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실효성 없고 수술 회피" vs 환자단체 "피해구제 보완돼야"
보건부령 정당한 사유 있으면 녹화 거부 가능 '자의적 해석' 가능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수술실 내부에 외부네트워크와 연결되지 않은 CC(폐쇄회로)TV를 설치, 운영토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이르면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2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2년 유예기간 후 시행을 골자로 정치권·시민단체에서 법안 통과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향후 수술실 CCTV 설치법 시행에 따라 어떤 모습이 연출될지 관심이 쏠린다.

우선 이번 의료법 개정안에 따르면, 전신마취 등으로 환자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의료기관은 수술실 내부에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설치비용은 정부가 지원한다.

다만 환자 요청이 있을 때 녹음 없이 촬영하고, 환자와 의료진 모두 동의하면 녹음까지 가능하다. 영상은 30일 이상 보관한다. 영상 열람·제공은 수사·재판 관련 공공기관의 요청이 있거나 환자·의료인 전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 한 대형병원 수술실 앞에서 관계자들이 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응급 수술이나 위험도가 높은 수술을 할 경우 및 정당한 사유가 있을 때는 예외로 인정한다. 이 경우,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이외에 촬영 거부가 가능한 경우는 보건복지부 시행령을 통해 조정할 수 있다.

온도차가 있지만 일각에서는 법안 자체에 대해 반대하고 있고, 반대쪽에서는 더 강하게 보완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가장 큰 쟁점으로는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CCTV 촬영 예외조항이 꼽힌다.

수술을 직접 집도하는 의료진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개정안에 대해 강한 반대 의사를 드러냈고, 국회가 최종 통과시키면 즉각 '헌법소원' 카드를 꺼내들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CCTV를 설치해 의료진을 상시 감시 상태에 두는건 수술 집중력을 저해하고 이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의료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한다"면서 "환자 보호에 오히려 역행하는 법안이고 의료수준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병원협회 또한 "내부 CCTV 촬영에 따른 부작용의 내용과 수준은 매우 심각하다"며 "극소수 의료 일탈행위에 대한 다양한 제재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쟁점이 많은 CCTV 설치법을 처리한 것은 유감"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유령수술, 성범죄, 의료사고 은폐 등을 예방하기 위한 수술실 CCTV 설치법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며 환영하고 나섰다.

다만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복지위 통과 법안에는 한국소비자원에서의 피해구제의 조정절차 개시는 빠져 있고, CCTV 설치 예외 요건 예시에서 일부 조항은 자의적 확대 해석 우려가 커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법사위에서 추가 논의를 통해 보건복지부 시행령 등 CCTV 촬영을 거부하는 예외조항 자체를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료사고 분쟁 사건을 수십차례 다뤄온 최 모 변호사(40)는 24일 본보 취재에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위험도가 높은 수술의 경우 그 촬영 기준이 불명확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법안에서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한 조정 중재 절차 개시만 들어가 있는데, 이는 자동개시가 아니라 의료인이 거부하면 각하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각하되면 민형사 소송을 따로 제기해야 한다"며 "현재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은, 보건복지부 시행령을 개정해서 보완해야 한다고 본다. 법조항에 대한 자의적 해석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명확히 잡아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30년 넘게 산부인과 전문의로 일해온 한 모 원장(67)은 본보 취재에 "법안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녹음을 사실상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할 경우 법안 취지의 실효성을 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원장은 "의료진 입장에서는 당연히 의료사고에 걸리지 않도록 극도로 방어적인, 소극적인 수술로 일관할 확률이 높다"며 "이러한 행태를 녹음도 못하는 CCTV가 잡아낼 수 없을 뿐더러 어쩔 수 없는 여러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서로 합의 하에 찍으면 아무 문제될 일 없겠지만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힘들다"며 "의료진에 따라 혹은 병원에 따라 내부 방침이 암묵적으로 정해져서 온전히 환자들의 의료 사고를 최대한 예방하려고 하기 보다는, 사고가 나더라도 CCTV를 통해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당초 이번 법안은 여야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 속에 심사가 3번째 연기되는 끝에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통과됐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된 지 6년 만이다.

24일 국회 법사위는 당장 처리해야 하는 쟁점법안이 쌓여 있어, 이날 법사위 상정 및 처리를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의 이달 법사위 상정이 무산되면, 9월 정기 국회가 논의한 후 처리할 전망이다.

공은 던져졌다. 앞으로 환자와 의료진, 양측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