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정재영 기자] '역사저널 그날'이 '조선의 다빈치' 정약용을 조명한다.


조선 후기 대표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은 수원 화성과 배다리, 나아가 거중기까지 역사에 길이 남을 유산을 남겼다. 그의 뒤에는 스승이자 동반자였던 정조가 있었다.
 

1783년, 세자책봉을 기념해 열린 생원진사과 시험. 그 중 뛰어난 답안지로 정조의 눈길을 끈 이가 있었다. 그는 22세의 젊은 유생 정약용이었다. 정파를 뛰어넘는 그의 유연한 사고는 탕평을 주장한 정조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정약용은 성균관에 입학한 지 6년, 마침내 대과에 합격해 초계문신으로 발탁된다. 젊은 문신 중에서 능력있는 자를 선발해 자신의 세력기반으로 삼고 있던 정조에게 정약용은 더없는 최적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1792년 수원에 건설할 새 성곽을 설계하라는 정조의 명을 받는다. 수원 화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복권을 위한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다. 정약용은 과학적 재능을 발휘해 성곽 설계는 물론 조선식 기중기인 거중기까지 고안했다.
 

정약용의 활약으로, 10년으로 예상했던 공사기간은 무려 2년 9개월로 단축됐다. 또한 비용을 4만 냥을 아꼈다. '만물각'에서는 화성 축조에 사용된 거중기의 모형을 직접 만들어보고, 기술 관료 정약용의 새로운 모습을 자세히 알아본다.
 

정조의 기대에 부응하며 한 몸에 신임을 얻는 정약용. 하지만 그는 정상에 채 오르기도 전에 날개가 꺾이고 만다. 당시 심각한 정치문제로 떠오른 천주교에 정약용이 연루된 것이다.
 

관직에서 물러난 정약용은 정조의 부름으로 다시 복귀하려하지만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정약용의 앞길에는 어둠이 드리워진다.
 

조선의 다 빈치, 정약용을 만든 인생의 스승, 정조와의 그 날은 26일 밤 10시 3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