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학생시절 당신을 아주 좋아하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직접 만든 필통에 당신의 사진을 도배하고, 항상 당신의 노래를 들으며 등교하던 친구였습니다. 콘서트도 직접 찾아가고, 미니홈피 역시 당신 사진밖에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열혈 팬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HOT와 젝스키스 팬으로 양분화된 교실에서 그 친구는 항상 당신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당신을 좋아하는지 끝내 묻지 못했지만, 당신이 끝내 미국인이 된 후 찾은 그녀의 텅빈 미니홈피에 ‘왜 그런 선택을 했나요’라는 한 줄의 글만 남겨져 있던 기억이 또렷해집니다.

   
 

당신이 90분 동안 했던 이야기는 구차했습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의 유도심문으로 자원입대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뮤직비디오 촬영 중 부상으로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았는데 병역기피 의혹이 터졌고, 아버지의 설득으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작년에 귀화하고 입대하려 했으나 알고보니 늦었고, 아이 때문이라도 한국에 돌아오고 싶다”로 정리할 수 있겠군요.

13년 만에 대중에게 전한 사과는 참으로 실망스러웠습니다. 변명일색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서 예전의 당당함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여전한 근육질 몸은 당장 입대해도 특급전사는 문제없겠다 싶을 만큼 탄탄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가고싶은데 시기가 늦었다”는 말에 그만 웃고 말았습니다.

당신을 따라 가위춤을 추고 ‘사랑해 누나’를 읊조리며 누나들의 사랑을 갈구하던 아이들은 어느덧 직장인이 되고, 부모가 됐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HOT나 젝스키스처럼 학생시절 친구들을 만날때나 가끔 등장하는 추억의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딱 한가지만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왜 지금에서야’라고 묻고 싶습니다. 왜 지금에서야 사과하는지, 왜 지금에서야 ‘작년에 입대를 시도했다’고 하는지, 왜 지금에서야 한국에 돌아오려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지나간 이야기에 현재가 묻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 아닌가 아쉽기만 합니다.

한 소대장은 군생활을 두고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하더군요. “2년 동안 자신을 재충전하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시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더욱 추천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 절호의 찬스는 이미 손에서 떠나가 버렸군요. 그 절호의 찬스가 당신에게는 ‘용서’였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