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행사, 주최자 없고 지자체 손놔…매뉴얼 적용 안된 '통제 부재 사각지대'
사전대책 '100만 여의도 불꽃축제'와 대조…밀집 위험 놓친 안전불감증도 문제
[미디어펜=김규태 기자] 사망 154명에 중상 33명·경상 116명. 29일 오후 10시 15분경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태원 압사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는 총 303명에 달한다. 이태원 핼러윈 데이라는 특성상 외국인 사망자는 26명에 달했고 10대 사망자도 11명으로 확인됐다. 20대 103명에 30대 30명, 여성 98명 등 사망자 내역을 살펴보면 '참사' 그 자체다. 중고교생도 6명 숨졌다.

이태원 압사 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는 31일 오후 2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사고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시작했다. 경찰은 사망자가 집중된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을 중심으로 인근 도로와 가게를 감식해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게 된 경위를 파악할 계획이다.

   
▲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 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사고 당시 인파의 동선은 안쪽 골목에서 좌우로 합쳐진 인파가 아래로 내려가는 폭 3.2m 골목로 향했다. 경사가 진 골목을 내려가다가 불의의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좁고 미끄러운 내리막길 40m에서였다.

관건은 앞으로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을지다. 154명 모두 안타깝고 처참한 죽음이었다. 동일한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절실하다.

'안전 통제 부재' 현장에 자발적 인파 몰려

이번 참사의 가장 큰 특성은 이태원 핼러윈 데이라는 행사가 주최자가 따로 없는 자발적인 모임이었다는데 있다. 사고 당시 10만 여명이 모였던 것으로 추산한다.

지난해 핼러윈 행사 때는 이태원 일대에 경찰 85명을 배치했으나, 1년 뒤인 지난 29일 사고 당시 이태원에는 137명의 경찰 인력이 배치됐다. 지난해 핼러윈 기간 3일간 16만명이 찾은 것으로 집계된 것에 비하면 이번 사고 당시 몰린 10만명은 작년보다 1.5배 이상 더 많이 찾은 것으로 읽힌다.

몰린 인파에 맞추어 경찰 인력 또한 늘었지만 이태원에 투입한 입력은 순찰이나 마약 단속 위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교통 동선 통제가 아니었던 셈이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3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현재까지는 범죄 혐의 적용을 검토할 만한 입건 대상은 없다"며 골목길 위쪽에서 일부 시민이 앞 사람을 밀어 사고를 일으켰다는 의혹에 대해 "목격자 진술이 엇갈려 추가로 경위를 확인할 예정이다. 아직 인파가 몰린 정확한 원인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남 본부장은 용산구청 등 관할 지자체가 사고 예방 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고 경위와 안전조치 적정성에 대해 면밀히 확인 중"이라며 "현재까지는 마약 관련 보고가 없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 재난관리실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보통 사람이 몰리는 행사가 열리면 지자체나 기업 같은 주최자가 있는데 이번 사고 현장엔 사람은 많았지만 이런 주최 측을 찾아볼 수 없었다"며 "주최자가 없어 안전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참사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관련 매뉴얼은 있었지만 주최자가 없는 이태원 핼러윈데이 특성상 안전관리에 힘쓸 주체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이것이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3월 만든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축제 장소의 전반적 관리·감독을 지자체가 해야 하고 주최측이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 지자체-경찰-소방 측의 검토와 심의를 받아야 한다. 지자체는 개최자 및 재난관리부서와 협의해 이 안전관리계획을 심의하고 행사장 지도 점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이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과 소방은 행사기간에 순찰활동을 강화해야 하고, 축제 전후 현장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위험요소를 확인해야 한다.

   
▲ 10월 31일 국민의힘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이번 이태원 핼러윈데이는 이 매뉴얼을 적용하지 않은 '사각지대'였고, 결국 참극이 일어난 것이다. 이에 따라 행안부의 매뉴얼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최자 유무를 떠나 인파가 몰려들 가능성이 높은 행사에 대해선 정부와 지자체가 선제적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거리-면적 당 유동인구 밀집도를 감안해 일정 수준 이상인 행사의 경우, 주최자가 없더라도 지자체의 안전관리계획 수립과 실행을 의무화하는 방법 밖에 없다.

실제로 용산구청은 지난 27일 부구청장 주재로 '핼러윈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감염병 대응-마약 단속-거리 청소 등을 주로 논의했고, 군중 밀집-인파 분산 유도-동선 등 교통 통제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교육 강화 통해 안전불감증 메꿔야

또다른 대책은 학교 안전교육에 '군중 밀집 대비'에 관한 상황 교육을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유초중고교 안전교육은 교육부의 '학교 안전교육 7대 영역 표준안'에 따라 진행되는데, 이 7대 영역은 생활안전-교통안전-폭력예방 및 신변보호-약물 및 사이버 중독 예방-직업안전-응급처치-재난안전으로 나뉜다. 이 중 이번 이태원 사고와 관련 있는 영역은 재난안전이다.

재난안전 영역은 화재-자연재난-사회재난으로 구성되는데, 사회재난에는 폭발-붕괴-테러-감염병 상황으로 나뉜다. 사회재난에 관해 유초중고교에서 안전교육을 함에 있어서, 좁은 지역에 사람이 몰리면 사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는 지적이 이 지점에서 나온다.

거시적으로는 세월호라는 참극의 교훈을 잊은, 개인의 안전불감증 또한 이번 참사에 일조했다.

이태원은 지난 수년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핼러윈 문화의 중심지다. 코로나 대유행이 종식된 후 3년만에 '노마스크'로 즐길 수 있는 첫 핼러윈데이이기도 했다. 행사를 마음껏 자유로이 즐기려는 인파가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미국의 경우 개인과 개인 간의 거리를 지키려는 무의식이 있어, 옷깃만 스쳐도 '실례합니다(Excuse me)'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우리나라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사회적 거리 유지' 문화다.

   
▲ 30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 관계 부처 장관들의 브리핑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오른쪽)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날 발언으로 이 장관이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사진=연합뉴스


정부의 대국민 메시지 문제

마지막으로는 메시지 관리다. 윤석열 대통령 이하 대통령실을 비롯해 행정안전부-서울시청-소방청-경찰청 모두 사고가 일어나자 즉각적인 대응조치에 나섰다.

시시각각 관련 소식을 언론에 공유하면서 사고 수습 및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30일 브리핑에서 내놓은 책임 회피성 발언이 질타를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의 정제된 대국민 담화가 국민들 대다수에게 와닿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장관은 30일 브리핑에서 "예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었다"며 "경찰 소방 인력이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지금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태원 일대에 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된 상황에서 경찰 소방의 적절한 배치가 이뤄진 것이냐'는 기자 질문에 이같이 답한 것이다.

이 장관 입장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는 경솔한 발언으로 읽힐 수 있다. 정부의 대국민 메시지 관리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국정 운영은 살얼음판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의 경우, 이른 새벽 상당수의 국민에게 참상이 그대로 전해져서 많은 논란과 슬픔을 야기했다.

국민 생명은 돈으로도 맞바꿀 수 없는 국가 존립의 이유다. 윤석열 정부가 향후 실효성 있는 사전 예방 대책을 내놓아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