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라지면 자동차산업 생태계 타격…일자리 중시하던 정부 기저, 의미 퇴색
[미디어펜=김태우 기자]쌍용자동차가 10년 만에 다시 기업 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는다. 업계에서는 대규모 실직 사태를 막기 위해 법원이 청산보다는 새로운 인수자를 찾아 쌍용차를 살리는 방안을 택할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만 보면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자 중심과 일자리 확보에 목소리를 높였던 현 정부의 뜻을 받아들이며 어려운 경영환경에서도 복직 희망자 700여명 모두를 받아들였던 쌍용차지만 정작 어려운 상황에 처한 지금, 소외되고 있는 모습이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지난달 15일 쌍용차에 대한 기업 회생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 2011년 3월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졸업한 지 10년 만의 일이다.

법원은 쌍용차가 지난해 12월 21일 기업 회생과 함께 신청한 자율 구조조정 지원(ARS) 프로그램을 승인하며 두 차례에 걸쳐 회생 개시 결정을 미뤄왔다. 하지만, 쌍용차의 유력 투자자로 거론된 HAAH오토모티브가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하지 않자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달 들어 회생 절차 개시 절차를 밟았다.

   
▲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사진=쌍용차 제공


법원은 회생 절차에 돌입해도 기간을 단축해 신속히 결론을 내리겠다는 뜻을 쌍용차에 전달한 바 있다. 일단 법원은 조사위원을 선임해 쌍용차의 재무 상태를 정밀 실사할 전망이다. 조사위원은 쌍용차의 재무 상태를 평가해 회사의 회생 가능성에 관한 보고서를 낸다.

조사위원이 회생 절차를 지속하자는 의견을 제출하면 관리인은 회생 계획안을 작성한다. 기업을 청산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되면 청산 보고를 낼 수도 있다. 

쌍용차는 그동안 어려운 상황에서도 2009년 옥쇄파업 당시 회사를 떠났던 이들 중 복직 희망자 700여명 모두를 받아들였다. 지난 2013년 초 무급휴직자 454명 전원 복직을 시작으로 2015년 노·노·사(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노조, 쌍용차 사측) 3자 합의에 따라 2016년 2월 40명 및 2017년 4월 62명, 2018년 3월 26명 등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등에 대해 단계적으로 복직을 진행해 왔다.

업계에서는 2009년 구조조정 사태 이후 2016년 280억원으로 흑자에 턱걸이를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매년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한 쌍용차가 고임금 근로자들을 받아들이는 게 무리한 일이라는 지적이 있어왔다.

복직된 근로자들은 회사를 떠나 있던 기간 동안의 근속연수를 보장받아 신입사원 대비 연봉이 평균 2800만원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단숨에 고액연봉자가 대폭 늘어난 것이다.

그나마 2015년 '노·노·사 합의' 당시에는 복직 규모와 시기를 신차출시에 따른 매출 확대와 인력수요 증가 등 경영상황에 맞추기로 하는 등 비교적 유연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문 대통령이 마힌드라 회장에게 해고자 복직을 요청하는 등 쌍용차를 압박하며 유연성은 사라졌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이 문제에 직접 개입해 해고자 복직을 종용했다.

결국 2018년 9월 기존 노·노·사 3자에 대통령 직속 경사노위까지 포함된 '노·노·사·정 합의'에 따라 나머지 117명의 복직 스케줄이 잡혔다. 쌍용차는 그해 64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그런 부분은 전혀 감안되지 않은 채 71명이 복직됐다.

이듬해인 2019년 쌍용차는 실적 부진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그해 9월 사무직 대상 안식년제 시행과 총 22개 복지 항목을 중단 혹은 축소해 10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하는 내용의 고강도 자구안을 내놨다. 기업노조인 쌍용차 노조는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고려해 임금 동결에 이어 자구안도 받아들였다.

