까.

‘멜로드라마’는 통속극인 ‘사랑과 전쟁’과 다를바 없는 이야기에도 의무와 책임, 그리고 본질적인 슬픔을 담아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인간의 욕망과 사랑을 절묘하게 연결시키면서도 웃음과 먹먹한 슬픔을 절묘하게 담아냈다. 다만 미성숙하고 거친 느낌 탓에 모든 장면이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건 흠이다. 2월 1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 [미디어펜=최상진 기자]

   
▲ 툴루즈 로트레크의 '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