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과거사 함정에서 벗어나 실리외교에 유연성 발휘할 때”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최근 인도네시아 반둥회의에서 시진핑 중국주석과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만남이 성사되면서 동북아 지각변동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이 주도하던 국제사회 흐름을 거스르는 중국의 등장으로 비롯된 것으로 그동안 일본에 대해 한국과 한목소리를 내던 중국이 방향을 급전환하면서 한국외교가 고립될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도 많다.

동북아에서 미일 간 또 북러 간 밀월관계가 무르익는 동안 한국만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라는 명분론의 함정에 파묻혀 묘하게 초라해지는 형국이다.

지금 중국은 당초 G2 국가로 나서면서 그들이 내세운 ‘적극적 평화’ 전략의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는 것이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의 분석이다. 중국 내 지한파의 대표인물인 한팡밍 차하얼학회 주석(중국전국정치협상회의 외사위원회 부주임)과 학회 차원의 교류가 잦은 박 원장은 24일 ‘미디어펜’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위안화의 국제화를 노려 금융강국이 되기 위한 중국이 ‘총 없는 전쟁’을 본격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아베·시진핑 만남. 그동안 일본에 대해 한국과 한목소리를 내던 중국이 방향을 급전환하면서 한국외교가 고립될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TV 캡처
이번에 시 주석은 아베 총리와 만나 과거사 문제를 털어버리려는 듯 과거 첫 번째 정상회담 때 찌푸렸던 인상을 온화하게 바꿨다. 대신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일본이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박 원장은 “시 주석이 실리외교로 돌아섰고, 이는 외교안보와 경제 문제를 분리시키는 전략에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시 주석은 실리외교에 앞서 댜오위댜오(일본명 센가쿠열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등 과거사와 영토 문제로 기선제압을 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중국이 G2로 부상하면서 이미 동북아 정치지형에 변화가 예고됐지만 일본의 과거사 왜곡 문제로 오랜 뜸 들이기가 지속되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 주석과 아베 총리가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개선 의지를 보이면서 앞으로 양국은 빠른 관계회복만 남긴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는 북중 관계가 소원해진 틈을 타서 재빨리 북한과의 밀월 관계를 넘어 밀착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한국 정부에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며 최근 우리 정부에 ‘남북러 3각 협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제재를 받던 러시아가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나름의 동북아 주요국가로서 역할을 모색하는 중으로 보인다.

박 원장은 “자원 의존적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산업을 다변화하려는 러시아의 신 동방정책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이라면서 “중국에 막혀있던 러시아와 북한과의 관계가 급진전해 결실을 거둔다면 결국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도 바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태평양으로 나가는 부동항을 확보하려는 러시아가 연해주 하산에서 북한 나진항을 연결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공을 들이는 것과 동북3성 및 창지투 개발로 물류 인프라를 구축한 중국이 동해를 출구로 삼으려는 목표는 상통한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현재 북한보다 남한과 손을 잡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런 까닭에 북러 간 밀착도 관망할 뿐이지만 언제라도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고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돌아설 수 있다”고 박 원장은 지적했다.

사실상 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이 한 발짝을 내딛을 때마다 주변국들은 최대한 자신들의 실익을 챙기는 외교전략을 구사하면서 동북아 정세가 새판짜기로 돌아가고 있다.

지금 동북아 외교전선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가 선택할 것도 실리추구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이유이다.

지난 22일 인도네시아에서 시진핑 주석과 아베 총리가 서로 마주보고 웃는 동안 우리는 미국 의회를 이용해 일본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에서 ‘한국 피로증’이 더욱 높였다는 평가도 많다.

이를 방증하듯 미국의 싱크탱크인 스팀슨센터에서는 “한국과 미국, 일본의 3각 안보협력은 한일관계로 인해 한계를 지니고 있는 만큼 한국 대신 미국과 일본, 호주의 3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박 원장은 “일본의 과거사 왜곡 시도에 대처하는 우리의 외교전략은 꼭 필요한 것에만 맞춰져야 한다”면서 “우리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독도 도발에까지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박 원장은 “외교안보 측면에서 한미일 관계는 반드시 과거 수준까지 회복시켜야 하며, 중국과는 비정치적 교류에 주춤거릴 필요가 없다”면서 “중국과 제도적 장벽 없애기에 적극 나서면서 북한 문제에서 한중 협력기조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