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시찰 1시간내내 경어…안하무인·막말 정치권에 교훈
   
▲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

서슬 퍼렇던 총리 시절의 JP, 25살 김중위에게 존대하다

752 OP(Observation Post). 흔히들 ‘애기봉 전망대’라고 부르는 곳에서 44년 전 있었던 일이다. 1971년 한겨울,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 애기봉 전망대에 헬기 두 대가 연달아 내렸다. 첫 번째 헬기에는 기자들과 수행인원이 탑승했었다. 이어 착륙한 두 번째 헬기에서 내린 인물은 신임 국무총리 김종필이었다. 나라의 2인자인 국무총리가 최전방 부대를 방문한 것이다.

지금은 애기봉 전망대가 관광지처럼 되었지만, 당시 애기봉 전망대는 관측소가 있는 벙커에 통신반, 관측하사 등 장교 휘하 십여 명의 군인들만 지내는 단출한 곳이었다. 애기봉 전망대 헬기포트에서 원 스타 여단장과 대대장 휘하 군인 이십여 명은 긴장한 채로 국무총리를 맞았다. 김종필 총리는 OP 관측장교의 브리핑을 듣고 나서 그의 안내를 받으며 현장을 둘러보았다. 여단장, 대대장 및 수행 경호원들이 뒤따랐다.

최전방 애기봉 전망대의 준비태세와 건너편 북한군의 동향에 대한 얘기를 한 시간 가량 주고받으며, 동행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난 뒤 김종필 총리는 현장을 떠났다.

   
▲ 22일 오후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부인 故 박영옥 씨의 빈소에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40대 중반이지만 5.16 군사정변의 주역으로서 초대 중앙정보부장과 국회의원을 거친 국무총리 김종필은 박정희 정권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런데 현장 OP, 애기봉 전망대에서 김종필 총리가 관측장교와 몇몇 군인들에게 보였던 모습은 의외였다.

1대1로 얘기를 나누었던 25살 중위에게 1시간 내내 깎듯이 경어를 쓴 것이다. 정중하게 설명을 부탁하고 현장 군인의 말을 경청하는 겸손한 총리의 모습이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의를 다한 모습이었다. 이 모두는 1970년 입대 후 해병대 관측장교로서 애기봉 전망대에 군복무하던 필자 아버지의 증언이다.

김종필, 적을 만들지 않았던 거목

지난 21일 부인 별세로 인해 다시금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한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고 있다. 필자는 그의 인격적인 면에 주목한다. 김종필은 뼛속까지 2인자로서 그 역할을 다했고 주위 많은 이들에게 예를 다했다고 한다. 적을 만들지 않았던 김종필은 2000년대 초반까지 정계의 거목으로서 한국 정치사의 일임을 담당했다.

   
▲ 1971년 김종필 총리는 애기봉 전망대를 방문해 OP 관측장교의 브리핑을 듣고 나서 그의 안내를 받으며 현장을 둘러보았다. 

김종필은 무슨 일이든 전면에 나서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굴마담으로 나서지 않고 그림자로서 철저히 2인자 역할을 수행했다. 한일협정 성사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김종필은 뒤에서 일을 많이 했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정계의 실세였다. '박정희 후계자', '잠재적 대안자'로 거론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지금의 승냥이 같은 정치문화에 김종필의 처신은 많은 교훈을 일깨워준다.

2015년 대한민국 정계에 주는 교훈

국회의원들을 위시하여 정치인 누군가가 인신공격 등의 막말을 쏟아내면 이를 사방곳곳에 널리 알리는 언론이 가세한다. 때로는 언론이 직접 이슈를 터트리고 이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언론과 정치인은 이미 끼리끼리 놀고 있다.

2014년 연말 한 달 내내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찌라시로 판명 받은 청와대 문건 사건, 최근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의 막말이 담긴 녹취록 공개 등이 대표적이다. 시민들과 경찰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갑질을 해대서 ‘김갑’으로 불리우기도 했던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오히려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별의별 막말과 비난 어린 언사는 국회를 시궁창으로 만든다.

   
▲ 총리 후보자였던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사진=뉴시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특히 최근 총리 지명 후 청문회 및 녹취록 공개로 인해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는 김종필 전 총리의 행보와 지적을 새겨보아야 한다. 총리는 2인자다. 직언을 한다 해도 이를 대중과 언론에게 선언한다는 것은 자기 PR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입 다물고 대통령에 조용히 건의해라”

김종필 전 총리가 이완구 국무총리에게 전한 말이다. 총리라면 2인자로서 헌법에서 규정한 본인의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 이는 다른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국민에게 아무 소용 아무 이득 없는 무책임한 정쟁은 지겹다. 국회의원이라면 법치주의와 헌법정신에 입각하여 일해야 한다.

되도 않는 포퓰리즘 경쟁 또한 마찬가지다. 국민은 현실가능한 정책 경쟁을 보고 싶을 뿐이다. 2014년 후반기 신혼부부 1주택 공약을 내걸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나, 노년층을 위한 저가담배 공약을 최근 언급했다가 꼬리내린 새누리당 모두 오십보 백보다. 국민에게 허탈한 웃음이나 안겨주는 정치는 이제 그만 보았으면 한다. 개념이 있고 생각이 있는 자들이라면 이제는 달라져라. /김규태 재산권센터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