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경제원 토론회 '국제시장, 우리도 할 말 있습니다'…편파 평론 지적
   
▲ 정소담 아나운서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국제시장’이라는 키워드를 입력했을 때 검색되는 뉴스의 숫자는 1월25일 현재 17만3천여 건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난해 12월17일 이래로 40여 일의 시간동안 매일매일 수 천여 건의 뉴스가 쏟아져온 셈이다.

개봉 첫날, 그것도 조조 상영으로 이 영화를 관람했기에 이 영화에 대한 담론의 생성과 진행 과정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내재적인 관점에서도 훌륭한 영화지만 ‘국제시장’은 분명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속의 ‘뭔가’를 건드리는 영화다.

그것이 슬픔이었던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분노였던 사람은 화를 냈다. ‘토’가 나온다고 말한 평론가까지 있었다. 그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사람들은 ‘정치 논쟁’이라고 불렀다.

관객 1000만 돌파 이후 ‘국제시장’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조금씩 줄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이제 우리는 ‘국제시장’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 매듭이 어떻게 지어지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문화담론의 역사와 향방도 어느 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 또 우리는 무엇을 기각해야 할까.

평론가들의 외면, 시장의 환영 … 평론이란 무엇인가

먼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이 영화에 대한 ‘정치적 해석’ 문제다. 거칠게 요약하면 ‘국제시장을 정치 영화로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려면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에 대한 얘기를 선행해야 한다.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은 ‘국제시장’이 시사회로 공개된 시점에서 이미 불편한 심기를 여러 차례 드러냈다. 수많은 얘기가 오갔지만 요점은 ‘시대의 정치적 질곡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문제의식은 ‘평론이란 무엇인가’를 물으며 격렬한 논쟁점을 만들었다. 평론가가 ‘이미 만들어진’ 무언가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평론가라는 직업자체가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

문제는 ‘국제시장’에 대해 논평하는 대다수의 평론가들이 반대의 관점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며 영화를 공격했다. 그 시대 정권의 탄압 때문에 아파했던 사람들을 ‘조명했어야만 했는데 하지 않았다’는 게 ‘국제시장’의 죄목이 될 수 있을까? 하지 않은 일을 근거로 영화를 비판하는 것이 논리에 부합하는 일일까?

이는 창작물을 비평해야 하는 평론가가 창작자의 영역을 넘보는 ‘통제 욕구’를 발현한 사례로 기록되어야 마땅하다. 한국 사회 내부에 하이에크가 말한 ‘치명적 자만’이 얼마나 팽배해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월권을 교정시켜줄 그 어떤 목소리도 대한민국 평론계 내부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99%의 평론가들이 70년대를 다룬 영화에는 응당 ‘독재 타도’나 ‘노동 운동’ 같은 이슈들이 나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가운데 ‘국제시장’은 평론가들로부터 외면 받았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국제시장’에게는 ‘1180만 명의 관객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관객들의 압도적인 지지는 ‘국제시장’에 쏟아진 억울한 비평들의 아픔을 일소하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너무나도 솔직한 시장의 반응이었고 그랬기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 영화 '국제시장'.
‘좌우 프레임’ 걷어낼 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미심쩍은 부분은 있다. 이번 ‘국제시장’의 흥행을 이른바 ‘우파의 승리’로 다소 무리하게 해석하고자 하는 일련의 흐름이다.

‘국제시장’을 굳이 우파영화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주인공 덕수 개인(個人)의 삶에 이 영화가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에 대한 중시는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 합의를 볼 수 있는 사항인바, 공동체주의자들이 대세를 점한 한국 문화계에서 개인의 관점으로 세계를 바라본 ‘국제시장’은 대단히 드문 성공 사례임에는 확실하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시장’을 우파 영화로만 보아야 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대중들은 그저 재미있는 영화를 찾아 극장으로 가서 티켓을 끊고 스크린 앞에서 눈물 흘렸을 뿐이다. 이 행위를 ‘우파의 승리’로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평론가들이 빠진 함정에 똑같이 빠지게 된다. 정치는 중요하지만 삶과 예술의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국제시장’의 성공에 고무된 일각의 여론은 시대와 역사의 사명을 좀 더 명징하게 드러낸 신작들이 더 많이 제작되길 바라는 것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승만에 대한 영화, 연평해전을 그린 영화들이 건전한 가치에 입각해 제작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다만 그 작품들이 지나치게 한쪽 진영의 전유물로 여겨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건국은, 그리고 일련의 고난과 발전은 결코 한쪽 진영만의 노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식도 없는 사람이 사실은 가장 자유주의적일 수도 있다. 조명이 비치지 않는 곳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본분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름 없는 자유주의자’들이다.

대한민국 문화예술계가 앞으로 더욱 더 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우리는 ‘국제시장’의 성공 비결을 예리하게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국제시장’의 흥행 이후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의 전파가 더욱 중요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정소담 아나운서 

(이 글은 자유경제원에서 주최한 '국제시장, 우리도 할 말 있습니다' 토론회에서 정소담 아나운서가 발표한 토론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