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시경 인턴기자] 최근 드라마 속에서 ‘악녀’만을 일편단심 사랑하는 남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과거 드라마에서 악역을 맡은 여자 조연들은 대부분 남자 주연을 짝사랑하는 역할로 등장했다. 보답 받지 못하는 짝사랑에 괴로워하며 남자 주연의 사랑을 받는 여자 주연을 괴롭히는 것이 악역의 몫이었다. 이런 악역을 사랑해주는 캐릭터는 찾기 어려웠다.

최근 드라마에는 악역을 일편단심으로 사랑하는 남자 조연이 등장하면서 악역을 사랑하는 조연의 존재 이유에 시청자들의 의문이 커지고 있다.

   
▲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서 나말년은 한충길을 버리고 떠난다. / 사진=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 방송 캡처

사랑 대신 야망을 택한 악녀 ‘나말년’

조연의 올곧은 사랑을 거부하며 야망을 드러내는 유형이 있다. 최근 종영된 KBS2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나말년(서이숙)이다.

나말년은 주인공 김현숙(채시라)에게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남긴 악덕 교사다.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던 김현숙을 대놓고 무시하다가 절도사건에 휘말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퇴학당하는 데 일조했다.

나말년과 같은 학교의 체육 교사였던 한충길(최정우)은 오직 나말년만 사랑하는 인물이다. 나말년이 자신을 버리고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뒤에도 계속 그리워한다. 한충길은 극중에서 나말년에게 몇 번이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데, 나말년은 끝까지 그를 거부하며 사랑보다는 풍족한 재산과 야망을 택한다.

극중에서 나말년은 사랑을 고백하는 한충길에게 “날 잊어 달라. 그 사람과 결혼할 거다”라며 매몰차게 거절하고 그를 떠난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재회했을 때 한충길은 “난 말년 씨를 사랑합니다. 가진 것 없지만”이라고 말하지만 나말년은 “그래서 유산 있는 나에게 묻어가겠다는 거냐”며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 MBC '여자를 울려'에서 나은수는 시동생 강진명의 마음을 이용한다. / 사진=MBC '여자를 울려' 방송 캡처

시동생의 사랑을 이용하는 악녀 ‘나은수’

자신을 향한 상대 남자의 사랑을 이용하는 유형이 있다. 현재 방영 중인 MBC ‘여자를 울려’의 나은수(하희라)다.

나은수는 동서인 최홍란(이태란)과 날선 신경전을 펼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형제의 사랑을 받다가 동생보다 형을 선택한 나은수는 시댁식구들에게 한없이 착한 며느리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와 결혼한 최홍란에겐 그 누구보다 악한 사람이 된다.

나은수의 시동생인 강진명(오대규)은 자신의 형을 선택해 형수가 된 나은수를 여전히 사랑한다. 형이 죽자 혼자가 된 나은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더 커졌다. 이러한 마음을 아는 나은수는 이를 이용해 강진명과 최홍란의 아들이 아닌 자신의 아들을 집안의 후계자로 키우려 한다.

나은수는 자신을 분가시키려는 최홍란에게 “난 법적으로 강진명씨 형수가 아니다”고 말하며 마치 시댁에서 나가면 강진명과 따로 만날 것처럼 도발했다. 또 강진명에게는 “난 행복해지지 못했다. 그 옛날 애절했던 서방님의 마음을 뻔히 알았으면서도 모른 척 했던 벌을 받는 것 같다”며 마음을 흔들었다.

   
▲ JTBC '꽃들의 전쟁'에서 소용 조씨의 정인 남혁은 끝까지 그를 보듬는다. / 사진=JTBC '꽃들의 전쟁' 방송 캡처

악역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

이밖에도 JTBC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처럼 악역을 사랑하는 상대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정을 강조하는 유형도 있다. 극중 주인공이자 최고 악역인 소용 조씨(김현주)는 마지막화에서 세상 사람 모두에게 돌을 맞지만 정인인 남혁(전태수)만은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보듬는다.

이처럼 악역을 사랑하는 인물이 있으면 악한 면 말고 다른 면모가 있다는 것을 시청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 시청자들은 악역의 다른 모습을 보고 그가 왜 악역이 됐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악행이 더 강조될 수도 있고, 반대로 동정심이나 공감을 끌어낼 수도 있다. 악역이 여러 면을 가진 입체적인 인물로 변하는 것이다.

더불어 악역에게 더 넓은 행동반경과 더 다양한 스토리전개가 가능해진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나말년에게 아들이 한 명 있다. 드라마는 한충길과의 묘한 분위기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혹시 남편이 아니라 한충길과의 아들인가’라는 식의 호기심을 갖도록 했다.

짝사랑 끝에 악행을 일삼다 주인공에게 보복당하면서 끝났던 과거의 악역이 점차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악역의 비중 역시 커지면서 시청률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