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부패 방지 '선한 것' 집착 전통적 관행 문화까지 옥죄

   
▲ 김흥기 교수
이른바 김영란 법(‘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어제 KBS 프로그램인 ‘명견만리’에 출연하여 한국은 인맥 중심의 권력형 부패가 만연해 있어 ‘한 턱 내는 문화’부터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인과 고위관료와 기업가 집단을 권력형 부패의 온상으로 거론하면서 이들이 대표적인 엘리트 카르텔을 구성해서 부당한 이익과 권력형 부패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는) 부패가 없었다면, 각자 책임을 다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부정부패를 방치할 경우 결국은 세월호와 방산비리처럼 국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먹고 살기 힘든데 경기가 더욱 나빠지지 않겠느냐는 자영업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경제가 나빠질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염려이며 경제활성화와 실업해소를 위해서는 우리사회에 신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부정부패를 끊어내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정부패(Corruption)는 함께(Cor) 파멸하는(rupt) 것이라면서 김영란 법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쏘는 문화’를 없애고 자기 것은 자기가 계산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거라고도 주장했다.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으로 보인다. 그런데 조금 혼란스럽다. 우리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방지하여 투명한 사회 깨끗한 국가를 만들자는 취지이므로 좋은 법이라고 보아야 할까? 깨끗한 것은 좋은 것 선한 것이고 더러운 것은 나쁜 것 악한 것인가?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은 대단히 위험하다. 미나리는 더러운 시궁창에서 자라지만 우리 인간의 혈액을 깨끗하게 정화해주는 매우 고마운 식물이다.

언제부터인가 김영란 법은 선이고 이 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부패를 옹호하는 악의 무리처럼 보는 듯해 한 말씀 거들기도 사실 부담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조물주조차도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 좋은 사람과 천하의 나쁜 놈이 섞여 살게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도 있고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도 있다. 세상살이가 그 만큼 어렵다는 얘기로 보인다. 법과 시스템만을 가지고 선진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의 생각과 태도, 행동의 변화를 일으키는 게 더욱 중요하다. 법을 제정하고 이를 집행하는 것만으로 선진국이 된다면 선진국 못될 나라가 없을 것이다.

일각의 비판처럼 공직자가 아닌 언론사 임직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은 포함되고 국회의원은 빠진 이상한 법(국회의원들은 사실상 자신들도 포함된 것이라고 항변하지만)이며, 블로그 등을 통해 언론활동을 하는 1인 미디어나 프리랜서 기자들은 적용대상이 아니며, 공직자 등이 자신의 배우자가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처벌토록 한 조항 등 형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안고 있다.

‘쏘는 문화’를 없애자는 말씀은 ‘옥탑 방’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시내버스 요금이 얼마인지 모르는 분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분이 우리와 함께 같은 세상에 살아가고 계신 분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세상물정을 몰라도 한 참 모르는 것이다. 개인주의 위에 기초한 서양에서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서 ‘우리’주의와 관계 그리고 정(情)을 토대로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길거리의 떼쓰기가 국회까지 장악하게 되어서는 곤란하다. /사진=연합뉴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전체 공간과 기간 중에 형성된 인맥까지 부패의 온상이라고 폄하해서는 곤란하다. 대체로 남성들의 밥값과 술값을 내는 방식은 여성들과 차이가 있다. 갑과 을 관계에서 을이어서 밥값을 내는 게 아니라 선배가 내기도 하고 돈 많이 버는 사람 또는 좋은 일 생긴 사람이 그냥 쏘는 것이다. 서로 번갈아 가면서 쏘는 것도 우리의 문화이다. 김영란 씨는 한국 사람들의 전통적 관행과 문화를 지나치게 가볍게 여기지 않나 싶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법안이 ‘그냥 선한 것’으로 인정되어 졸속으로 처리되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점을 매우 무겁게 받아들인다. 김영란 법이 논란 속에서도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를 넘어 법사위까지 올라온 데는 여론의 지지가 주요한 동력이 됐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부패한 공직사회 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지도부도 앞 다퉈 조기 처리를 다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용 대상 범위가 광범위해 법적 안정성과 신뢰성이 떨어지고 검찰, 경찰 등 국가 공권력의 개입 여지를 강화하며, 국민 개개인의 상호불신과 부정청탁규정을 이용한 공직자의 복지부동의 수단이 될 우려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정치권이 지탄을 받다보니 시류와 외부압력이 밀려 악법을 만드는 사례가 나올 수 있어 우려된다. 여론에 밀려 법 제정이 되는 나쁜 선례가 생기면 오도된 여론을 등에 업고 기회주의적, 망국적 입법이 판을 치게 될까 걱정스럽다.

길거리의 떼쓰기가 국회까지 장악하게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정치권은 더욱 자성하고 정당성을 회복하고 입법우위 시대에 걸 맞는 전문성과 더불어 깨끗하고 모범적인 태도와 자세를 견지해주길 당부한다. /김흥기 모스크바 국립대 초빙교수, 베스트셀러 '태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