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A씨 "'책임지겠다' 공인중개사 유도에 계약…경매 통지 이후 잠적"
"9월 수분양 오피스텔 입주 앞두고 자금 계획 차질…금전적 지원 절실해"
[미디어펜=김준희 기자]"그냥 다른 것 없이 전세금 일부라도 빨리 돌려받았으면 좋겠어요. (바라는 것은) 그것 뿐입니다."(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A씨)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발생한 전세사기 피해 규모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1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이번 전세사기 피해로 인해 지난 3월 말 기준 임의 경매(담보권 실행 경매)가 진행 중인 물건이 1523가구로 집계됐다.

이번 전세사기 사건 배후에는 아파트·빌라·오피스텔 등 2700여채를 소유한 것으로 파악되는 남모 씨가 있다. 남모 씨는 공인중개사나 중개보조원 명의를 빌려 토지를 사들인 뒤 자신이 운영하는 종합건설업체를 통해 1~2개동짜리 ‘나홀로 아파트’ 등을 신축했다.

이후 건물이 준공되면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동시에 전세를 놓아 보증금을 챙겼다. 이렇게 모은 보증금과 주택담보대출금으로 또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보유 건물수를 늘렸다.

그러나 남모 씨 자금 사정이 악화하면서 그가 보유한 아파트나 빌라가 경매에 넘어가기 시작했고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피해자 중 20대 1명과 30대 2명 등 총 3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번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인 30대 A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일해가며 모은 전 재산을 날리게 됐다”며 “얼마가 됐든 전세금 일부라도 돌려받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호소했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대책에 대해서도 “체감되는 부분이 전혀 없다”며 “피해자들이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건 거처·금융 지원이 아닌 금전적인 지원”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인천 미추홀구 일대 전세사기로 인해 피해를 입은 주택 앞에 각종 문구가 붙어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해당 주택은 어떻게 입주하게 됐나.
"당초 주거지는 인천 남동구 간석동이었다. 2019년께 전세로 거주할 집을 찾아봤는데 미추홀구 일대에 저렴한 매물들이 많았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알아보던 중 2~3번째쯤 도화동에 위치한 현재 집을 소개받게 됐다."

-공인중개사가 어떻게 계약을 유도했나.
"당시에는 건물이 준공되기 전이었다. 공인중개사는 ‘준공되기 전 전세보증금 50%를 먼저 납부하면 전세금 계약을 저렴하게 해주겠다’고 했다. 인근에서 보기 드문 신축 아파트기도 하고 전세금도 다른 물건 대비 저렴한 편이어서 혹했다. 저희는 전세금 7800만 원으로 계약했다. 2019년 9월 5000만 원가량을 먼저 내고 두 달 뒤인 11월 준공이 완료돼 입주했다. 다른 세대도 대부분 8000만 원 초중반에 들어왔다고 얘기를 들었다."

-계약 과정에서 문제는 없었나.
"계약서를 작성할 때 등기부등본상 아파트 건물 전체가 근저당이 잡혀있는 걸 확인했다. 공인중개사에게 물어보니 본인이 가입돼 있는 보증보험이 있어 괜찮다고 하더라. 혹시 경매로 넘어가게 돼서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내용의 이행증서까지 줬다. 그래서 의심하지 않고 계약하게 됐다."

-건물에 문제는 없었나.
"입주 초부터 항상 하자가 있었다. 입주한지 한 달도 안돼서 곰팡이가 생기고 타일이 깨졌다. 바닥이 일어나기도 했다. 화장실 벽이 금이 가고 거실에 타일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창문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이 주변에서는 신축이고 가격대도 저렴하니까 참고 살았다."

-재계약은 어떻게 진행됐나.
"입주 2년 뒤인 2021년 11월께 전세금 3000만 원가량 인상한 금액으로 재계약을 요구했다. 저희는 2700만 원 오른 금액인 1억500만 원으로 재계약을 부탁했고 그렇게 진행하게 됐다."

-문제가 생겼다는 건 언제, 어떻게 알게 됐나.
"2021년 재계약을 진행하면서 전셋값이 30% 넘게 올랐다. 당시 집값도 급격하게 오르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오르면 감당이 안될 것 같았다.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바로 앞에 들어서는 신축 오피스텔을 분양받았다. 오는 9월 말 입주 예정이어서 3개월 전인 지난 1월께 임대인에게 전세금 관련해 이야기를 했고 ‘맞춰주겠다’고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법원으로부터 집이 경매로 넘어간다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임대인에게 전화해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당시에는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 배당신청기일이 다가오자 연락이 끊겼고 현재까지 두절된 상태다."

-이번 전세사기로 인해 피해 입은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제가 중학생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모은 돈 전부를 다 잃은 셈이다. 아이가 3명이라서 돈을 모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힘들게 모은 돈인데 다 잃게 됐다. 분양받은 오피스텔 분양가가 3억3000만 원가량이다. 전세금을 감안해 자금 계획을 마련해놨는데 일이 이렇게 돼 난감한 상황이다.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했다."

-전세금 변제 방안에 대해서는 확인해봤나.
"전세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를 알아봤으나 근저당 설정 시기인 2019년 기준으로는 전세금이 1억 원 미만이어야 해 1억500만 원에 재계약한 저는 해당되지 않더라. 다만 주변에서 얘기를 들어보니 재계약 시 5% 이상 증액한 경우 무효가 된다는 얘기가 있어 법률적인 부분을 확인하고 있다. 지금 희망은 그것뿐이다."

-정부에서 거처·금융 지원 등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체감되는 부분이 있나.
"전혀 없다. 저를 포함한 입주자들은 얼마라도 좋으니 전세금 일부를 돌려받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정부에서 내놓은 매입 대책 등의 경우 입주자들이 추가로 대출을 일으켜 거주하라는 것 아닌가. 저는 대출 없이 들어왔지만 메신저 단체 대화방을 보면 못해도 5000만 원에서 최대 8000만 원까지 대출받고 들어온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가뜩이나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이중으로 받으라고 하니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전세사기 가해자인 남모 씨에 대한 생각은.
"입주자들이 정부에서 세금을 통해 지원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남모 씨가 저지른 불법을 명확히 조사하고 부당하게 축적한 재산을 몰수해 하루 빨리 피해자들을 도와달라는 거다. 그 부분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미추홀구에 건축된 아파트 대부분이 남모 씨를 통해 지어졌더라. 혼자 힘으로 그 많은 건물을 짓는다는 게 불가능한 일 아닌가. 남모 씨와 함께 가담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빨리 조사가 이뤄졌으면 좋겠다."

-이번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식을 접한 뒤 어떤 생각이 들었나.
"굉장히 우울했다. 세 번째 사망자가 같은 30대더라.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저도 가족 없이 혼자였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버티는 거다. 그런 상황에서 혼자였다면 끝까지 버틸 생각을 못했을 것 같다."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다른 것 없이 전세금을 빨리 돌려받았으면 좋겠다. 그것밖에 없다. 금전적인 지원이 최우선이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건데 지금 상황에서는 제일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미디어펜=김준희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