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정부의 주이란한국대사 초치에 조현동 1차관, 주한이란대사 초치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로 인한 70억 달러 동결 등 누적된 불만 터져
‘히잡 시위 탄압’으로 외교·경제 고립에 빠진 이란, ‘적’ 발언 빌미 삼아
[미디어펜=김소정 기자]윤석열 대통령의 ‘UAE의 적은 이란’ 발언 이후 한국과 이란 외교부가 서로 상대국 주재대사를 초치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 이란의 국제관계와 무관하다”고 거듭 밝혔으나 이란 정부가 항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19일 샤베스타리 주한이란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우리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는 전날 레자 나자피 이란 법무·국제기구 담당 차관이 윤강현 주이란한국대사를 불러 항의한 것에 대한 맞불 성격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사 맞초치에 대해 “정부의 입장을 조금 더 명확하게 이란측에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란 정부가 윤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한국정부 입장 정정까지 요구하고 있어 양국 갈등이 조속히 풀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외교가에서는 2018년 국제사회의 대이란 제재로 인해 한국이 이란에 지불해야 하는 석유대금 70억 달러가량이 동결돼 있는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란 관측이 있다. 이는 이란의 해외 동결자산 가운데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다.

또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2021년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국적 선박인 ‘한국케미호’를 100일여동안 억류한 사건도 있어 최근 한국과 이란 관계에 긴장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나자피 이란 차관은 이란 자금 동결 등 한국정부의 비우호적 조치를 언급하며 “분쟁 해결을 위해 유효한 조처를 하지 않는다면 양국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한국 대통령이 최근 핵무기 제조 가능성에 대해 거론했는데, 이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어긋나는 것”이라면서 이에 대한 해명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보도된 발언(윤 대통령의 발언)은 UAE에서 임무수행 중인 우리 장병들에 대한 격려 차원의 말씀이었고, 한-이란 관계 등 이란의 국제관계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 이란의 핵확산금지조약 관련 언급에 대해서도 임 대변인은 “이란 정부의 문제 제기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의 비확산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고, 이러한 의무 이행 의지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말했다.

   
▲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현지에 파병 중인 아크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2023.1.16./사진=대통령실

외교부 당국자는 “2021년 이후 한-이란 관계가 관리가 되던 상황이었고, 이번 발언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해서 이란측이 잘 알겠다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이란 관계에서 쌓인 악재를 미처 풀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일을 빌미로 동결자금 반환 요구가 거세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때인 2010년 ‘포괄적 이란 제재법’이 시행되자 한국과 이란은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에 이란중앙은행 명의로 원화결제계좌를 개설해 한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대금을 예치하고, 한국기업들의 이란 수출 물품 대금을 이 자금에서 지급받는 결제 시스템을 운영해왔다.

그러던 중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이란핵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 복원의 일환으로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이 계좌가 동결됐다. 
 
그동안 이란은 미국의 제재 조치로 인한 동결자금 반환을 한국정부에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이에 우리정부는 인도적 교역, 이란의 밀린 유엔 분담금 대납 등 우회로로 이란이 동결자금을 사용하게 했으며, 이란과 P5+1(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의 JCPOA 복원 협상 과정에서 동결자금 문제가 풀릴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바 있다.   

그러던 중 이란의 ‘히잡 시위 탄압’이 국제 문제로 떠오르면서 새로운 양국의 갈등 요인이 됐다. 지난달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내 여성지위위원회(CSW)에서 이란을 제명하는 결의안에 한국정부도 찬성표를 행사했고, 이란정부는 반발했다.

이란의 히잡 시위 탄압이 JCPOA 복원 협상의 동력을 떨어뜨렸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실상 외교·경제적으로 고립 상태에 빠진 이란이 윤 대통령의 발언을 빌미로 한국정부를 흔들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된다는 점에서도 이란과의 안정적 관계는 중요하므로 정부가 이번 갈등을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 

이날 임 대변인은 “이란과의 관계 발전에 대한 우리정부의 의지는 변함없다”면서 “앞으로도 이란측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명확한 시실에 기초해 우호관계 형성 노력을 지속해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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