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지금까지 어느 사극에서도 본 적 없었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한양에 입성한 조선 군사들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 그대로 지옥과 같았다.

6일 밤 방송된 KBS1 대하사극 '징비록'이 비정한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그려냈다. 청과 왜의 밀약에 의해 비워진 수도 한양은 숨 쉬는 사람 하나 없을 만큼 처참했다. 전쟁의 아비규환으로 단련된 유성룡조차 정신을 잃을 만큼 한양은 지옥 같았다.

폭우속에서 저잣거리를 찾은 류성룡 일행은 “이제 이승이 맞냐. 저승 아니냐”며 “누구 살아있는 사람 없소”라고 울부짖었다. 그러나 대합은 어느 곳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 사진=KBS

위정자들이 떠나고 남은 백성들은 그동안 어쩔 수 없이 왜군에 협조하거나 산으로 올라갔다. 일부는 의병이 되어 전투에 앞장섰으나 이조차 조정은 경계하는 눈길을 보냈다. 선조의 우유부단함,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 우왕좌왕하는 대신들의 모습은 그동안 적잖은 실망을 가져왔으나 이날 방송은 전쟁의 참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힘없는 조선을 두고 명나라 사신 심유경(이기열)과 왜군 장수 고니시(이광기)는 밀약을 나눴다. 수도인 한양 이남의 땅을 일본에게 주는 대신 도요토미 히데요시(김규철)를 일본의 실질적인 통치자이자 왕으로 인정하겠다는 조건이었다. 기세가 꺾이고 군량미가 부족한 왜군은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명군과 조선군이 한양으로 입성할 때 나타났다. 왜군은 철수하며 한양 백성들을 모조리 학살해버렸다. 전쟁의 비정한 참상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명과 왜의 밀약에 의해 무참하게 학살된 조선의 백성들은 마치 1948년 해방 수 미국과 소련에 의해 절반으로 갈라진 훗날의 현실을 예견하는 듯 했다.

선조는 여전히 갈팡질팡했다. 앞에서 나서는 법이 없었다. 공은 자신에게, 죄는 신하에게 뒤집어씌웠다. 충신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안위를 꾀하는 모습은 참된 정치인 하나가 나라의 명운을 가를 수 있다는 판단을 들게 했다. 무서우리만큼 우유부단한 판단에 결국 백성들의 목숨만 더 잃은 셈이었다.

류성룡은 명과 왜의 강화를 빌미로 일본이 다시 조선에 쳐들어올 것을 염려했다. 역사가 스포일러인 이상 이는 정유재란의 빌미로 작용한다. 왜는 곧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등 하삼도 땅을 요구하며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 믿을 수 있는 장수는 몇 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국토가 유린되는 광경을 목격하기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모두가 우리 선조들이 겪은 일이다. 그리고 역사는 미래를 예견한다.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리고 우리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징비록’이 대신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