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일반용 전기요금 동결…대기업 요금만 인상 논란
"구조화된 '200조 부채' 해결하려면 함께 고통 부담해야"
[미디어펜=조성준 기자]한국전력이 200조가 넘는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고강도 자구책이 대기업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전은 지난 8일 올 4분기부터 주택·일반용 전기요금을 동결하는 대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키로 하는 한편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등 고강도 자구책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한전은 산업용 전기요금만 킬로와트시(㎾h)당 평균 10.6원 인상하게 된다.

산업용 중에서도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요금은 동결하고, 주로 대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을) 요금만 인상했다.

이밖에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 등을 단행해 몸집을 줄이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재편하겠다는 방침이다.

   
▲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 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특단의 자구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전이 지난 5월 25조 원 규모의 자구안에 이어 이번에는 더욱 강한 재무 개선 계획을 발표했지만 비판이 적지 않은 모양새다.

이번 자구안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주택·일반용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에만 전기요금 인상분을 전가하게 됐다.


◇ 고질적인 부실구조, 200조 부채 '암담'

한국전력은 올해 상반기 기준 약 201조 4000억 원의 부채를 지니고 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쌓인 구조는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형성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여건 악화로 연료비가 일제히 상승했고, 이에 한전은 발전사로부터 비싸게 전력을 사들인 만큼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해 손해를 감수했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이 같은 한전의 역마진 구조를 알면서도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아 현재의 부실 구조의 원인을 제공했다.

   
▲ 한전 나주본사 전경./사진=한전 제공


윤석열 정부 들어서도 한 차례 전기료 소폭 상승이 있었지만 전기료 인상은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한전의 전력 구입 금액은 88조6700억 원이지만 전력 판매수입은 66조300억 원으로, 23조 원 가량의 손실이 발생한 것도 근본적으로는 전기료 인상이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한전이 지난 정부부터 자구책을 준비하는 현 시점까지 국민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 하에 주택·일반용 전기요금 인상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부채가 누적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내년 5월말 치뤄질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를 의식한 정치권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의 전반적인 불황과 물가 상승으로 서민경제가 어려운 시점에서 전기요금을 올리면 향후 총선 표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고려가 매번 반복되면서 적절한 전기요금 인상이 수 년째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 대기업에만 '요금 더 내라'…"근본적 해결책 아냐"

이번 대책발표에서도 한전은 주택·일반용 전기요금을 동결하고 광업·제조업이 속하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해 대기업에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을 동결 또는 인하하고 산업용 요금만 올린 것은 2008년 이후 15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다.

한전은 산업용 전기 중 중소기업이 많이 쓰는 산업용(갑) 요금은 동결하고, 대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을)도 고압A(3300∼6만6000V 이하)는 ㎾h당 6.7원, 고압B(154㎸)·고압C(345㎸ 이상)는 ㎾h당 13.5원 인상했다.

산업부는 이번 요금 조정으로 늘어나는 전기료 부담을 고압A는 월 200만 원, 고압B는 월 2억5000만 원, 고압C는 월 3억 원가량으로 예상했다. 

산업용(을) 전력을 쓰는 기업은 지난해 기준 약 4만2000곳으로 한전 전기를 이용하는 계약자의 0.2% 수준에 불과하지만 전력 사용량은 26만7719GW로 국내 총사용량의 48.9%를 차지한다.

극소수의 대기업이 제품 제조 등의 이유로 국내 전기의 절반을 사용하는 상황에서 이들 기업에만 전기요금을 '핀셋 인상'한 셈이다.

   
▲ 새만금 철탑 공사 사진(기사 본문은 사진 및 출처와 무관함)./사진=한전 제공


정부는 대기업들이 인상분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브리핑 후 "산업용(을)의 경우 가정용의 100배 정도로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이라며 "해당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서 부담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들은 그동안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쓰는 혜택을 누려왔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한전이 선별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한 것을 두고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대기업을 타깃으로 한 산업용 요금을 소폭 인상하더라도 200조 원의 한전 부채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용도 구분 없는 전기료 인상을 단행하고, 경영 효율화와 부실자산 매각 등의 내부 자구책이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와 정치권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보다 시급한 것은 한전의 정상화가 아니겠느냐"며 "부채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에만 부담을 지우기 보다는 모두가 함께 부담을 나누는 합리적인 전기요금 체계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조성준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