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석명 기자] 한국이 낳은 '괴물 수비수' 김민재(27·나폴리)가 한국 국가대표 은퇴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제 27세밖에 안되고, 유럽 빅리그에서 본격적으로 실력 발휘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나온 충격적인 발언이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루과이와 평가전을 치러 1-2로 졌다. 황인범(올림피아코스)이 동점골을 넣었지만 세트피스 상황에서 상대 선수를 놓치며 두 골을 내줘 아쉽게 패했다.

클린스만 신임 대표팀 감독이 처음 지휘한 A매치 2연전에서 첫 승을 거두지 못했다는 것(24일 콜롬비아전은 2-2 무승부), 비록 졌지만 이강인(마요르카)이 최고의 활약으로 대표팀의 핵심으로 거듭났다는 것, 교체 출전한 오현규(셀틱)가 새로운 공격옵션으로 눈도장을 찍었다는 것 등 화제가 될 만한 스토리가 많았다.

   
▲ 김민재가 우루과이전에서 상대 선수와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사진=더팩트 제공


그런데 경기 후 김민재의 발언이 이런 관심사들을 덮어버렸다.

풀타임을 뛴 김민재는 취재진과 만나 "이겨야 하는 경기였는데 아쉽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좀 더 집중해야 할 것 같다"며 수비수로서 2실점한 데 대해 자책을 했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자 김민재는 속마음을 드러냈다. "지금 힘들고, 멘탈적으로 무너져 있는 상태다. 소속팀에서만 집중할 생각"이라며 "축구 면에서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대표팀보다는 이제 소속팀에서만 신경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대표팀을 오가는 것이 정신적(멘탈적), 육체적(몸)으로 힘들어 소속팀 경기에만 나서고 싶다는 얘기였다. 즉, 국가대표 차출을 거부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발언이었다.

국가대표 은퇴(또는 차출 거부)라는 중대한 사안이기에 대한축구협회와 조율이 된 건지를 묻는 질문이 이어졌는데, 김민재는 "조율이 됐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다. 이야기는 좀 나누고 있었다"는 말만 남겼다.

한창 전성기를 보내며 최고 수비수로 각광받고 있는 김민재가 대표팀 경기에 뛰지 않겠다는 생각을 밝힌 것 자체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갑작스럽게 나온 발언이지만, 김민재의 현재 상황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 가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김민재는 이번 2022-2023시즌을 앞두고 전 소속팀 터키 페네르바체를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적했다. 처음으로 유럽 빅리그(세리에A)에 뛰어들었지만 놀라운 기량으로 나폴리의 핵심 수비수가 됐고, 팀의 리그 선두 질주와 챔피언스리그 8강행을 이끌었다. 물론 시즌 중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에도 대표로 참가했다. 김민재가 빅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하는 수비수라는 사실이 검증되자 그의 이적설이나 계약과 관련한 보도는 끊이지 않는다.

선수로서 처음 경험하는 유럽 빅리그에서 리그 및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욕심이 있을 것이고, 부상 당하지 않으면서 좀더 성장해 월드 클래스 반열로 올라서고 싶은 야심도 있을 것이다. 김민재는 소속팀에서도 대표팀에서도 핵심 주전이기 때문에 장거리 이동 후 휴식 없이 거의 풀타임을 뛰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처음으로 겪는 이런 강행군이 육체적으로 힘들 수 있고, 소속팀과 대표팀 모두에서 간판 수비수가 되다 보니 경기 결과나 성적 등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도 상당할 것이다. 이번 시즌 후 나폴리 잔류와 이적을 두고 고민해야 하고, 만약 이적한다면 새 소속팀에 적응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부상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이번 대표팀에서도 수비수 김진수(전북)가 콜롬비아전에서 부상 당해 2개월 정도 장기 결장하게 됐고, 우루과이전에서는 정우영(알사드)이 부상 당해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했다. 김민재도 카타르 월드컵 당시 종아리 부상을 당해 고생한 경험이 있다. 한창 존재감을 발휘할 시기에 대표팀 경기에 나섰다가 부상이라도 당할 경우 선수 생활에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김민재가 소속팀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얘기가 당장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것은 아닐 것이다. 국내에서 치르는 A매치 평가전(친선경기)까지 꼬박 차출돼 출전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당분간' 대표팀 소집에 응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표팀 선배이자 먼저 세계적 선수가 된 손흥민(토트넘)의 경우, 똑 같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31세가 된 지금까지 한 번도 대표팀 경기보다 소속팀 경기에 집중하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은 없다. 팬들이 김민재의 이번 발언에 더 충격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든 김민재의 뜻이 확고하다면 대표팀은 주전 수비진 구성을 위한 새로운 고민을 해야 한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도 부임하자마자 큰 숙제를 받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우선적인 목표로 내년 초 개최되는 아시안컵 우승을 꼽았는데, 김민재가 아시안컵에 뛸 것인지도 불투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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