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이어 수은도 부산 이전 가시화…관가 "과거 실패요인 되돌아봐야"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에 이어 한국수출입은행도 부산으로 이전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면서, 행원들의 사기가 심각하게 저하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은행의 부산행이 연일 언급되면서, 오래 전부터 IBK기업은행 본점 유치에 공을 기울이는 대구에서도 '지역균형발전' 논리를 내세워 본점 이전을 촉구하고 있다. 

   
▲ 금융노조는 지난 1일 인수위 앞에서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사진=금융노조 제공

금융공기관 등 관가에서는 이들 은행이 지방으로 이전해도 기업대출 등의 실무업무는 무리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다만 국가 산업정책을 기획하고 연구하는 특수기관이라는 점에서 지방이전에 따른 비효율성이 심각할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전날 국민의힘 초선 의원 9명과의 오찬 자리에서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지역에 내려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이 산은 외 타 국책은행을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특히 윤 당선인이 산은과 수은을 가리켜 "부산에 골대가 두 개 있어야 한다"면서 "두 개가 있어야 지역 발전이 이뤄진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산은 내부에서는 인수위로부터 지방이전에 이어 최근 대우조선해양의 사장 인선문제 개입 의혹까지 받아, 사실상 '미운 털 박힌 꼴'이 됐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한 산은 노조 관계자는 "대우조선 경영정상화를 비롯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문제 등 논의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데, 난데없는 지방이전 문제로 직원들이 동요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인수위로부터 대우조선 인사권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받으면서 내부 직원들의 사기가 심각하게 떨어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어 "인수위가 부산 이전에 대한 최소한의 소통과정은 거쳐야 하는데,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입장을 유지하다보니 (타 금융권으로의) 이직을 하려는 수요도 상당하다"고 말했다.  

기업은행은 아직 거론되지 않고 있다. 다만 과거부터 본점 이전 러브콜을 보낸 대구에서는 산은과 수은의 부산행을 가리키며 기은의 본점을 유치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대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국회의원들은 과거부터 대구의 중소기업 비중이 99.5%에 달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기은 본점 이전을 촉구하기도 했다. 

현재 대구에는 신용보증기금이 지난 2014년 12월 본점을 서울 공덕에서 이전한 상태다. 신보와 기은의 금융시너지로 지역 기업들의 재무적 어려움을 덜고 해외진출을 유도하자는 게 지역 여론의 의중이다.

그동안 국책은행의 본점 서울 사수를 주장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이탈 움직임이 감지된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한국은행, 산은, 수은 등 국책은행 소재지를 서울이 아닌 전국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발의했다. 현행 규정으로 인해 본점의 '서울 일극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은 "스위스와 같은 분권을 통해 최대한 지방정부의 자율성과 내재적 발전전략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이들 은행 본점을 서울에 둬야 한다는 강제조항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일련의 국책은행 이전 문제를 두고 지방으로 이전한 금융공기관 관계자들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체로 산은의 지방이전은 현실화될 것으로 보는 편이다. 인수위가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기기 위해 실천 중이고, 당선인의 금융공약에 산은 이전을 제1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과거 정부들의 행보보다 훨씬 적극적이라는 평가다. 

현재 금융공기관은 대거 부산에 포진해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이 부산 문현금융단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본사를 이전했다. 당초 부산에서 출범한 기술보증기금은 부산 중앙동에서 사무실을 임차하다 문현금융단지에 터전을 잡고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지난 2014년 12월 서울 공덕에서 대구 신서혁신도시로 본점을 이전했고, 국민연금공단은 지난 2015년 6월 서울 송파에서 전북 전주로 본점을 이전했다.  

기관 관계자들은 은행 본점이 지방으로 이전하더라도 기업대출 등 실무적 애로사항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 본점 외에도 전국적으로 영업지점망이 구축돼 있어, 전국 각지의 일반적인 기업대출은 이들 지점이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다만 자본조달 문제를 비롯해 국책은행의 역할과 특수성을 고려하면 지방이전이 상당한 비효율성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실무업무는 영업점에서 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금융위원회 주재 협의라든지 고위급 회의는 서울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요즘 비대면으로 많이 대체하고 있지만 회의를 비롯해 서울에서의 대면업무가 많다. 잦은 KTX 출퇴근으로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덧붙여 "(산은이) 부산으로 내려간다고 해서 업무가 안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국가 산업을 연구하고 정부 정책을 입안하는 특수은행인 만큼 서울에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 모두 산은을 옮기겠다 했는데 왜 못 옮겼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IT 등 전문 인재 구인난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는 실무업무보다 수도권에 거주 중인 직원들이 하루 아침에 대거 지방으로 이전해야 하는 만큼, 젊은 직원들의 반발이 상당할 것"이라며 "지방이전시 수도권 TO가 많이 부족해질 것인데, IT인력 등 수도권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전문인재들이 취업을 기피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자녀를 둔 직원들은 본사가 이전해도 교육문제를 고려해 주말부부가 될 것"이라며 "요즘 연구전문인력이나 대기업들도 전문인력 확보 문제로 연구소를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역인재 의무할당고용도 심각한 문제로 거론된다. 지역균형발전을 이유로 내려간 공공기관들은 본사가 위치한 지역의 인재를 할당량만큼 매 공채에서 채용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약 20~30%의 직원을 지역인재로 뽑는다는 후문. 지원자의 경쟁력이 아닌 은행 본점이 위치한 지역에서 고등·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이유로 뽑혀 조직 경쟁력 약화와 '파벌' 문제도 뒤따른다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과 공기업들은 지역인재를 의무적으로 할당량만큼 뽑고 있다"며 "누적이 되면 특정 지역출신이 파벌처럼 세력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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