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사회실태 인식보고서’ 공개, 여성의 가정 내 위상 변화 등 소개
공적 영역선 다르지만 이혼율 상승·출산율 저하 등 변화 추동 가능성 분석
장사·소토지·경작 밀수 등이 중요 소득원…56%가 김정은정권에 부정 평가
[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일성 시대 때는 다 배급을 주고 노임을 줬으니까 남편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지금은 남편들 보고 멍멍개, 낮전등이라고 해요. 여성들이 돈을 많이 버니까 힘이 많이 세졌지요.” (2019년 탈북) 

북한에서 시장화가 본격화되고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의 가정 내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0년대 급속한 시장화 이후 공식경제 부문이 부진하면서 장사, 소토지 경작, 밀수 등이 북한주민의 중요한 소득원으로 자리잡은 것과 관련 있다.

통일부는 6일 탈북민 6351명을 조사해 김정은 집권 이전과 이후 20년간을 분석한 ‘북한 경제·사회실태 인식보고서’를 공개했다. 10년에 거쳐 1100여개의 폭넓은 설문과 탈북민 1대1 면접을 통해 심층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3급 비밀’로 분류되던 것을 보고서로 발표한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2020년 탈북민 가운데 여성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응답한 비율이 45.9%로 2000년 이전 탈북민들의 답변과 달라졌다. 이번에 남편과 동등해졌다는 응답은 12.8%, 남편보다 높아졌다는 응답은 17.2%를 기록했다. 

통일부는 “북한여성의 시장활동이 가족제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면서 “여성의 가정경제 기여도가 상승하면서 여성들의 평균 결혼연령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결혼 당시 연령이 2000년 이전 평균 24.7세였던 것이 2016~2020년 26.2세로 나타났다. 여기에 결혼연령이 30세 이상인 비율이 2012년 이후 14.2% 상승했고, 2016~2020년엔 17.5%로 증가했다. 

결혼한 여성들은 다자녀를 출산하는 것을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자녀 수는 평균 1.6명이다. 

또 이혼율도 증가해서 응답자 2432명 중 이혼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25.9%였으며, 여성이 28.7%였고, 남성이 15.2%였다. 이혼의 이유로는 경제적 이유와 배우자의 외도가 각각 모두 24.2%를 기록해 가장 높았다. 

   
▲ 2018년 4월 평양시내 주민들의 모습./사진=평양공연공동취재단

이혼의 사유와 관련해 2012년 이후엔 경제적 이유가 16.0%로 낮아졌고, 배우자의 외도 및 성격차이가 각각 25%와 26%를 차지했다. 통일부는 “이혼 사유가 다변화되는 것 또한 가족 내 여성의 지위가 변화한 것을 보여준다”며 “과거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가족 내 불평등이나 폭력을 이혼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북한주민의 수가 늘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의 인식 변화는 복장에서도 나타났다. 2018년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몸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진이 북한에서도 유행이다. 북한당국이 스키니진을 입은 여성을 단속해 벌금을 물리고 심지어 바지를 잘라버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여성의 지위 및 인식 변화는 북한의 시장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통일부의 분석이다. 여성이 시장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자가 되면서 가정 내 성별 분업구조가 와해되고 여성의 권한이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가정 내 여성의 지위가 변했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공적 영역에선 그렇지 않고, 따라서 북한에서 여성이 사회 전반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탈북민 가운데 여성이 75%를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여성이 북한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이끌 가능성이 없지 않아보인다. 통일부도 “여성의 지위 변화가 가부장적 구조 해체로까지 확장되기엔 한계가 있다”면서도 “북한사회 전반의 변화를 추동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한편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북한주민들의 비공식 소득이 68%까지 증가하고, 초보 수준이지만 장사밑천을 위해 개인간 금융거래가 확대되는 등 시장화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김정은 집권 이후 경제와 인심이 좋아졌다고 평가한 비율은 10%에 불과했다. 북한주민들의 세습을 통한 김정은의 권력 승계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56%에 달했다. 

특히 김정은 집권 이후 나타난 현상으로 광공업 부문 국영기업소(공장)의 실제 가동시간이 6시간 이하인 경우가 많고, 시장에서 위안화 통용이 5배 증가해 달러와 위안화가 주요 거래 매개이자 가치저장수단으로 자리잡았으며, 뇌물도 2배 가까이 늘었고, 법으로 금지된 사적 고용과 주책 양도·매매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정은 집권 이후 일반가정용 전력공급은 하루 약 4.3시간으로 2000년대 이전 수준인 5.7시간보다도 낮았다. 주민들이 축전지, 태양전지 등을 활용해 자가발전하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지만 가정에서 난방을 위해 주민들이 직접 나무를 구해와 해결하는 비율이 69.7%로 1위를 차지했다. 

북한 당국이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여전히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 등 우상화 교육이 91.9%를 차지했다. 그런데도 북한주민들은 USB나 미디어 기기를 통해서 외부 영상물을 시청하고 있어서 2016~2020년에 외부 영상물 시청 응답률이 83.3%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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