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정부, 집값 안 잡고 50년 주담대 탓만"
[미디어펜=류준현 기자]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9월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한 달 전보다 3조원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담대 금리상단이 연 7%를 돌파했음에도 부동산 시장 회복을 기대하는 심리가 커지면서 수요자들이 뒤늦게 내 집 마련에 나서는 모습이다.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비공개 가계대출 점검 회의를 주기적으로 개최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만기·연령제한 등의 조치에 이어 추가 대출 규제안이 나올지 주목된다.

   
▲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9월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한 달 전보다 3조원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김상문 기자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9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 3294억원으로 한 달 전 680조 8120억원 대비 약 1조 5174억원 늘었다. 특히 주담대의 증가세가 가파르다. 9월 말 주담대 잔액은 517조 8588억원으로 전달 514조 9997억원 대비 약 2조 8591억원 늘었다. 은행권에서는 고금리에도 불구 최근 주담대가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5대 은행의 주담대 고정금리와 변동금리는 지난 6일 현재 각각 연 4.00~6.47%, 연 4.24~7.12%를 기록했다. 상단금리가 9개월 만에 연 7%대로 올라섰고 하단도 연 4%대를 넘어선 것이다. 미국의 긴축 장기화, 예금금리 상승, 은행채 금리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대출금리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리가 워낙 높아서 주담대를 많이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부가 2주택자 규제, 주담대 만기, DSR 규제 등을 하나둘 완화하면서 부동산시장이 최저점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며 "(2019년 당시) 4억 하던 집값이 8억 가까이 호가하면서 자연스레 대출금액도 곱절로 늘었고, 이것이 대출잔액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여유 현금을 꽤 보유하고 있고 대출받을 능력이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정부의 시그널을 보고 매수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더욱이 지난 정부에서 전월세로 살던 세입자들이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 취급을 받은 전례가 있는 만큼, 실수요자들이 가격조정이 된 현재를 내 집 마련의 최적기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이 대출잔액 증가의 요인으로 '50년 주담대' 등을 꼽으며 은행권을 조준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볼멘 소리가 나온다. 여전히 거품이 끼어 있는 집값을 조정하지 않고 부동산 규제만 완화하면서 도리어 대출잔액을 늘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계자는 "올초 집값 쇼크를 겪으면서, 매수자들은 (집값이) 많이 빠졌다고 보고 있다. 또 벼락거지로 불리던 이들이 '내 집은 있어야 겠다'는 불안심리 때문에 대출금리가 높아도 빨리 사자로 회귀했다"며 "최근 건설사들이 원자재가격 상승을 이유로 신규 물량 분양가격을 대폭 올리고 있는데, 자연스레 (인근) 구축 물량들도 가격상승의 영향을 받아 주담대 잔액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고 평가했다. 

이어 "50년 주담대가 대출잔액 증가의 한 요인이 될 수 있겠지만, 인과관계의 핵심문제로 보기엔 어렵다"며 "대출잔액 증가는 사실상 집값에 대한 반사효과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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