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존적 채무인수 제시하며 호응조치 촉구하자 ‘면책’ 주장
정부 “일본측의 성의 있는 호응조치 담보돼야 최종안 발표”
“구상권, 새로운 얘기 아냐…해법 주자 일본이 공 넘긴 것”
일본측 사과 대신 담화 계승? 담화 재낭독 등 방식 다양해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판결 해법을 찾기 위해 공개토론회를 연 이후에도 일본측의 호응조치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재단의 ‘구상권 포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NHK는 18일 “일본정부는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해자에게 지급을 끝낸 이후 일본기업에 변제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담보하는 것이 불가결하다고 보고 한국정부의 강제징용 해결책 책정 작업을 주시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일본이 다시 우리측에 ‘공’을 넘긴 것으로 우리정부가 공개토론회 때 발표한 기조와 다르게 일본측의 호응조치를 계속 촉구하자 나온 반응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 12일 국회에서 개최된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에서 “일본측의 기여 및 사과를 포함한 호응조치를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점을 피해자측에서도 인지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토론회장에선 고성이 난무했다. 

이후 도쿄에서 16일 개최된 한일 외교국장협의 이후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측의 배상 참여 보장 및 사과 등 성의 있는 호응조치가 담보되어야 정부의 최종안을 발표할 수 있다”고 밝혀 일본측에 ‘공’을 넘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회에서 17일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조현동 외교부 1차관도 “지난 공개토론회 때 발제안은 확정된 정부안이 아니며, 저희가 일본의 아무런 호응조치가 없다면 일본과 협의할 필요 없다”고 말해 무게를 실었다.

이처럼 우리정부가 일본의 다음 반응을 기다리는 모양새를 취하자 일본언론은 ‘구상권 포기’를 띄워 우리정부가 마련한 해결책에 짐을 더 지우는 형국이다. 

앞서 정부는 외교부 주최 징용 해법 공개토론회에서 일본기업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기금으로 피해자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 방향을 공식화했다. 이는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로 인한 채권-채무관계 해소부터 이행하겠다는 것으로 중첩적(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이 제시됐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이 2일 오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의 광주 광산구 우산동 자택을 방문해 악수하고 있다. 박 장관은 이날 광주를 찾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만나 외교적 해법 마련을 약속했다. 2022.9.2./사진=연합뉴스

중첩적 채무인수 방안에 따라 재단이 피해자에게 먼저 배상할 경우 추후 재단이 일본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절차가 남게 된다. 그런데 18일 NHK 보도에 따르면, 일본정부는 재단이 피해자에게 판결금을 지급하더라도 일본기업에 배상금 반환을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기금 조성에 대해 일본기업의 참여 여부가 전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이런 주장을 한데 있다. 여전히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의 관건은 일본기업이 얼마나 참여할지, 또 참여한다면 언제, 어떤 형태로 참여할지 여부이다. 특히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 피고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의 참여가 확실시 될지, 한일정부간 합의문에도 이를 명시할지가 관건이다.
  
재단의 판결금 모금에 일본기업의 참여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재단의 구상권 포기부터 언급하는 것을 볼 때 한일 양국 정부간 인식차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징용 문제 해결책으로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밝히자 일본은 완전히 책임을 면하는 ‘면책적 채무인수’를 주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주최한 강제징용 해법을 논의하기 위한 민관협의회에 참가했던 한 전문가는 “구상권 포기 문제는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라며 “사실 일본기업의 참여 부분이 확실해지면 구상권 얘기는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기업의 판결금 모금 참여와 관련해서는 일본경제단체연합(게이단렌)이 사회적 책임경영(CSR) 성격의 기부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에 대해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라 일본기업이 배상금을 내는 듯한 형태를 보이지 않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일본기업이 배상금 명목으로 기금 조성에 참여할 때 일본 국내법에 따라 배임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강제징용 문제에서 2가지 숙제인 일본기업의 판결금 조성 참여와 일본측의 사과 여부는 모두 일본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배상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을지 여부에 달려 있다. 일본측의 사과와 관련해서도 한일 정부간 새로운 합의 선언이 아니라 기존 담화 계승을 발표하는 정도로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기존 담화를 계승하는 방식에서도 단순하게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는 방식도 있지만, 일본정부의 대표자가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적힌 무라야마 담화 전문을 재낭독하는 방식도 있어서 정부가 최종적으로 밝힐 한일 협상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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