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그리스 정부가 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안을 거부하고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하면서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은 국민투표를 마칠 때까지 구제금융을 연장해달라는 그리스의 요구를 거부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이날 새벽 1시에 채권단의 협상안에 찬반을 국민에게 묻겠다고 발표한 직후 현금자동출금기(ATM)를 통한 뱅크런(대량 예금인출) 사태로 5억 유로(약 6270억원)가 빠져나갔다.이에 유럽중앙은행(ECB)은 28일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으며, 그리스를 제외한 유로존 18개국 재무장관들은 그리스에 예금 인출 제한 등 자본통제 조치 가능성을 경고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 등은 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치프라스 총리는 실효성 의문과 위헌 논란에도 국민투표를 강행하겠다고 밝혀 현재로서는 다시 협상이 이뤄질지 확실치 않다.

유로그룹은 그리스가 국민투표를 치를 때까지 구제금융을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현행 구제금융을 예정대로 30일에 종료하기로 했다. 데이셀블룸 의장은 그리스가 일방적으로 협상을 거부했다며 구제금융이 끝나도 그리스의 채무는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는 30일 국제통화기금(IMF)에 15억 유로를 상환해야 하지만 재정의 현금이 부족해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IMF는 회원국의 상환 실패를 디폴트가 아닌 '체납'(arrears)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도 민간 채권자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때만 디폴트로 규정하며 IMF나 ECB 등의 공공기관에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것은 디폴트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IMF 체납과 구제금융 지원 중단은 재정증권 만기연장 실패 등으로 이어져 결국 중기적으로 디폴트가 불가피하다.

디폴트는 그리스가 유로화 사용을 포기하는 그렉시트(Grexit)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유로존 18개국 장관들은 이날 "유로존 회원국인 그리스의 이익을 위해 적절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다시 회의를 재개할 준비가 됐다"며 그리스를 유로존에 남기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이는 그리스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연립정부가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돕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유로그룹이 구제금융을 30일에 종료하겠다고 밝혀 채권단의 협상안 수용 여부를 국민의 판단에 맡기고 이를 따르겠다는 그리스 정부의 계획은 실행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치프리스 총리는 내달 5일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달 말에 구제금융 자체가 종료되면 채권단의 구제금융 5개월 연장을 내용으로 하는 협상안도 무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투표 결과는 실효성이 없어진다.

국민투표에서 채권단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정 나도 이미 구제금융이 끝난 시점으로 정부가 국민의 뜻대로 협상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 일간 프로토테마는 법률 전문가들을 인용해 채권단의 협상안에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자체가 위헌이라고 보도했다. 미칼리스 스타토풀로스 전 법무장관은 헌법에서 재정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채권단이 협상안의 내용을 여러 차례 바꿨고 최종 협상안이 아니지만 국민투표에 부쳤는데 채권단이 수정 제안을 하면 다시 국민투표를 치를 것이냐"며 "정부가 책임을 국민에 떠넘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밖에 총리가 불과 1주 뒤에 국민투표를 치른다고 갑자기 선언하는 것도 헌법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투표가 치러진다면 다수 여론이 유로존 잔류를 원하기 때문에 채권단의 제안에 찬성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 일간 카티메리니는 이날 카파 리서치가 긴급 설문한 결과 찬성한다는 답변이 47.2%, 반대는 33%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여론 조사대로 결과가 나온다면 급진좌파연합이 주도한 연립정부는 실각하고 반년 만에 다시 조기총선을 치르는 혼란이 예상된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그리스 전역의 ATM 가운데 3분의 1은 현금이 바닥나는 등 하루 동안 ATM에서 인출된 예금은 5억~6억 유로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현지 언론들은 국회의사당 내 ATM에서 의원들도 줄지어 예금을 찾았다고 보도했다. 은행이 대부분 영업하지 않는 토요일 하루에 5억 유로 이상 빠져나가 29일부터 은행 영업이 잠정 중단될 우려가 제기되는 등 혼란이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