유동성 위기가 심해진 그해 말에는 상여금 200% 반납, PI 성과급 및 생산격려금 반납, 연차 지급율 변경(150→100%) 등 임금 삭감이 포함된 내용의 추가 자구안까지 내놓았다. 쌍용차 노조는 이 역시 수용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추가 복직 요구는 계속됐다. 유동성 위기로 '노·노·사·정 합의' 당시 복직 스케줄이 불가피하게 늦춰진 가운데 마힌드라의 지원 중단 선언까지 있었지만, 결국 압박에 내몰린 쌍용차는 지난해 5월 마지막 46명의 해고자를 복직시켰다.

마지막 복직자들은 대부분 2009년 쌍용차 옥쇄파업 당시 마지막까지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농성을 이어간 이들이다. 이들의 복직에 따른 임금부담은 쌍용차의 적자폭 확대를 키웠다. 

티볼리를 시작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꾸준한 노력을 거듭해 숨 돌릴 틈이 겨우 생겼었다. 하지만 정부의 부담스러운 요구인 해고자 복직을 수용하며 현재의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는 쌍용차의 회생절차를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 

반면 자동차 업계에서는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 특성상 생태계가 무너지면 연쇄적인 협력사들의 도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확보돼야 한다. 이에 현대차그룹 계열의 부품사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도 현재 쌍용차의 재도약에 응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쌍용차를 함께 생존하고 성장해 나가야 할 동업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동업자 정신은 한국 자동차산업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국내 5개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각기 자사에만 부품을 공급하는 '전속 협력사'가 딸려 있기도 하지만, 상당수의 협력사는 복수의 완성차 업체들이 공유한다. 그 비중은 2차, 3차 협력사로 단계를 넓힐수록 더 커진다.

   
▲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협력사들의 응원 문구가 담긴 현수막들이 걸려있다. /사진=쌍용자동차 제공


5개 완성차 업체들이 공동으로 수많은 부품 협력사들을 먹여 살리는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하지만 완성차 한 곳이 무너진다면 이 생태계도 흔들린다.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한 협력사들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거나 심지어 실적 악화로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나머지 4개 완성차 업체들도 타격을 입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형국이 된다.

현대모비스와 현대트랜시스가 대놓고 쌍용차의 재도약을 응원해도 현대차그룹의 일원인 현대차와 기아가 아무말 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쌍용차가 사라지고 그 빈자리를 수입차들이 메우거나 현대차·기아의 독과점 체제가 강화되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이나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수입차는 여전히 물류 구조상 가격경쟁력이나 사후 서비스 측면에서 완성차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고, 우리 경제에 기여하는 부가가치는 완성차에 비하면 제로에 가깝다.

자동차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만 개의 부품과 소재들이 소요되며, 각 제조단계별 부가가치와 고용효과도 상당하다. 그 과정이 국내에서 이뤄지느냐 해외에서 이뤄지느냐는 천지차이다.

쌍용차 평택공장에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 외에도 여러 기업들이 응원 문구를 내걸었다. 전자 대기업 LG전자를 비롯, 굴지의 철강기업 포스코, 자동차 부품 메이저 만도, 그리고 쌍용차 부품협력사 비대위까지 한 마음으로 쌍용차의 재도약을 응원하고 있다.

쌍용차와 쌍용차 노조는 지난 10년간 무분규 임단협을 달성하는 모범적인 노사문화를 보여줬던 곳이다. 특히 '고통분담'을 적극 실천하며 지금까지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모습은 현재 자동차 업계에 꼭 필요한 존재다. 

매년 거듭되는 임단협으로 회사의 실적에 악영향을 주는 것과 달리 회사와 노조가 경영정상화라는 목표로 달려온 쌍용차다. 현정부가 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고 일자리 창출에 목소리를 높여온 만큼 쌍용차의 회생절차에도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자리 창출과 실업률을 낮추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정부가 연계된 일자리와 산업생태계를 지키지 않는 다는 것은 모순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쌍용차 문제가 회사 1곳의 문제가 아닌 연계된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정부의 뜻을 받아들여 해고자 복직과 일자리 확충에 기여한 쌍용차의 회생절차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쌍용차의 노사관계는 현재 국내완성차 업체들에서 찾아보기 힘든 곳이며 쌍용차의 부재로 인해 발생한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피해는 클 것이다"며 "일자리 창출을 목소리 높였던 정부가 있는 일지리도 지키지 못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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