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서영 기자] 홈플러스 인수전에 뛰어든 오리온이 인수에 주가 띄우기 의혹을 받고 있다.
오리온은 29일 "주식 상장 40주년 만에 기업가치가 7800배 상승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1975년 6월 27일 액면가 500원에 166만주를 상장한 오리온은 2004년 10만원 돌파 후 2012년 100만원을 넘어 지난 27일 종가 기준으로 주가 108만4000 원, 시가총액 6조4772억원으로 40년 전보다 기업가치가 무려 7800배 상승했다는 게 자료의 골자다.
그러나 이런 기업가치 성장은 오리온의 경쟁상대인 국내 여타 기업과 비교할 때 특별한 성과는 아니다. 예컨대 1974년 액면가 500원에 상장했던 롯데제과는 주가가 200만원대를 넘기도 했으며 지난 27일 종가로 하면 194만원이다.
그럼에도 오리온은 2219자에 이르는 장문의 보도자료에서 1956년 풍국제과 인수로 국내 제과시장에 진입한 것을 시작으로 1974년 초코파이 출시로 성장이 가속화한 데 이어 1989년 취임한 담철곤 회장이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해 지금은 해외실적이 성장의 원동력이 돼 가고 있다고 썼다.
또 작년 말 오리온스낵인터내셔널(OSI)과 포장재 전문 업체인 아이팩을 합병했고, 올해 주당 6천원의 현금배당을 해 작년보다 2배 수준에 달했을 정도로 재무구조가 개선됐다고 강조했다.
업계에선 오리온이 뜬금없이 자화자찬성 보도자료를 낸 데 대해 다소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그 의도에 주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영업실적 대폭 신장 또는 기업 내부의 재무구조 개선 등의 성과가 없는데도 '과도한' 홍보 자료를 낸 것은 주가를 띄우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오리온이 주가 끌어올리기를 통한 자금 확보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리온의 이런 행보를 홈플러스 인수와 연관 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영국 최대 유통업체 테스코가 100% 지분을 가진 홈플러스에 대한 매각 예비 입찰에 오리온이 신청서를 낸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주가 띄우기로 몸집을 불려 인수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홈플러스 매각 예비입찰에 오리온 이외에 칼라일, KKR, 어퍼니티에퀴티파트너스, CVC파트너스, MBK파트너스 등 사모펀드들이 주로 인수의향서(LOI)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오리온은 사모펀드와 손을 잡고 인수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주가 상승을 통한 덩치 키우기가 필요하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내년에 창립 60주년을 맞아 새 성장동력 찾기에 애써온 오리온은 편의점 바이더웨이 사업 실패 경험에도 홈플러스 인수를 통한 유통업 진출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홈플러스의 매도가격이 7조원 대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는 가운데 오리온으로선 '버거운' 시도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테스코가 홈플러스 매도 가격을 밝히지 않고 있으나 사모펀드인 칼라일의 40억 파운드(한화 6조5500억원 상당) 매입 제안을 거절했던 점으로 미뤄 호가는 최소한 이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테스코가 작년에 63억8000만 파운드(한화 10조원 상당)의 순손실을 내 창사 이후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만큼 사업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경기 침체 장기화 탓에 대형마트의 중장기 전망이 밝지 않아 홈플러스 매도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지난 3월말 현재 현금 및 단기유가증권 규모가 5748억원 정도인 오리온이 인수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크다는 분석이 더 많다.
오리온의 홈플러스 인수 시도는 담 회장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허인철 부회장이 총괄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6년 삼성맨으로 출발, 1997년 신세계로 옮겨 2006년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장과 이마트 대표이사를 역임했던 허 부회장은 신세계에서 월마트코리아와 센트럴시티 인수에 성공해 인수합병(M&A)의 귀재로 통했던 인물이다.
지난해 1월 신세계그룹을 나와 같은 해 여름 오리온에 합류한 허 부회장은 전문 경영인으로서 오리온의 각종 M&A를 이끄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증권가에서도 오리온의 홈플러스 인수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다. 박찬은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홈플러스의 인수가격은 가치산정방식에 따라 5조∼7조원대로 예상된다"며 "오리온의 현금과 현금성 자산은 2900억원 수준으로 홈플러스 인수 시 재무적 투자자와 함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매각대금과 비교해 오리온의 현금자산 규모가 매우 작고, 2000년대 중반 이후 오리온이 제과 사업에 집중해온 점에 근거하면 홈플러스 인수는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