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기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케냐 방문은 미국 대통령으로서의 '공식' 방문인 동시에, 케냐 출신 아버지를 둔 아들로서의 '개인적' 방문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고 있다.
그가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안보·경제 논의와 가문의 뿌리찾기라는 두 가지 임무를 지니고 케냐행 비행기에 올랐다고 외신들이 평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 여행목적을 반영하듯, 2박3일의 짧은 케냐 방문은 '개인 오바마'의 금의환향을 온통 환영하는 가운데서도 '대통령 오바마'로서 현지 인권과 부패 문제를 놓고 미묘한 충돌 양상을 보이는 복합적 분위기로 흘렀다.
2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케냐 방문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분위기"였으나 일부 "불협화음"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가장 긍정적으로 조명된 이벤트는 오바마 대통령이 아버지의 가족들과 재회한 장면이었다.
전날 저녁 나이로비 도착 후 첫 일정으로 의붓할머니인 마마 사라와 이복동생인 아우마 오바마 등 친척 30여 명과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백악관과 케냐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찬에 참석했던 친척 사이드 오바마는 이후 인터뷰에서 "몇몇 친척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케냐에 더 오래 머무르며 친척들과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일의 특성상 항상 있고 싶은 장소에만 있을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항상 함께하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피를 나누지 않은 케냐인들도 오바마 대통령을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아들처럼 환영했다.
케냐대학생연합의 바부 오위노 대표는 "오바마 대통령은 많은 케냐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라며 "그의 배경을 보면 우리와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 많은 학생들이 그를 사랑한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 후 그의 이름을 딴 많은 케냐 어린이 중 한 명인 5살의 버락 오바마 오유는 "오바마와 같은 대통령이 되면 큰 자동차와 비행기를 탈 것"이라고 말했다.
종족 갈등이 뿌리 깊게 자리잡은 케냐에서 집권 키쿠유족이 아닌 루오족 출신의 오바마 대통령이 모든 종족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는 점에서 그의 방문이 종족 화합의 메시지도 심어줬다고 현지 언론은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 본인도 고향을 찾은 듯 편안한 분위기였다.
25일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이 주재한 만찬에서 그는 "미국 내 어떤 사람들은 내가 출생증명서를 찾으러 케냐에 왔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그렇지만 사실이 아니다"라고 농담했다. 하와이 출생증명서 공개 이후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출생이 아니라는 의혹을 고수하고 있는 일부 비판론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이슬람 무장단체 얄샤바브에 맞설 양국간 긴밀한 협력 관계 구축을 약속하고, 아프리카의 경제적·정치성 성장을 높이 평가하는 등 공식 일정의 분위기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방문이 마냥 화기애애한 것만은 아니었다.
25일 케냐타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케냐의 반(反) 동성애법 폐기를 촉구하며 케냐타 대통령과 의견 충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법을 지키고 다른 이를 해치지 않는 시민에 대해 단지 그들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다르게 대하거나 학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케냐의 부패 문제에 대해 "만연한 뇌물이 케냐의 빠른 성장을 막는 최대 걸림돌"이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케냐다 대통령은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충고를 수용하면서도 동성애와 관련해서는 "미국과 케냐가 공유하지 않는 가치, 우리 문화나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가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가치를 강요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런 갈등 노출은 2007년 케냐 대선 개표부정 시비에 따른 유혈 폭동 과정에서 케냐타 현 대통령이 반인륜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기소된 것을 이유로 오바마 대통령의 공식 방문을 비판하는 자국 내 목소리를 의식한 행보로도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