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피해자 '분리조치' 필수…군 회식문화 쇄신·위력위계 성범죄 처벌도 관건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숨진 이 모 중사에 대해 추가 성추행 피해가 최소 2차례 더 있었다는 유족의 고소가 잇따르면서, 일명 '공군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이 2~3차 가해 및 은폐와 관련된 상급자·지휘관으로 수사가 커지고 있다.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여군 일각과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터질게 터졌다는 평이 크다.

문제는 구조적인 병폐다. 사건의 본질이 군내 조직적인 은폐·무마 여부에 있다는 점에서, 군당국 합동수사단이 어떤 결론을 내릴지 주목된다.

국방부는 지난 2018년 1월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근무여건 조성' 등 양성평등하고 가족친화적인 근무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며 '국방개혁 2.0' 개혁과제를 세웠지만 정치적 수사에 그쳤다.

우선 참석과 폭음을 강요하는 군내 회식 문화가 각종 성폭력 사건의 온상이라는 점이다. 

사건이 벌어져 피해자가 신고하면 가해자는 술 탓을 돌리고 기억나지 않는다는 식으로 해명하기 일쑤다. 앞서 해군은 지난 2016년 '여군과 저녁 회식을 갖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지만 반발이 일자 철회했다.

해군 예비역 윤모 대위(여성)는 4일 본보 취재에 "군인정신 말하면서 작정하고 술을 먹이는데 당할 사람 있나"라고 "(술을 많이 마신 여군) 일부는 정신을 잃고 필름 끊기기 일쑤"라고 전했다.

그는 "군에서 대책을 내놓더라도 일선 현장에선 지휘관이나 상급자 마음에 따라 달리 적용되기 마련"이라며 "여군 입장에서 조심하고 또 조심하려고 해도 강압적인 분위기는 어떻게 할 수 없다. 각자가 정신 똑바로 차리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 국방부는 지난 2018년 1월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근무여건 조성' 등 양성평등하고 가족친화적인 근무여건을 조성해 나가겠다며 '국방개혁 2.0' 개혁과제를 세운 바 있다. 본 이미지는 당시 국방부가 배포한 관련 카드뉴스 중 일부이다. /사진=국방부 제공
더 큰 구조적 문제는 군 형법상의 맹점이다.

국민 대다수가 적용받는 민간 형법에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가 규정되어 있다. 고용주 또는 상급자가 속임수, 지위, 권력으로 밑의 사람과 성관계를 맺을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다.

하지만 군 형법엔 없다. 미군의 경우 남녀 성별과 무관하게 상관이 자신의 지휘 아래 있는 부하와 성관계를 맺으면 군 형법 위반으로 처벌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군 형법에 큰 구멍이 뚫려 있는 셈이다.

군내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다수 대리해온 박 모 변호사(48)는 이날 본보 취재에 "성폭행의 경우 민간 형법의 동일범죄 형량 보다 군 형법이 더 엄격한건 사실이지만, 성범죄 사건의 1심 선고 기준 실형 비율은 각 군 모두 10% 언저리"라며 "성범죄 사건 10분의 1만 실형이 때려질 뿐이고 집행유예 비율은 실형보다 5배 가까이 높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더욱이 군인은 민간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 군 인사법 또는 각 군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며 "피해자는 부대 분위기와 눈치상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할정도로 숨어야 하고, 반면 가해자는 자신의 보직을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그는 "군 감찰 기능은 부대내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로 흘러가는게 아니라 계급 및 중요도나 뒷배경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군 형법에 위력 및 위계에 의한 간음 처벌 조항이 없는게 가장 큰 맹점이지만, 사건을 둘러싼 거의 모든 조건이 방어하는 입장에서 여성 피해자에게 불리하다"고 밝혔다.

또다른 문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국방부 성폭력 지침을 내부자료로 분류해 일반인들에게 비공개한다는 점이다. 사건 발생 후 가해자와 피해자를 제대로 분리하는지 여부나 군 관련 메뉴얼의 존재, 그 실행 여부에 대해 외부에서 평가할 도리가 없다.

이번 '공군 이 중사'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성추행 사실을 신고했지만 군이 이를 은폐하려 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다.

성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즉각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해 상하 지위-지휘 감독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건 상식이지만, 군내 인사 방식은 다르다.

일부 군에서는 분리조치는 커녕 가해자인 상급자가 피해자 부하에 대한 인사 점수를 매기도록 한 사례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3년에 한번씩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발간한다. 가장 최근인 지난 2019년 발간된 '군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군 설문 조사자 중 11.4%가 조사 시점을 기준으로 1년간 성희롱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3년 전인 2016년의 8.4%보다 3.0%포인트 늘어났다.

국가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군 부대 내 성범죄 피해는 오히려 늘어난 셈이다.

앞서 국방부는 2018년 1월 '국방개혁 2.0' 과제를 밝히면서 △전문 강사에 의한 성폭력 예방교육 확대, △양성평등센터장 등 성폭력 예방 전담조직 강화, △민간 전문상담관 확대, △성범죄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 적용(원 스트라이크 아웃)을 방안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러한 국방개혁 2.0 과제 시행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군 이 모 중사' 사건과 같은 사례가 알려져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성범죄 사건이 밖에 알려지면 일단 지휘관부터 보직 해임하는 군 경향도 조직적인 은폐를 부추긴다는 분석도 있다.

이를 해결하려면 사건이 일어난 것이 근무평정·승진 심사와 무관하도록 하고,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공정하고 엄정하게 처리했는지 여부로 지휘관을 평가한다면 개선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든 피해자의 심정과 생명은 반드시 보호 받아야 한다. 일부 남성의 왜곡된 성의식 개선만이 사건에 대한 답은 아니라는 점에서, 투명하고 명확한 인사 분리와 피해자 중심주의로서의 강력한 처벌, 여러가지 세심한 제도적 보완책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