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동건 기자] 어설픈 서사와 안일한 스타 마케팅으로 실망을 안기던 상업영화 가뭄 속 이병헌 감독의 '극한직업'(2019)은 제대로 칼 간 코미디영화였다. 웃음에만 집중한 코미디 폭격은 관객들의 갈증에 유효했고, 영화는 1626만 6338명의 누적관객수로 역대 박스오피스 2위라는 초대박을 터뜨렸다.

이병헌 감독이 4년 만에 들고 온 '드림'은 코미디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휴먼드라마에 가까운 영화다. '말맛'으로 표현되는 속사포 상호작용은 여전하다. 잘하는 것을 또 잘해내서 재밌는 부분. 다만 개그 신의 질적 수준이 '극한직업'과 비슷하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는 아니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병헌 감독의 오리지널리티를 기대했다면 다소 아쉬운 작품일 수 있겠다.


   
▲ 사진=영화 '드림' 스틸컷


'드림'은 노숙자 선수단을 이끌게 된 문제의 축구선수 홍대(박서준)와 열정 페이를 받으며 대충 일하는 다큐멘터리 PD 소민(아이유)의 만남으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선수, 감독, PD 누구 하나 큰 의욕 없이 참여한 홈리스 월드컵 출전 프로젝트지만, 선수들은 점차 서로에게 의지하며 팀워크를 다지기 시작한다. 감동 드라마를 각각 연기하고 연출했던 홍대와 소민도 이들의 모습에 서서히 감화돼 같은 꿈을 꾸게 된다.

2010년 대한민국이 첫 출전했던 홈리스 월드컵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조심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병헌 감독의 코미디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신파라는 샛길로 빠지던 상업영화의 틀을 과감히 비틀고 웃음에만 집중했기 때문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도리어 상업영화의 전형으로 돌아온 모습이다. 실화 속 인물들에 대한 존중과 엄숙함이 창의성을 가로막고, 관객들에게 감정적 동화를 주입하며 이병헌 감독 고유의 리듬을 잃게 만든다.


   
▲ 사진=영화 '드림' 스틸컷


이야기의 얼개만 놓고 봐도 기시감이 역력하다. '드림'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킹콩을 들다', '국가대표', '코리아' 등 스포츠 소재 영화들의 관행을 답습하고, 이병헌이라는 신화를 뒤로 미뤄놓는다. 

그 결과는. 아무리 소외계층의 드라마라지만 연대 의식과 인간 승리에 집중하니 영화적 개성이 옅어진 느낌이다. 영화 속 루저들의 자조 섞인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그들의 전사가 현실적이며 암울한 색을 띠고 있어 괴리가 생긴다. 또 사연을 마주할수록 이들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기보단 비극적 개인사라는 생각에 그치게 되고, 이들에게 무책임한 동기 부여와 응원이 타당한지 자문하게 된다.

선수들이 각성해 공동체 의식과 근성을 보여주는 장면 또한 갑작스럽다. 기본적인 기량도 갖추지 못한 대한민국 팀에 "흥미로운 팀"이라는 캐스터의 해설이 곁들여지고, 헝가리의 관중은 낯선 이방인들의 구슬땀을 보며 목 놓아 응원한다니. 설상가상으로 외국인들의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응원은 신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처럼 들린다. 물론 신파에 대한 입장 차이는 있다. 누군가는 이를 진정성으로 바라볼 지도 모르지만, 재치 있는 코미디가 '중꺾마' 신화에 편승하는 순간 생기를 잃어버렸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 사진=영화 '드림' 포스터


이병헌 감독의 휴먼드라마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홈리스 드림팀의 목표가 생(生) 그 자체라는 점이다. 잠시 밀려났을 뿐 보통 사람들과 같이 떳떳하게 설 수 있다는 것. 이들에게 울타리가 필요하다는 것. 따스하고 사려 깊다.

다만 관객들은 그동안 소외된 선수들의 감동 영화를 충분히 봤다. 이병헌 감독의 축구 영화가 나온다고 들었을 때 기대했던 수다스러움과 엉뚱함, 신선함이 이 영화에는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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