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손흥민(29·토트넘 홋스퍼)이 레바논과 월드컵 예선 레바논전에서 골을 넣었다. A매치에서 정말 오랜만에 골을 넣은 기쁨도 컸겠지만, 손흥민이 더욱 골을 넣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전 토트넘 동료 크리스티안 에릭센의 쾌유를 비는 세리머니를 꼭 펼쳐야 했던 것.

손흥민은 13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레바논과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H조 최종전에서 1-1 동점이던 후반 20분 페널티킥의 키커로 나섰다. 남태희가 얻어낸 페널티킥 찬스였다.

   
▲ 손흥민이 골을 넣은 후 손가락으로 '23' 표시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대표팀에 오면 캡틴 완장을 차고, 자신의 플레이가 돋보이기보다는 늘 동료들 우선으로 하는 이타적인 플레이에 주력하는 손흥민이다. 슛보다는 돌파나 패스로 동료들에게 찬스를 만들어주기 위해 애쓴다. 지난 2019년 10월 스리랑카전 2골 이후 그동안 손흥민의 A매치 골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손흥민은 평소보다 슛 시도를 많이 했다. 페널티킥을 얻어냈을 때 평소 같았으면 손흥민은 황의조 등 동료들에게 키커를 양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날 그는 직접 키커로 나섰고, 침착한 슛으로 골을 터뜨렸다. 한국에 2-1 역전을 안긴, 20개월만에 대표팀 경기에서 터뜨린 손흥민의 골이었다.

손흥민의 골 세리머니가 눈길을 끌었다. 중계 카메라를 향해 달려가며 양 손가락으로 숫자 '2'와 '3'을 만들었다. 그렇게 '23번'을 만들어 보인 후 손흥민은 카메라에 얼굴을 바짝 대고 '크리스티안, 힘 내, 아이 러브 유(Christian, Stay strong, I love you)'라고 얘기했다.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전 토트넘 동료 크리스티안 에릭센을 위한 세리머니였다. 23은 에릭센의 토트넘 시절 등번호다.

   
▲ 손흥민이 골을 넣은 후 중계 카메라에 얼굴을 대고 에릭센의 쾌유를 기원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에릭센은 한국 시간으로 이날 새벽 열린 덴마크-핀란드의 유로2020 경기에 덴마크 대표선수로 출전했다. 그런데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져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달려나온 의료진의 긴급 심폐소생 덕에 의식을 회복하고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전 세계 축구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아찔한 장면이었다. 현지에서는 에릭센이 선수 생활을 계속 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에릭센은 지난해 1월 이탈리아의 인터밀란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손흥민과 토트넘에서 호흡을 맞췄던 동료이자 1992년생 동갑내기 친구였다. 그라운드에서 쓰러진 에릭센을 위해 손흥민은 쾌유를 비는 골 세리머니로 우정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손흥민의 역전골로 결국 한국은 2-1로 레바논을 물리쳤고, 무패(5승 1무) 전적으로 최종예선에 진출했다. 2차예선을 마무리하는 골을 손흥민이 장식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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