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영농의 가능성 열어…새롭게 변화해야 할 상 제시

100년 전 타임지는 100년 뒤 가장 걱정스러운 일 중 첫 번째로 거리의 ‘말똥’을 꼽았다고 한다. 당시 상상했던, 오염 물질이 넘쳐날 미래의 도시는 끔찍했을 것이다. 하이힐이 만들어진 이유도 당시의 지저분한 거리를 걷기 위해서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 도시 어디에서도 말똥을 찾아볼 수 없다. 말똥이라는 환경오염에 대해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나라들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을까?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문명의 발달을 거부하는 습성을 지닌 환경론자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최승노 부원장은 과학의 발달에 따른 기술 혁신과 경제성장을 해답으로 밝히면서, 극단적인 종말론의 허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저서는 ‘스토리 시장경제 시리즈’의 마지막, 열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선택권과 재산권을 존중하며 개인이 잘살아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믿는 시장론자이며, 낙관주의자이다. 자유경제원에서 강연, 집필 활동을 통해 자유주의를 널리 전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은 저서를 통해 경제성장이 환경을 개선하고 사람들의 삶을 질적으로 향상시켰음을 들려준다. 미디어펜은 ‘스토리 시장경제 시리즈’ 10권 완간을 기리며 7권부터 10권까지 각 권 당 2편씩 게재한다. 아래 글은 10권 『환경을 살리는 경제개발』에서 발췌했다. [편집자주]

   
▲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
서산 농장의 새로운 모색

정주영과 서산 농장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은 땅에 대한 애착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는 평소 “그 옛날 우리 아버지는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 뼘 한 뼘 농토를 만드셨다”라고 회고하곤 했다. 우린 왜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고생을 하는가 싶었던 것이다.

그런 정주영의 꿈이 현실로 드러난 게 현대 서산 농장이다. 서산 농장은 충남 서산의 앞바다를 매립해 만든 간척지로 단군 이래 땅을 가장 크게 넓힌 사업이다. 1980년 착공해 1995년 준공하기까지 15년이 걸린 대역사였다. 공사인원은 235만 명, 덤프트럭 51만여 대가 투입됐다. 이때 확보한 땅이 약 152㎢로 여의도 면적의 33배,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의 1퍼센트에 달한다.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서산 농장은 우리나라에서 기업형 영농의 가능성을 시험해 본 무대가 됐다. 남북 정상 회담을 전후로 서산 농장에서 키운 소 천여 마리가 북한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우리처럼 좁은 국토에서 친환경 영농이 가능할까

서산 농장은 위대한 사업이다. 하지만 그 사업이 시작된 건 우리의 국토 면적이 그만큼 좁았기 때문이다. 국토가 좁지 않았다면 정주영의 아버지가 맨손으로 농토를 만들 일도 없었고 그 아들의 가슴에 땅에 대한 한이 맺힐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정주영은 20세기 인물이고 농부의 자식이었으니 땅과 농업의 가치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게 분명하다. “국토를 넓혀서라도 쌀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라는 게 정주영이 서산 농장을 만든 이유였다.

하지만 그의 후속 세대인 우리의 입장은 또 다르다. 우리처럼 국토 면적이 좁은 나라에서 농업이 적합한 산업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 땅값은 세계적으로도 비싼 편이다. 인구 대비 국토 면적이 좁은 만큼 당연한 일이다. 우리 실정에 농업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산업일 수 있다.

   
▲ 현대그룹 故정주영 회장(1915~2001). 서산 농장은 우리나라에서 기업형 영농의 가능성을 시험해 본 무대가 됐다. 남북 정상 회담을 전후로 서산 농장에서 키운 소 천여 마리가 북한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고 정주영 회장의 서산 농장은 위대한 사업이다. 그 사업이 시작된 건 우리의 국토 면적이 그만큼 좁았기 때문이다./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지금 우리의 축산업이 이를 뒷받침하는 예다. 흔히 공장식 축산이라고 부르는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는 극단적으로 좁은 우리 안에 수만, 수십만 마리의 가축을 몰아넣어 키우는 사육법을 쓴다. 국토가 좁으니 광활한 땅을 가진 미국이나 호주처럼 가축을 방목해 키울 수 없는 것이다. 목동이 이끄는 수백 마리 양떼가 자아내는 목가적인 풍경은 우리에겐 언감생심이다.

좁은 우리에 가축을 몰아놓고 키우니 사육 환경이 극히 불량해져 질병도 자주 발생한다. 구제역이나 조류독감 같은 병이라도 돌면 일대 참극이 발생한다. 국토가 좁으니 농장 면적인 좁은 건 물론이고 농장들 사이의 거리도 좁다. 한 농장에서 병이 생기면 주변에 인접한 농장으로 번지기 시작해 얼마 지나지 않아 온 나라의 농장이 뒤집어진다. 질병이 발생한 지역의 가축은 모두 죽여 땅에 묻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지하수에 핏물이 섞여 나올 지경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농가에게나 가축에게나 지옥이 따로 없다.

가축이 무슨 공산품도 아닌 만큼 공장식 축산이 비인도적이고 비위생적인 건 당연하다. 더구나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집약적 영농으로는 단위당 생산 비용을 아무리 낮춰도 미국이나 호주처럼 토지 비용이 거의 공짜에 가까울 만큼 넓은 농장에서 기르는 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비용 구조가 뒤떨어진다.

비단 축산업의 비용 구조만 그런 게 아니다. 좁은 국토는 농업 전체의 비용 구조에 무리를 안겨 준다. 단적으로 미국의 거대한 농장에선 비료와 농약을 비행기로 뿌린다. 사람이 직접 분무기를 둘러매고 약을 치는 우리로선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우리에게 회색 굴뚝으로 상징되는 공업에 비한다면 초록색 농작물을 키우는 농업은 뭔가 친환경적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축산업의 예에서 보듯 농업은 결코 깨끗한 산업이 아니다. 미국이나 호주처럼 국토가 넓은 나라에서 농업은 분명 친환경적 요소가 있겠지만 우리처럼 국토가 좁은 나라에선 그렇지 못한 것이다.

정주영의 서산 농장 개척은 분명 위대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현대적인 공업 국가로 거듭난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사업이기도 했다. 현대그룹이 서산 농장을 개척하는 데 1980~1990년대 기준으로 현금 6500억 원이 들어갔지만 지금 농장의 매출은 연 수백억 원대이고 직원 수도 수십 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서산 농장 주변에 형성된 대규모 임해 공단 일대는 오늘날 전략 산업 기지로 성장했다. 현재 서산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 기업 역시 농장을 순차적으로 매각하며 확보한 자금으로 핵심 분야에 투자하는 중이다. 서산 농장이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 우리 농업은 어찌 해야 하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최승노 자유경제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