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안정화 방안, '꿔다 놓은 보릿자루' 전락 가능성 여전
지난해 현대제철·기아차 온실가스 배출부채 1500억원 규모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도입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시행 7년차를 맞았다. 오는 7월부터는 3기 계획기간에 접어들어 유상할당 확대 등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가격이 올라가고 그만큼 기업 부담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배출권 거래 자체가 활성화 되지 않은 시장 왜곡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디어펜은 탄소배출권 3기를 맞아 변화하는 제도와 기업 리스크 등을 심층 분석하고, 거래활성화를 통한 제도 연착륙 방안에 대해 알아본다. <편집자 주>

[미디어펜=나광호 기자]탄소배출권 거래제 3기 시행을 앞두고 산업계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배출권 비용 증가로 투자가 저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배출권(KAU20) 가격은 톤당 1만7050원, 거래량은 17만6447톤으로 집계됐다. 거래량이 15만톤을 넘은 것은 지난해 12월 29일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업계는 글로벌 경기 회복에 따른 공장 가동률 향상 등을 이유로 배출권 가격이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인상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배출권 가격이 50유로(약 6만8000원)를 돌파하는 등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 2020년 5월29일~2021년 5월27일 탄소배출권(KAU20) 가격 추이(단위 : 원/톤)/자료=한국거래소


국내에서도 석유화학 업체들이 '슈퍼사이클'을 맞아 설비 신·증설 및 공장 가동률 향상에 나서고 있으며, 정유업계도 석화·윤활기유를 중심으로 생산량 확대가 점쳐진다. 철강 역시 자동차·가전·건설을 비롯한 전후방산업 회복에 힘입어 수요 상승폭이 글로벌 수요가 전년 대비 4.1%에서 5.8%로 상향 조정되는 등 배출량 확대가 유력하다.

특히 1톤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2)가 2~2.5톤 가량 나오는 철강산업은 배출권 가격 인상에 예민한 분야로, 포스코·현대제철·세아베스틸 등은 바뀐 할당 방식 때문에 손실이 증가할 수 있는 업체로 꼽힌다.

전중선 포스코 전략기획본부장은 최근 진행된 컨퍼런스콜을 통해 "탄소배출권에 의한 재무부담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상할당 비중이 3%에서 10%로 늘어난다는 점에서 비용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포스코가 지난해 창사 이래 최초로 온실가스 배출부채가 쌓고, 현대제철의 배출부채가 1570억원을 넘은 것도 이같은 견해에 힘을 싣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아자동차의 배출부채도 1500억원을 넘었으며, 삼성전자(318억원)과 SK하이닉스(107억원) 등 전자업계의 부담도 가중되는 중으로 전해졌다.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 중 한국수력원자력을 제외한 발전5사의 배출부채도 2019년 기준 6822억원에 달했다. 다만 한전에 대해서는 석탄화력발전량 감소 및 무상할당량 추가 등이 비용 부담을 낮출 것이라는 의견과 액화천연가스(LNG) 복합화력 발전량 증가를 비롯한 요소로 인해 큰 차이가 없을 수 있다는 반론이 대립하고 있다.
 
   
▲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사진=현대제철


'롤러코스터'를 연상케 하는 가격 변동이 기업의 경영 전략 수립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차질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지난해 4월에는 배출권 가격이 4만원을 상회했으며, 이후 2만원선으로 떨어졌다가 12월 들어 3만원대로 올라선 바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공회의소가 배출권거래제 참여업체 364개사를 대상으로 대응실태를 조사한 결과 25.5%가 가격 급등락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지적했으며, 3차 기간 동안 정부가 추진해야 할 중점과제에 대한 질문에서도 28.8%가 가격 안정화를 꼽았다.

가격 안정화를 위해 정부가 보유한 예비분을 시장에 투입할 수 있으나 발동이 쉽지 않다는 점도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물량이 풀리기 위해서는 배출권 가격이 8만3500원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포집을 비롯한 기술을 개발하고,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을 통해 해외 배출권을 국내로 도입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산업경쟁력 약화를 우려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지난 1·2기를 반면교사 삼아 부족분을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충당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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