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이어 수은까지 부산이전 가시화…정책 비효율성 우려↑
   
▲ 류준현 경제부 기자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서울은 수십 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많은 인재들을 끌어오며 번영한 도시로서 위상을 높였다.”

세계적인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신의 명저 ‘도시의 승리’(Triumph of the City) 한국어판 서문에 이 같이 밝혔다.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회장은 연초 기자간담회에서 국책은행 지방이전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진보가 아닌 퇴보”라고 비판하며 조용히 이 책을 언급한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도에는 좋은 기업과 일자리, 거미줄 같은 교통인프라, 교육‧문화시설이 쏠려있다. 한편으로 집값폭등, 교통문제 등 수도 과밀화에 따른 부작용은 정치권이 내세우는 ‘지역균형발전’의 중요한 명분이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방의 특정 지역을 ‘특구’나 ‘혁신도시’로 지정해 주요 공공기관부터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도시의 승리에서는 이를 ‘가난을 심화시키는 정부 정책’이라고 표현한다. 일자리 하나에 천문학적인 세제 혜택이 뒤따라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정부청사의 세종시 이전은 지역균형발전이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입증한다. 과거 서울과 세종 간 잦은 출장으로 피로를 느낀 공무원이 두 지역에서 모두 부재중인 채 이른바 '땡땡이'를 친 게 알려진 '사라진 김과장'부터 길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뜻의 '길과장'은 웃지 못 할 부작용이다. 

관료들의 세종시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수도권-세종시 통근버스가 연초 중단되자, 일각에서는 십시일반 돈을 거둬 전세버스를 대체‧이용하고 있다. 올해로 세종시대 10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많은 관료들은 버스와 KTX에서 시간을 허비한다.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은 서울에 있는데 실무 관료들만 지방에 보내면서 빚어낸 촌극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시절 부산지역 유세현장에서 "(부산이) 세계 최고의 해양도시로, 첨단도시로 발돋움하려면 금융산업 없이 이뤄낼 수 없다"며 산은의 부산 이전을 약속했다. 

   
▲ 금융노조가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벌였다./사진=금융노조 제공


해양도시, 명분은 좋다. 하지만 세계 7위의 컨테이너항만, 세계 2대 환적항만이라는 타이틀을 갖춘 해양도시, 부산에 선사 본점이 단 하나 밖에 없다는 점은 실로 비극이다. 컨테이너 하역과 육상운송 등을 주업으로 하는 6대 종합물류기업조차 5곳이 서울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화주인 제조업체와 무역회사가 서울·수도권에 있는데 공급자가 부산에 있을 리 만무하다. 즉 산업이라는 '말'이 있어야 '마차'인 금융도 뒤따르는 것이다. 

더욱이 해양금융의 활성화와 해양도시의 상징성을 부여해 부산에 조성된 금융공기관이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와 산은-수출입은행-무역보험공사가 연합한 해양금융종합센터다. 국적선사 HMM의 경영관리를 맡던 산은이 해진공에 업무를 이관한 것도 해양금융을 위임하는 대신 산적한 현안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다. '해양도시'라는 명분을 내걸어 산은과 수출입은행까지 끌어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은행은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인재, 대규모 자본으로 움직인다. 더욱이 기업 구조조정, 혁신 스타트업 육성 등의 국가 산업정책을 입안하면서 투자은행(IB)으로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국책은행의 역할은 더없이 중요하다. 특수은행이기 전에 시중은행‧증권사와 경쟁해야 하는 산은이 부산으로 가면 경쟁에서 도태될 것은 뻔하다.

올해 1월 통계청이 내놓은 '2021년 국내인구이동통계'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지역별 전출입사유를 살펴보면, 서울은 주거문제로 인해 인구 전출수가 10만 6200명을 기록했지만, 직업 문제로는 외부에서 3만 8100명이 순유입됐다. 

역설적으로 경기지역은 15만 500명의 순유입이 발생했다. 판교·수원·평택 등지에 굴지의 대기업들이 자리하면서 일자리가 늘어났고, 다락같이 오른 집값문제로 서울에서 밀려난 세대가 이주한 덕분이다. 

대구와 부산 통계는 눈물겹다. 대구와 부산은 각각 순유출이 2만 4000명, 1만 9000명을 기록했는데, 두 지역 모두 10세 미만을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순유출이 발생했다. 일자리문제가 주된 전출사유였다. 

이미 부산에는 금융공기관이 대거 포진해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예탁결제원 등이 부산 문현금융단지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 본사를 이전했다. 

지난 2014년부터 기관들이 이전했는데도 부산은 매년 인구 순유입보다 순유출이 더 많아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는 조롱까지 듣고 있다. 국책은행 이전이 얼마나 지역균형발전을 달성할 지 의문이다. 부산이 지역 인재 유출을 막고 균형발전을 이루려면 경기도처럼 굴지의 대기업부터 유치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표 앞에 장사가 없는 모습이다. 당선인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거센 추진력 속에 '국책은행의 서울 사수'를 외치던 더불어민주당조차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흔들리는 모습이다. 아무래도 산은은 정치권의 선거용 제물이 될 듯하다. "정치인은 자기 밥그릇에 따라 움직이지 국가를 생각하는 대의명분은 없다"는 한 기관 관계자의 멘트가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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